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석하고 거칠어 보여도 100년 넘은 꽃담 [꽃담여행]
한국미 산책의 일환으로 오래된 마을의 옛담여행, 오래된 마을의 옛집 굴뚝여행에 이어 이번에 옛집 꽃담, 절집 꽃담, 서원, 정원, 누정 꽃담, 궁궐 꽃담, 근대건축물 꽃담 여행을 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김정봉 기자]
▲ 매간당고택 꽃담 서당서쪽 꽃담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수수한 미적 감각으로 쌓은 꽃담이다. 흙과 돌, 와편 모두 세월에 동화되었는지 색깔마저 비슷해졌다. |
ⓒ 김정봉 |
서변마을의 홍살문을 비켜서 동변으로 넘어가는 길은 둑길이다. 땅 한 평 아쉬워 길에 야박하게 굴었는지 길은 조붓하다. 어엿한 방풍 소나무가 불갑천 따라 줄지어 섰다. 이런 길이 계속 이어질까, 의심이 들 즈음 모퉁이를 돌자 드문드문 산이 이어졌다 끊어졌다 다가온다.
동변에 가까이 온 것이다. 멀리 산등성은 훤하나 그 꼬리는 어슴푸레하다. 야트막한 산들을 삼켜버릴 듯 바닷바람을 등에 업고 무섭게 달려든 드넓은 평야 탓이다. 과연 영광(靈光)은 쌀과 소금, 물산이 풍부하여 예로부터 옥당(玉堂) 고을이라 불렸다더니 뜬소문만은 아닌 것이다. 어렴풋이 보이는 산은 알고 보니 영광군민이 사랑하는 수퇴산 일명 물무산이었다.
산 낮은 동변마을에서 제일 눈에 띄는 것은 고택의 2층 대문, 삼효문(三孝門)이다. 대문에 홀리지 않기로 다짐을 했건만 이미 대문의 자태에 내 마음은 넘어가고 있었다. 수태산을 품에 안고 삼각산 산자락에 기댄 채 납작 엎드린 논을 호령하듯 서있다.
▲ 삼효문의 굽은 기둥 네 개의 굽은 소나무가 무거운 효자각을 떠받치고 있다. 선조의 효행에 대한 후손들의 심적 부담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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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김씨 입촌기와 부의 축적
매간당고택은 연안김씨 직강공파 종택이다. 직강공파의 파시조는 김승(?-1464)으로 16세기 중엽, 김승의 4대손인 김영(1540~1598)이 영광군수로 부임한 숙부 김세공(1521-1586)을 따라 온 이후 영광에 정착하였다.
김영의 삼남 중 첫째 김인흡은 영광 장산리에 정착하여 장산종중을 일구고 둘째 김인개는 담양 나산리에 정착하여 나산종중을 형성하였다. 1586년 김영의 삼남, 김인택( 1575~1666)이 외간면(현 동간리)에 정착하면서 외간종중(外澗宗中)을 이루었다.
진주강씨, 진주김씨, 진양하씨는 무오사화로, 광주이씨는 기묘사화로 영광에 입촌하였고 장흥고씨, 현풍곽씨, 안동권씨, 광산김씨, 경주김씨, 경주최씨 등 여러 성씨들이 임진왜란 때 피난하다시피 입촌한 것에 비하면 연안김씨의 입촌기는 그리 모진 편은 아니다.
▲ 삼효문과 사랑마당 삼효문은 고건축에서 보기 드문 2층 누각 형태의 대문이다. 삼효문 바깥마당은 텅 비워 놓은 반면 사랑마당은 화단을 조성하여 마당을 꽉 채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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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효행상은 경제적 이익을 얻는 동시에 가문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높이는 것이어서 공식적인 효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수십 년 길게는 100년이 걸린 경우도 있었다 한다. 김진은 1669년 나이 70에, 김함은 1899년, 사후 67년에 효자로 명정되었다. 김진과 달리 김함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려 효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종손과 종부의 말에 따르면 집안은 대대로 가난하여 농사를 지었다 하는데 종손의 7대조와 6대조 김시수의 부인 진주강씨(1809-1900)가 베를 짜고 근검절약하여 부를 축적하였다 한다. 물론 대지주로 성장하는 데에는 세 효자의 효행상이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 사랑채와 현판 툇간에 ‘매간당’을 중심에 두고 오른쪽에 ‘구간당’, 왼쪽에 ‘익수재’ 편액을 걸어 이 집안의 중흥 시대를 연 세 조상을 대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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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서당영역 꽃담
진주강씨는 아들 매간당 김사형에게 가옥을 건립하라 했는데 언제 지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안채는 1868년(고종5)에 상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안채를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탔다고 하니 안채를 제외한 건축물들은 그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는 1898년에 상량했다는 기록이 있다.
