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민 피할 거야?" "그냥 붙을게요" 만루에서 빛난 김윤하의 배짱, 5선발 경쟁도 청신호 [수원 현장]
-김윤하, 19일 선발등판 3이닝 1실점 비교적 호투
-첫 등판 부진했던 정현우, 남은 등판 부담 커졌다

[더게이트=수원]
올시즌 키움 히어로즈 선발투수진은 지난 시즌과 비교하면 천지개벽 수준이다. 지난해에는 외국인 투수 1명에 외국인 타자 2명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원래 4선발 자원이었던 하영민이 개막 2차전에 나섰고, 2년차 김윤하가 3선발, 갓 고교를 졸업한 정현우가 4선발로 시즌을 열었다.
젊은 투수들의 성장을 계산하고 짠 로테이션이었지만 결과는 대실패였다. 데뷔 첫해 가능성을 보여줬던 김윤하는 부담감과 불운이 겹친 끝에 오히려 퇴보했다. 19경기에 등판해 승리 없이 12패만 기록했고, KBO 역대 선발 최장 연패인 17연패 불명예를 끊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했다.

달라진 선발진, 남은 자리 하나
설종진 감독이 정식 부임한 올시즌은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시즌 후반 합류해 좋은 활약을 보여준 라울 알칸타라가 1선발로 건재하고, 새 외국인 투수 네이선 와일스도 영입했다. 아시아쿼터로 합류한 카나쿠보 유토가 3선발을 맡으면서 1~3선발을 외국인 투수가 채우는 구도가 됐다. 지난해 2선발이었던 하영민은 4선발 자리에서 개막을 맞이한다.
4선발까지 윤곽이 잡히면서 남은 자리는 5선발 하나다. 이 한 자리를 두고 지난해 3선발이었던 김윤하와 4선발 정현우가 경쟁한다. 키움 선발진의 두께가 지난해 대비 얼마나 좋아졌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설 감독은 시범경기에서 두 투수를 차례로 테스트하며 마지막 한 자리의 주인을 고민하는 중이다.
19일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시범경기를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설 감독은 "정현우와 김윤하가 5선발 후보다. 아직 누가 선발이라고 딱 정해진 상태는 아니다. 오늘은 김윤하, 내일은 정현우를 기용해서 경쟁을 시켜보려 한다"고 밝혔다. 경쟁에서 낙점받지 못한 투수는 불펜으로 이동해 롱릴리프로 활용하겠다는 계획도 이야기했다.
김윤하는 앞선 두 번의 시범경기에서 불펜으로 몸을 풀었다. 12일 두산전 1이닝 1피안타 무실점, 15일 NC전 2이닝 무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으로 차근차근 이닝을 늘렸다. 이날은 시범경기 들어 처음으로 선발 테스트 무대에 올랐다.
결과는 3이닝 2피안타 1실점 2볼넷 1삼진. 유일한 실점은 1회말 2사 후 안현민에게 맞은 솔로홈런이었다. 3볼 낫싱에서 몸쪽으로 밀어 넣은 빠른볼이 좌측 파울폴 바로 옆을 통과하는 대형 홈런으로 이어졌다. 김윤하는 "초구와 두 번째 구종을 바깥쪽으로 가져가려 했는데 계속 볼이 되면서 3볼에 몰렸다. 몸쪽으로 잘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대단한 타자였다. 놀랐다"고 했다.
홈런 이외에는 대체로 안정적이었다. 1회 배정대를 3구 만에 빗맞은 2루수 땅볼, 김현수를 2구 만에 얕은 중견수 플라이로 처리했다. 홈런 이후에도 힐리어드를 우익수 뜬공으로 잡아 추가 실점 없이 첫 회를 마쳤다. 2회에는 장성우-김상수-허경민을 우익수-중견수-좌익수 뜬공으로 차례로 잡고 삼자범퇴로 마무리했다.
3회가 위험할 뻔했다. 선두타자 한승택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준 데 이어 이강민 타석에서 유격수 땅볼을 유도했으나 2루 포스아웃 뒤 1루 송구가 빗나가며 1사 1루가 됐다. 후속 배정대에게 좌전 안타, 김현수에게 볼넷을 내주며 1사 만루 위기가 됐고, 타석에는 1회 홈런을 맞았던 상대 안현민이 등장했다.
여기서 포수 김건희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피할 거냐"는 물음에 김윤하는 "그냥 붙자"고 대답했다고. 김윤하는 과감하게 존을 공략해 초구 파울, 2구 스트라이크로 유리한 카운트를 만들었다. 여기서 슬라이더로 안현민을 2루수 뜬공으로 잡고 한숨을 돌렸다. 힐리어드 타석에서는 4구째 포크볼로 헛스윙 삼진을 잡아내며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냈다.
3이닝 56구로 피칭을 마친 김윤하는 4회부터 윤석원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3회 한 이닝에만 25구를 던진 점은 아쉬웠지만, 홈런 외에는 실점을 내주지 않은 무난한 투구였다. 포심 34구로 최고 구속 146km/h를 기록했고, 커터 14구, 커브와 포크볼을 각각 4구씩 구사했다. 이날 경기는 후반 키움 타선이 폭발하며 11대 4 키움 승리로 끝났다.

"17연패 기록 깨면 내게도 팀에도 좋은 일일 것"
김윤하는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나 "선발로 긴 이닝을 가져가는 데 목적을 두고 빠른 승부를 하려 했다"면서 "이전에는 로케이션대로 공은 잘 갔지만 스트라이크존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공이 생기면서 카운트가 불리해지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 부분을 잘 대처해서 오늘은 만족스러운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경기전 설종진 감독은 김윤하의 볼 스피드가 예년보다 좋아졌다고 칭찬했다. 이에 대해 "작년에는 상체로만 던지는 느낌이 들었다. 후반기에 상체 힘이 떨어지면서 구속도 줄어드는 일이 생겼다"고 돌아본 김윤하는 "올겨울에는 하체를 사용해서 전체적인 몸으로 던지는 훈련을 했다"면서 "날씨가 추운데도 구속이 생각보다 더 잘 나온다"고 했다.
지난해 개막 3선발에서 올해 5선발 경쟁을 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작년에도 딱히 3선발이라는 것에 부담감은 없었다. 그냥 경기에 나가서 타자를 어떻게 상대를 해야 될까를 중점적으로 생각했다"면서 "올해도 5선발 경쟁을 하든 불펜에 가든 타자와의 승부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거기에 중점을 둘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선발 등판 전 설 감독과 나눈 대화도 힘이 됐다. "감독님은 연패 기록에 너무 부담감을 갖지 말라고 하셨다. 못 던져도 되고 잘 던지면 좋은 거다, 마음 편하게 올라가서,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경기하라고 말씀해주셨다"고 전했다.
17연패 기록에 대해서는 "팀의 승리를 위해 다 같이 노력하고 있는데 나로 인해서 그 노력이 승리로 이어지지 못한 점을 많이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도 "저를 응원해 주시는 팬분들도 많다. 올해는 더 집중해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 내가 그 기록을 깨는 날이 오면 팀도 이기는 날일 거니까 팀에게도, 저에게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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