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첫선을 보인 뒤 최근 언론 시사까지 마쳤다. 기대와 아쉬움이 동시에 남는다. 박찬욱 특유의 화려한 미장센과 이병헌, 이성민, 염혜란 등 배우들의 호연은 빛나지만, 진부한 이야기 전개와 동기 부여의 허술함은 거장의 신작을 기대한 이들에겐 다소 실망을 안겼다.
영화는 제지 회사에 다니던 평범한 가장 만수(이병헌)가 하루아침에 해고되면서 시작된다. 아내 미리(손예진)와 두 자식,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키기 위해 그는 재취업이라는 절박한 목표에 집착한다. 만수는 거짓 구인 공고를 내고 지원자들의 이력을 수집한 뒤, 자신보다 유리해 보이는 경쟁자들을 차례로 제거한다. ‘식구를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는 극단적 선택은 블랙코미디와 스릴러의 외피를 두르지만, 동시에 현실 자본주의 사회의 잔혹한 풍경을 압축한다.

전반부 전개는 몰입도가 상당하다. 면접장에서 다리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던 만수가 연쇄 살인을 거듭하며 점차 자신감과 냉소를 띠게 되는 과정은 이병헌의 연기력 덕분에 설득력을 얻는다. 염혜란은 강렬한 장면을 통해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며 관객을 압도한다. 손예진은 분량이 적지만, 가족을 지탱하려 애쓰는 아내로 풍자와 비극 사이의 균형을 잡는다. 여기에 이성민, 박희순, 차승원 같은 배우들이 가세해 앙상블을 이룬다. 음악과 유머도 박찬욱답다. ‘고추잠자리’, ‘구멍 난 가슴’ ‘그래 걷자’ 같은 오래전 가요들이 엉뚱한 상황의 배경이 되어 난데없는 웃음을 터뜨린다. 넷플릭스 시그니처 사운드가 울려 퍼지는 장면 같은 아이러니한 유머는 감독만이 할 수 있는 과감한 시도로 꼽힌다.
그러나 중반 이후부터는 힘이 급격히 빠진다. 만수가 결국 취업에 성공한 시점부터는 이야기가 늘어지고, 서사의 밀도는 떨어진다. 인공지능 시스템이 인력을 대체하는 공장에 홀로 남은 만수의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함을 드러내려는 장치지만, 상징은 지나치게 직접적이다. 치통에 시달리다 스스로 이를 뽑는 장면은 이병헌의 표현력에도 불구하고 뻔하다는 인상을 준다. 반전은 밋밋하고, 깔아놓은 은유와 장치들은 평면적으로 느껴진다.

‘도대체 만수는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라는 의문은 영화 내내 관객들의 마음을 동요하게 한다. 주인공의 동기가 충분히 공감되지 않는다는 점은 가장 큰 약점이다. 해고와 가정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살인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가슴으로 납득되지 않는다. 만수의 어리석음을 관객이 연민할 만큼 충분한 시간을 주지도 않아, 끝까지 그를 따라가야 하는 당위성이 약하다. 또한 손예진, 차승원, 박희순 같은 배우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점도 뼈아프다. 이름값에 비해 스쳐 지나가듯 소비된 인상만 남는다.
물론 사회 풍자의 의도는 분명하다. 해고와 재취업, 경쟁 사회의 잔혹함, 아날로그 산업의 몰락 같은 소재는 한국 사회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일부 장면은 오히려 <기생충>을 연상시키며 새로움보다는 이미 본 듯한 느낌을 남긴다. 전작 <헤어질 결심>이 시적인 여운을 남겼다면, 이번 작품은 산문처럼 직설적이다. 박찬욱 감독이 언론시사회에서 “이번엔 산문 같은 영화”라고 한 말이 이해되지만, 그 산문은 곳곳에서 작위적이고 진부하게 읽힌다. 전작에서 느낀 미묘한 떨림이나 여백의 미학은 이번에는 부족하다.

결국 <어쩔수가없다>는 화려한 볼거리를 갖추었으나, 마음을 움직일 힘은 부족한 영화다. 거장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날카롭지만, 답을 향한 무딘 서사는 기대만큼의 충격과 울림을 안기진 못했다. 박찬욱이어도 이번만큼은 ‘어쩔 수가 없다’
- 감독
- 출연
- 차승원,유연석
- 평점
나우무비 에디터 김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