▲ 안채후원 안채 후원은 사다리꼴 마당에 키가 큰 와편굴뚝이 우뚝 솟아있고 석축위에 ‘ㄷ’ 자 담을 둘러 장독대를 알뜰하게 앉혀 놓았다. 장독대 뒤로 사당영역이 곧바로 연결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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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당대청에서 본 정경 서당은 동재와 서재로 나뉘고 가운데는 대청으로 비워 놓았다. 대청에 앉으면 삼효문의 옆면이 보인다. ‘삼효’글자가 새겨진 망와와 합각을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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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동쪽에서 살짝 뒤편에 물러나 있는 서당과 서당 옆에 있는 방지(연지)는 사랑채와 한 공간으로 트여 있어 하나의 영역을 이루고 있다. 연지, 꽃담, 삼효문과 멀리 앞뜰까지 감상할 수 있는 서당 영역이 이 집안에서 가장 사랑스런 공간 아닌가 싶다.
서당 뒷담은 널빤지로 판을 만들고 판 안에 흙을 다져 쌓은 판담이다. 서당서쪽 담은 흙돌담이지만 사람 허리 높이에 와편을 섞어 만든 소박한 꽃담이 있다. '토(土)'자 문양을 중심으로 좌우에 마치 곡식이 자라는 모양을 표현한 것처럼 와편을 세워 빗니무늬를 내었다. 꽃담이라 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부족해 뵈지만 소박한 감각으로 치장을 한 꽃담이다.
▲ 서당꽃담 다듬지 않은 거친 돌멩이와 푸석한 흙, 들쭉날쭉한 와편조각이 공존하나 조잡하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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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사랑채영역 꽃담
멀리서 본 대문의 위풍은 눈속임이었나, 고택은 사랑채에 온 정성을 쏟은 것처럼 보인다. 사랑채는 잘 다듬은 둥근 초석 위에 두툼한 원기둥을 올려 위세가 드높다. 삼효문이 이 집안의 세 효자를 기린다면 사랑채는 세 효자를 기반으로 부를 일군 집안의 세 어른을 대접한다.
이에 걸맞게 사랑채 마당과 후원에 꽃담을 베풀어 놓았다. 사랑채 앞 담은 화단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궁궐의 꽃담을 흉내 낸 보기 드문 민가꽃담이다. 아자문으로 테두리를 두르고 가운데에 6단의 적벽돌을 쌓고 면회하여 점선무늬를 냈다. 그리고 일정한 간격으로 삼점(三點) 구멍을 네 군데 뚫어 놓았다. 비움으로써 바깥세상을 받아들이는 구실을 한다.
▲ 사랑마당 꽃담 테두리를 회문으로 돌려 가장자리를 확정하고 그 안은 단조로운 점선무늬를 낸 꽃담이다. 종부가 언급했듯이 궁궐의 꽃담을 흉내 낸 것으로 보인다. |
ⓒ 김정봉 |
사랑채 앞 담은 새로 쌓은 것이 아니고 1898년 사랑채를 새로 지을 때 쌓은 것으로 보인다. <연안김씨종택 기록화보고서>의 인터뷰 내용 중에 종부가 하는 말이 "(담은) 새로 한 게 아니고 옛날부터 궁실에도 보니까 이렇게 하대. 보수를 안 하고 동학란 때 여기가 불이 났다 하니까 그때겠지"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 꽃담은 적어도 100년은 넘는 것으로 보인다.
▲ 사랑채 후원 후원마당 가운데에 붉은 벽돌 굴뚝하나가 서있다. 사당과 면하는 남쪽담은 화단위에 꽃담을 기획하였다. 굴뚝, 화단, 꽃담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공간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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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채 후원 꽃담 옅은 황토색을 바탕으로 쌍희자에 빗살무늬를 낸 꽃담이다. 빗살무늬는 태양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빗살은 작열하는 태양의 ‘빛살’처럼 보이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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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석축 위에 화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꽃담을 기획하였다. 아랫단은 괴석으로 쌓고 그 위에 큰 돌부터 작은 돌까지 면회하여 차례로 쌓아올렸다. 그 다음 깨진 와편을 한 줄은 오른쪽, 다음은 왼쪽으로 세워 빗살무늬로 쌓았다. 마치 살이 발린 생선가시처럼 보인다. 빗살무늬는 곡식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풍요를 상징한다.
꽃담은 화룡점정 하듯 한가운데 쌍희자(囍)를 넣어 마감하였다.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고 기쁜 일이 겹쳐 일어나기를 축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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