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둘이 말하자”… 독대 고집하는 韓, 대답 없는 尹

이경원,정현수,구자창 2024. 9. 26.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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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재요청에도 용산 부정적 기류
“야당 대표처럼 대통령 몰아붙여”
韓 현안 돌파·리더십 구축 의중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단둘이 말하자”고 거듭 청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가타부타 응답이 없다. 한 대표 측은 독대의 형식으로 의논해야 할 현안이 있다고 강조하지만 윤 대통령 측은 그 독대를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진짜 목적은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대통령과 집권여당 대표가 서로 다른 상황 인식과 해법을 들고 형식을 따지는 사이 불신은 쌓여가는 모습이다. 당정은 지난 24일 만찬에서 ‘국민을 위하여’를 외쳤지만 긴장 관계를 바라보는 국민적 피로감은 커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25일 한 대표의 윤 대통령 독대 재요청에 대한 윤 대통령의 수용 여부를 밝히지 못했다. 복수의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의 결단 영역”이라며 답변하지 못하는 이유를 밝혔다. 독대 성사 여부에 대한 관측은 “당분간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쪽으로 수렴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사이이며 두 사람은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아는 관계이긴 하지만 거듭된 공개적 독대 요청은 불신으로 이어졌다고 용산 참모들은 해석했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한 대표가 대통령의 독대 거부 이튿날이자 만찬 당일 재요청을 한 점에 대해 얼른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대표가 첫 독대 요청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의중과 반응을 알면서도 다른 설득 방안을 찾는 대신 문제 키우기를 선택했다는 시각이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갈등이 있다면 좀 돌아가는 방법도 찾아줘야 할 텐데, 한 대표는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는 몰아붙이겠다’는 식으로만 보인다”고 말했다.

한 대표의 독대 요청이 언론에 바로 공개된 점을 두고는 보다 예민한 반응이 나왔다. 한 대표는 전날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에게 대통령 독대를 재차 요청하며 “외부에 알리겠다”는 취지도 함께 전달했다. 대통령실은 이를 한 대표의 대통령에 대한 압박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독대 요청 사실부터 계속 여론에 부각하는 것은 문제를 푸는 게 목적인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문제를 이렇게 푼다고 보이게끔 하려는 게 목적인가”라고 반문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세미나를 마치고 나와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병주 기자


당대표의 독대 요청이 곧 ‘여론을 업고 대통령을 압박하는 일’이 되는 큰 이유는 현안 해결의 어려움이다. 대통령실도 이 대목에서 썩 자유롭진 못하다. 한 대표는 김건희 여사의 사과, 의료개혁 정책 수정을 통한 의료공백 해결 등을 독대에서 건의하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이미 불수용 의사를 밝혔거나, 건의를 받아들일 경우 더욱 큰 정치적 곤경에 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은 의사 증원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에 대해서는 기자회견에서 본인이 직접 사과했다.

대통령실이 의구심을 갖는 또 다른 대목은 독대가 과연 현안을 해결할 방안이냐 하는 점이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용산도 한 대표가 말하는 민심을 모르지 않고, 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여당 대표라면 이 문제를 함께 어떻게 풀까 하는 차원부터 먼저 생각해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용산에서는 한 대표의 언론 인터뷰를 보면 과거 야당 대표들이 ‘영수회담’을 갖자며 대통령을 압박하던 것과 비슷한 모양새라는 말도 나온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 측의 이런 반응까지 감수하며 독대 형식을 고집하는 것은 현재 그의 앞에 놓인 과제, 정치적 지형과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한 대표는 이날도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대통령님과 중요한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과 친윤(친윤석열)계에서는 한 대표의 공개적 독대 요청을 두고 “정치가 아니다”는 평가까지 나왔지만, 한 대표는 “정치는 민생에 있어서 중요한 현안을 해결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는 과정”이라며 “저는 그렇게 하고 있다”고 대응했다.

현재 한 대표가 당면한 최우선 과제는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이다. 한 대표가 이를 제안했던 지난 6일 대통령실과 야당이 호응했으나 정작 출범은 보름 넘게 공회전 중이다. 의료계가 여전히 정부의 입장 변화를 협의체 참여의 조건으로 내걸고 강경한 태도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국민의힘 중진의원은 “대표 본인이 제안한 협의체 출범 동력이 점점 떨어지는 상황에서 정부의 입장 변화를 이끌어낼 가장 빠른 방법이 독대라고 판단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원외 당대표’의 한계도 한 대표가 독대를 놓지 못하는 배경으로 언급된다. 계파색이 옅은 한 의원은 “당내 장악력이 센 대표였다면 굳이 대통령과 ‘일대일’로 마주 앉는 장면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팔짱만 끼고 있는 의원들을 일일이 설득하는 것보다 당내 영향력이 큰 대통령을 설득해 의원들을 움직이게 하는 편이 빠르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가 당내 리더십을 구축하기 위해 ‘보텀업’이 아닌 독대를 통한 ‘톱다운’ 방식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제3자 추천 방식의 채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과 등 한 대표가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꺼낸 다른 사안들에도 비슷한 해석이 따라붙는다. 취임 두 달 차인 한 대표가 정치인으로서 가시적 성과를 요구받고 있고, 정부와 여당 지지율이 동시에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여권에서는 ‘독대 갈등’이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모두에게 마이너스 요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여당과 야당 사이, 대통령실과 야당 사이의 정치가 실종된 상황에서 대통령실과 여당 간의 불협화음은 민심 이반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한 정치권 원로는 “정치는 정답이 없고 차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당정 모두 서로 설득하고 설득당하며 해법을 찾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경원 정현수 구자창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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