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걸린 후 깨달았다, 환자에게 필요한 한 마디
[송주연 기자]
어린 시절 엄마 친구의 아들과 딸로 만나 짙은 우정을 쌓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tvN 드라마 <엄마친구아들>. 각자의 삶에 충실하면서, 서로를 아끼는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미소가 지어지곤 했다.
그런데 석류(정소민)의 비밀이 그려진 방송분(9, 10회)에서 나는 울고 말았다. 솔직하고 당당해 보이는 석류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알리지 않고 위암 투병을 했음이 밝혀지면서 석류 주변의 인물들은 충격에 휩싸인다. 그리고 석류는 엄마에게 안겨 울면서 이렇게 독백한다.
'나는 사실 그때 사실 승효에게 제일 먼저 전화하고 싶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을 때처럼 엄마한테 전화해 울고 싶었다.' (9회)
나 역시 유방암을 경험했던 터라, 왜 석류가 '찐 애정'으로 대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런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는지, 미국서 남자친구와 단둘이 외롭게 투병 생활을 했는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았다. 그 이유는 드라마에서도 드러나듯, 질병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과 관련이 있다.
▲ 드라마 '엄마친구아들' 중 한 장면 |
ⓒ tvN |
'잠이 부족했다, 식사가 불규칙적이었다. 스트레스에 과도하게 노출돼 있었다. 내가 암에 걸린 이유를 찾다가 문득 창밖을 보니 하늘이 지나치게 맑았다.'
사실 나도 그랬다. 유방암 진단을 받은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뭘 잘못해서 암에 걸렸을까'였다. 내 주변 사람들 또한 "네가 왜? 운동이 부족했나? 탄수화물을 너무 많이 먹은 거 아니야?"라며 암에 걸린 이유를 찾기 위해 애썼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어떤 병과 마주할 때 스트레스, 운동, 먹거리, 성격 등 질병 당사자에게서 그 이유를 찾으려 든다. 하지만,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다고 해서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실, 병은 그냥 찾아온다. 건강한 생활 습관이 어느 정도 병을 예방해 주긴 하겠지만, 예방접종을 해도 100% 그 질병을 피해 가지는 못하는 것처럼, 병은 이유 없이 누구든 덮칠 수 있다.
사람들이 질병의 이유를 개인에게서 찾는 것을 두고 질병 사회학자이자 <아픈 몸을 살다>의 저자인 아서 프랭크는 "아픈 사람에게 암을 부르는 성격이 있다고 믿을 때, 아픈 사람 이외의 모두에게 세계는 덜 취약하고 덜 위험해지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인간이 취약한 존재임을 직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심리적 방어인 것이다.
이런 심리적 방어는 필연적으로 죄책감을 유발한다. 석류뿐 아니라 소식을 들은 석류의 엄마 미숙(박지영)과 아빠 근식(조한철)은 서로 '내 잘못'이라며 자책한다. '절친' 승효(정해인)와 모음(김지은)도 석류의 사인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탓한다. 아픈 당사자도 그 가족과 친구들도 모두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를 예상했기에 석류는 선뜻 자신의 병을 가족들에게 말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석류는 병이 알려진 후 "엄마 울지 아빠 쩔쩔매지, 동진이까지 하얗게 질려서 다 내 눈치만 보고 있는 아주 불편한"(10회) 상황에 놓인다.
