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왜 광역 4명 당선에 웃는 군소 정당이 됐나

윤희석 2026. 6. 1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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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를 위한 제1보] 사랑받는 보수, 로널드 레이건을 통해 보다

[윤희석]

 6·3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진 16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개표소를 찾아 확성기를 들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권자 마음을 흔들며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지방선거가 끝났다. 선거가 끝나면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구분돼 평가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숫자에서 앞선 여당은 이겼다는 말을 못 하고, 대패한 야당은 마치 승리라도 한 것처럼 뻗대고 있는 이상한 광경이 나오고 있다. 왜 그런 걸까? 외관과 내용의 차이가 빚은 애매함이 원인이라 볼 수 있겠다.

선거 결과를 말하자면, 더불어민주당에는 분열의 싹이 감출 수 없이 커졌음을 인정해야 하는 선거라고 할 수 있겠다. 반대로 국민의힘에는 내줄 건 다 내주었지만, 미래에 승부를 걸어 볼 두 인물을 지켜냈다는 위안을 얻은 선거였다고 하겠다.

선거 결과를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며,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볼 수 있었다.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기준이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서울을 잃은 탓에 광역단체장 12명을 당선시키고도 죄인이 됐고, 국민의힘은 겨우 4명을 당선시켜 놓고도 기세가 등등하다. 그래서 선거 결과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다.

보수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주변에서는 '언제부터 제1야당 국민의힘이 광역단체장 4명 당선에 만족하는 군소 정당이 됐는가' 하는 자조 섞인 탄식이 줄을 잇고 있다. 그렇다. 확실히 한국 보수는 헌정 이후 최악의 상태에 처해 있고, 국민의힘은 보수를 이끌어갈 능력과 명분을 잃은 채 억지로 연명하는 모양새다.

한국을 이끌던 보수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득권이라는 달콤함에 빠져 보수 가치를 망각한 채 권력 유지에만 집착했던 행태를 맨 먼저 꼽겠다. 이제는 순순히 인정해야 한다. 당내에서 인물을 키우지 않은 채 외부 수혈로 버티던 관행은 이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민심을 제대로 읽을 줄 모른다는 지적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 정치 정상화를 위해 보수를 되살려 보자는 고민은 이런 팍팍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보수 재건을 위한 생각의 고리는 자연스레 외국, 특히 미국 정치로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보수가 이렇게 어려운 처지인데, 미국에서는 상황이 좀 달라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이 늘 좌충우돌하며 논란의 중심에 있지만, 결국 보수의 틀 안에서 나라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걸 보면 미국에서 보수가 얼마나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 새삼 느낀다. 미국 보수의 토대를 이토록 강고하게 다진 사람이 누구일까? 바로 로널드 레이건이다.

1981년에 취임한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미국의 황금기'가 연상되고, 그의 매력적인 미소를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그러니 레이건은 매우 순조롭게 대통령에 당선됐고, 집권 시기도 그만큼 평화로웠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1980년,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 상황은 쉽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대통령 당선 자체가 역사적인 사건이었음을 알게 된다.

당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로부터 시작된 민주당 출신 대통령의 오랜 집권 이후였다. 당시 미국 정치는 민주당이 좌우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그 시기에 공화당 출신 대통령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탄핵이라고 봐도 무방한 닉슨의 수치스러운 사임, 그의 뒤를 이은 포드의 대선 패배가 악재였다.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당시 미국 보수는 정치적, 도덕적으로 완전히 기반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러한 미국 보수의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레이건이 당선되었다. 심지어 현직 대통령 지미 카터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그의 등장은 미국 현대사의 질서를 진보 우위에서 보수 우위로 바꾼 역사적 전환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이건의 집권이 '미국 보수 재건'과 직접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로널드 레이건은 누구인가
 1982년 9월 29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에서 공개한 이미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의 리치몬드 아레나에서 열린 버지니아 공화당 모금 집회에 참석한 모습이다.
ⓒ 연합뉴스
그는 어떤 사람인가. 먼저 레이건은 강력한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그가 집권한 1981년의 미국은 경기 침체와 냉전 격화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다. 특히 1979년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이 점거되며 시작된 '이란 인질 사태'가 해를 넘기고도 끝나지 않으면서 미국인의 자존심이 처참하게 무너진 상태였다.

이 위기에서 레이건은 특유의 낙관주의적 신념을 바탕으로 상황에 당당히 대처했고, 그를 보고 미국 국민은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현직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상징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가 실은 레이건의 대선 슬로건이었다.

또한 레이건은 소련을 무너뜨리고 냉전을 끝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대통령이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영화배우협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영화 산업에 침투한 공산주의자들의 실체를 생생히 경험했었다. 그는 공산주의야말로 미국의 체제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적이라 생각을 굳혔으며, 공산주의에 이기기 위해서는 강력한 군사력이 절실하다는 점을 확신했다.

