‘본회의 직행’ 간호법, 직역 갈등으로 번지나

김은빈 2023. 2. 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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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복지위서 무기명 투표 결과 본회의 직회부 ‘가결’
복지부 “직역 갈등 심한 만큼 좀더 숙고해야”
의사단체 “처우 개선 간호사만 필요한 거 아냐”
간호법 저지 13개 단체 보건복지의료연대가 9일 국회 앞에서 간호법 제정 반대 집회를 열었다.   사진=김은빈 기자

간호사의 업무 범위 규정, 처우 개선 등 내용이 담긴 ‘간호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건너뛰고 국회 본회의로 직행한다. 간호단체를 제외한 13개 의료단체가 간호법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높여온 만큼 의료직역 간 갈등으로 번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9일 전체회의를 열고 간호법 등 법제사법위원회 장기 미처리 법안 7건에 대한 본회의 부의 여부에 대해 표결을 진행한 결과 모두 가결됐다. 간호법은 재적 인원 24명 중 찬성 17명, 반대 6명, 무효 1명이었다.

지난해 5월 복지위를 통과한 뒤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하자 국회법에 따라 본회의 직회부 여부를 무기명 투표로 결정했다. 국회법 제86조 3항인 ‘안건신속처리제도’에 따르면 법사위가 60일간 이유 없는 심사를 마치지 않을 경우 무기명 표결을 통해 제정안을 본회의에 부칠 수 있다. 

野 “간호법, 당장 처리해야” vs 복지부 “숙고해야”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에서 간호사의 업무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적정 노동시간 확보 등 간호사의 처우 개선을 명시한 법안이다. 

이날 회의에서도 쟁점은 간호법이었다. 김원이 민주당 의원은 “여야 복지위 위원의 만장일치로 간호법이 법사위로 넘어갔는데 8개월 동안 끌고 있다”며 “법사위 논의가 느려지며 사회 갈등을 더 키우고 있다. 우리 정부가 좀더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국회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조금 더 협의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라며 “현재 의료법 체계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도 “직역간 갈등이 심한 상황이다. 법이 통과되면 행정부로서 집행이 상당히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조속히 그런 갈등이 봉합되고 협의가 이뤄졌으면 하는 희망”이라고 말했다.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제가 알기로 야당 단독으로 처리한 것으로 아는데 아닌가”라고 물었다. 

박 차관의 발언에 장내에선 고성이 오갔다. 김 의원은 “전혀 다른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고 있는지 상당히 의심되는 발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위원장은 “차관이 사실과 굉장히 다르게 알고 있다. 소위에서 여러 번에 걸쳐 간호법에 대해 토론했다”며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표결에 참석한)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은 여당 의원이 아닌가.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박 차관은 “발언 중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말씀드린 것 같다”며 “그 부분에 대해선 사과드린다”며 머리를 숙였다. 

무기명 표결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국민의힘 간사인 강기윤 의원은 “법사위에서 오는 22일 법안소위를 열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간호법에 대한 찬반을 떠나 국회의 절차를 지키는 것이 맞지 않나”라며 “자연스러운 절차가 있는데 우리 위원회에 끌고 온다는 건 그야말로 다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의 폭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법사위는 업무량도 많고 그에 대한 사정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법사위가 오는 22일에 2소위 개의를 합의했다니 우리가 최소한 그날이라도 한 번 들어주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타 상임위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야당은 충분히 기다렸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간사인 강훈식 의원은 “복지위 차원에서 법사위 처리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그럼에도 법사위는 법안 무덤이라 불리는 2소위로 회부했다”며 “더이상 기다릴 수 있다는 근거는 가질 수 없다. 법사위에 상임위 중심주의가 무엇인지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석 민주당 의원도 “법사위가 60일 이내 심사해야 한다는 국회법을 위배했고, 동료 의원과 동료 상임위를 능멸했다. 또 법사위에 최소한의 권위를 유지해주려는 복지위의 선의를 무시하고 포기했다고 본다”며 “이번에 처리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대한간호협회가 9일 국회 앞에서 간호법 제정 촉구 궐기대회를 열었다.   사진=김은빈 기자

간호법 통과, 직역 간 갈등으로 번지나

법안이 통과되면서 직역 간 갈등은 불가피해졌다. 복지위 전체회의 개최 전 국회 앞에선 법안 제정을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동시에 집회를 열었다.

간호사들은 이미 충분한 논의를 거쳐 통과된 법안인 만큼, 본회의로 직행해도 문제될 것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은 이날 국회 정문 앞에서 궐기대회를 열고 “국회 공청회와 4차례 법안심사를 통해 간호법이 이미 검증됐음에도 의사협회 등 일부 보건의료 관련 단체들의 간호법 반대 주장을 이유로 법사위가 간호법 상정과 심사를 미루는 것은 월권과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이어 “간호사의 열악한 처우와 인력 부족 문제는 이제 전국민이 공감하는 문제”라며 “이제까지 땜질식으로 간호인력을 소모할 수는 없다. 간호인력의 사명감과 헌신으로만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악순환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간호사 한명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많은 환자들을 돌보다가 간호사들이 지쳐 쓰러지고 있다. 앞으로 더욱 간호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늘어날 것이지만 이들을 돌볼 간호사들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며 “조속히 간호법 제정에 나서라”고 강조했다. 

국회 1문과 2문 사이에서는 간호법 제정 반대를 외치는 의료단체들의 맞불 집회가 열렸다. 간호법 저지 13개 단체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안 독선 추진 의료체계 붕괴된다’ ‘의료현장 혼란가중 간호법안 절대반대’ 등의 피켓을 들고 “간호법 제정 반대”를 외쳤다.

장인호 대한임상병리사협회 회장은 “간호법은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한다는 미명 하에 다른 보건의료 직역들의 헌신과 희생을 철저히 무시하고 도외시하는 편향적이고 부당한 악법”이라며 “처우 개선은 간호사들만 필요한 게 아니다. 코로나19에서 헌신하고 희생한 직역이 얼마나 많지 아는가”라고 호소했다.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 회장은 “복지위에서 위원장 직권으로 간호법의 본회의 상정을 위한 신속처리안건 의결을 한다고 한다. 상식을 벗어난 행태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면서 “이제는 간호법이 그간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폐기 수순을 밟아야 마땅한 상황이라고 판단한다”고 날을 세웠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도 “간호사만을 위한 법률이 아닌 보건의료체계의 지속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종합적 대책과 새로운 법안을 강구해주길 촉구한다”면서 “간호법에 찬성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것이고 국민을 져버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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