▲ 드라마 '엄마친구아들' 중 한 장면 |
ⓒ tvN |
"기대면 뭐. 기대면 뭐가 달라져? 내가 아프면 다 같이 쓰러질 텐데. "
이는 기대고 돌봄 받는 것에 우리 사회의 시선이 반영된 대사였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독립'과 '성취'에 가치를 두어왔다. 그러면서 '의존'과 '돌봄'은 독립과 성취와는 반대되는 것으로 터부시됐다. 뭐든 혼자 잘 해내고 노력해 성취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인식은 아프고 힘들 때조차 의존하고 돌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게 한다. 또, 의존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엄마 미숙의 "애가 저 혼자서 야무지게 잘 크는 거야. (...) 난 근데 그걸 자랑만 했어"(10회)라는 고백처럼 가족들조차 독립과 성취를 '자랑스러운 것'으로 여긴다. 이런 메시지들 속에 자란 석류는 스스로 해결하고 성취해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이 무척 중요했을 것이다. 취약한 모습을 내보이거나 의존하기가 쉽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는 나약한 상태로 태어나 보호자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시간을 거쳐 독립된 한 사람이 된다. 충분히 의존하고 돌봄 받는 경험을 통해 제대로 심리적인 독립을 성취한 사람만이 타인을 침해하지 않고, 자신과 타인을 잘 돌볼 수 있다. 독립과 의존이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닐 뿐 더러 적절한 의존은 독립의 필수조건인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대고 의존하고 돌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이런 사회적 통념들은 아픈 이들을 더 외롭게 만든다.
▲ 동네친구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 tvN <엄마친구아들>의 한 장면 |
ⓒ tvN |
그런데 석류는 이런 현준과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이는 석류가 현준이 자신이 힘들 때 진정으로 함께 해주지 못할 것이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암이라는 게 그렇다. 초기여서 수술로 암세포를 모두 제거하고 예방적 방사선치료나 항암치료를 해서 재발 가능성을 낮추었다 해도, 재발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늘 암을 경험한 자들의 마음에 남아 있다. 석류는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재발을 걱정할 거야. 5년 다 채우고 완치 판정받아도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거야. 늘 죽음 근처에서 발을 동동거리면서 조금 불안하고 조금 슬퍼질 거야." (10회)
이런 석류에게 필요한 건, 암을 극복하고 이겨내라는 응원보다는 힘들고 불안할 때 그 불안에 함께 머물러 줄 수 있는 돌봄이었을 것이다. 현준은 석류를 극진히 보살피지만, "넌 극복할 수 있어, 밝게 잘 견디고 있어"라며 응원만 할 뿐, 실제로 석류의 불안에 함께해주지는 못한다. 아마도 현준은 '취약함'을 인정하는 게 무척 두려웠을 것이고, 그래서 암을 이겨내는 강인한 인간의 모습을 더 찾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응원 때문에 석류는 아픈 내내 자신의 슬픔을 밀어두었을 것이고, 후에 우울증을 겪게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현준은 이를 깨닫고 석류와 이별하면서 이렇게 사과한다.
"난 어떻게든 널 일으켜 세울 생각만 했지 너랑 같이 쓰러질 생각은 못 했어 (...) 네 아픔에 공감하지 못했어. 있는 그대로의 너를 내가 받아들이지 못했어." (10회)
만일 석류가 인간은 모두가 취약하다는 것이 전제된 사회, 그러니까 병은 이유 없이 찾아오고, 누구든 아플 수 있으며 서로 의존하고 돌보는 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 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암에 걸렸을 때 가까운 이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불안과 두려움을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대신, 석류의 마음에 함께 머물러 줄 수 있었을 테다. 현준 역시 "이겨내라" 응원하기보다는 진정으로 석류의 마음에 공감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석류는 아픈 자신을 더 잘 수용해 내고 주변인들의 돌봄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취약함을 수용한다는 건, 무척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심각한 병에 걸려본 사람은 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취약함을 극복하는 게 아니라, 이를 인정하고, 서로 돌보고 의존하며 함께 하는 것임을 말이다.
석류의 암 투병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환점을 맞은 드라마 <엄마친구아들>. 남은 드라마의 후반부에서는 지금까지 보여준 각자의 꿈을 찾아가는 삶과 취약함을 수용하고 서로 돌보는 삶이 결코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이 둘이 공존할 때 삶이 더 풍성해짐을 보여주었으면 참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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