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서 화투 치다 불화?"…'복날 살충제' 피의자는 숨진 80대
초복이었던 지난 7월 15일 경북 봉화군에서 발생한 이른바 ‘복날 살충제 음독 사건’ 피의자로 숨진 80대 할머니가 지목됐다. 경찰은 이 할머니가 사건 직전 경로당 회원들이 함께 먹는 커피에 살충제를 탄 정황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경북경찰청은 30일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살충제 음독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가 지난 7월 30일 사망한 80대 여성 A씨를 살인미수 혐의 피의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A씨가 사망하면서 공소권이 없어 불송치 결정했다.
경로당 커피 마시고 쓰러진 주민 4명
경찰조사 결과 봉화군 봉화읍 내성4리 여성경로당 회원 41명은 지난 7월 15일 초복을 맞아 마을 주변 음식점에서 점심으로 보양식을 먹었다. 이후 회원 4명이 경로당에서 커피를 마신 뒤 살충제 중독으로 심정지 등 증세를 보였다. 사흘 후인 7월 18일 A씨도 호흡곤란 등 이상 증상을 호소했다. 피해자 4명 중 3명은 7월 25∼29일 사이 퇴원했으며, 김모(69) 할머니는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요양병원으로 옮겨 치료중이다.
경찰은 현장 주변 폐쇄회로TV(CCTV)를 분석해 A씨가 사건 이틀 전인 7월 13일 낮 12시20분쯤부터 12시26분까지 아무도 없는 경로당을 홀로 출입한 것을 확인했다. A씨가 경로당에서 나와 주변에서 접촉한 물건에서도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또 A씨가 7월 12일 오후 2시쯤 경로당 거실 커피포트에 물을 붓는 장면을 경로당 회원이 목격했다. 해당 커피포트와 싱크대 상판 부분에서도 같은 성분의 농약이 나왔다.
늦게 쓰러진 주민 주거지서 농약 발견
경찰은 A씨 주거지를 압수수색해 마당과 집 주변에 뿌려진 알갱이 모양의 농약을 수거하기도 했다. 수거한 농약 알갱이 성분을 분석해 음료수병에서 확인된 농약 성분과 표준편차 범위 내 유사한 동위원소비를 구성하는 농약인 것을 확인했다. 농약 동위원소비는 같은 제품이라도 원료 공급처, 합성·제조공정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제품을 어디서 구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경찰 측은 경로당 회원 등 관련자 면담·조사를 통해 확보한 진술과 경찰 범죄심리분석요원 분석 결과 등을 종합해 A씨와 경로당 회원 간 갈등과 불화가 범행 동기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회원들이 경로당에서 자주 화투 놀이를 했고, A씨도 참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화투 외에도 권 할머니가 다른 경로당 회원과 갈등 또는 불화가 종종 있었다는 여러 회원의 진술도 확보했다.
하지만 A씨가 지난 7월 30일 사망해 본인을 통한 진위를 확인할 수 없어 직접적인 범행동기를 단정할 수는 없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사건 당일 쓰러진 피해자 4명에게서 검출된 살충제 성분과 사흘 뒤인 7월 18일 병원으로 후송된 A씨에게서 검출된 살충제 성분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경찰 “A씨가 음료수병에 농약 탄 정황”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 4명의 위세척 물 등에서 에토펜프록스와 터부포스 등 2가지 성분이 나왔지만, A씨는 이들 성분 외에도 포레이트·풀룩사메타마이드·아족시스트로빈 등 3종 성분이 추가로 검출됐다.
경찰은 이번 사건 피해자들을 위해 전담경찰관을 배치하고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도움을 받게 해줬다. 또 피해자·가족에 건강검진과 심리상담 기회와 진료비를 지원했다. 또 경로당 회원을 대상으로 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경찰은 유사 사례를 막기 위해 경로당이나 마을회관 내·외부에 CCTV를 설치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등 근본적인 제도개선 방안을 행정당국에 권고할 예정이다.
봉화=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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