레이건은 대통령이 되자 국방비를 대폭 늘려 '힘을 통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각종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가 설정한 최종 목표는 핵전쟁의 공포로부터 인류를 자유롭게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부를 정도로 공산주의 척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냉전 종식이야말로 재임 시기 가장 커다란 업적이라 할 만하다.

무엇보다 미국 경제를 되살린 성과도 빼놓을 수 없다. 개인과 기업의 발전을 위해 자유가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레이건은 그 신념에 충실한 경제 정책을 이끌었다. 규제 완화와 감세를 단행해 시장의 역동성을 되살려냈고, 무분별한 복지를 반대했다. 또 비대한 정부를 민첩한 조직으로 바꾸었다.

재임 동안 물가는 안정됐고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라는 용어가 생긴 것은, 그의 경제 정책에 대한 높은 평가를 보여준다.

그런데 레이건 8년을 대표하는 이 업적들도, 국민과 소통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달성하기 어려웠으리라. 가난한 환경을 극복하고 영화배우를 거쳐 정치인으로 변신한 레이건은 인생을 관통하며 얻은 자신감과 겸손함, 서민적 풍모, 연기력을 모두 동원해 국민에게 다가갔다.

미국인들은 그런 레이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대한 깊이 통찰했고, 쉽고 명확하게 미래 비전과 정책을 설명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주장, 그러면서도 원칙을 놓치지 않았던 그에게 '위대한 소통가'라는 호칭은 잘 어울린다.

레이건의 기발한 유머 감각도 빼놓을 수 없다. 1984년 대선에서 자신의 나이를 걸고 넘어지는 월터 먼데일 민주당 후보를 향해 "나는 상대 후보의 젊음과 미숙함을 굳이 들춰내, 나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용하지는 않을 겁니다"라고 응수한 일은 너무나 유명하다.

1981년 대통령 취임 직후 발생한 암살 미수 사건 때는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 부인 낸시 여사에게 "여보, 내가 피하는 걸 그만 깜빡했어"라고 말했다는 전설 같은 일화도 있다. 레이건은 "당신이 설명하기 시작하면 이미 진 거야"라는 말도 했다. 정치인은 설명할 상황에 몰리지 말고, 먼저 치고 나가야 함을 꿰뚫은 명언이다. 유머 감각은 에너지를 의미한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레이건은 참으로 의욕이 넘치는 멋진 대통령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보수가 개혁하고 참된 정치를 구현해 나간다면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과 내셔널몰 전경.
ⓒ AFP 연합뉴스
레이건의 인생과 업적을 돌아보며 지도자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만약 레이건이 없었다면, 미국의 보수가 지금처럼 힘을 얻을 수 있었을지 확신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즉흥적인 국정운영을 고수하고 있음에도 미국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도 레이건이 고집했던 보수 정치의 대원칙이 미국에 굳건히 뿌리내린 덕분일 것이다.

우리도 지도자를 찾아야 한다. 무너진 보수를 재건하고 보수의 전성기를 다시 이끌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레이건은 인간에 대한 존중과 예의, 인간의 선함에 대한 믿음, 그리고 강철 같은 낙관주의로 무장한 사람이었다. 원칙을 지키면서 진심을 다해 국민 속으로 들어갔으며, 끊임없이 소통하고 설득하려 노력했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수 재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공적 의식으로 무장한 합리적이고 용기 있는 보수 후보들이 나서, 당의 지원 없이 자신들의 신념과 정책을 국민에게 인정받아 당당히 당선됐다.

그 결과를 통해 사심 없이 국민을 위해 일하는 지도자의 출현을 국민이 간절히 바라고 있고, 그런 지도자라면 얼마든지 지지하고픈 국민의 마음을 보았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보수 지도자가 한국 보수의 정체성을 명확히 규정해 보수 야당을 개혁할 수 있을까. 보수가 개혁하고 참된 정치를 구현해 나간다면 보수가 다시 정상화되고,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신념에 찬 리더십과 탁월한 소통 능력으로 위기를 극복한 레이건. 미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보수주의자 레이건. 그의 삶을 통해 한국의 보수가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참된 지혜를 찾게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의 전문은 피렌체의식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3036 필자 윤희석은 국민의힘 당협위원장과 선임 대변인을 지낸 정치인이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인디애나대학교 MBA를 마치고 삼성전자에서 비즈니스 현장을 누비다 정치에 투신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으며, 현재 방송을 통한 정치 평론에 집중하고 있다. 정치 입문 후 UC샌디에이고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연구했던 레이건의 리더십이 침몰하는 한국의 보수에게 가장 필요한 해결책이라는 생각에, 시대를 관통하는 레이건의 통찰을 전하고자 레이건 평전을 번역해 최근 출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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