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자체 생산 담배 브랜드만 수백 종류"..북한은 흡연 천국
젊은층·해외파 중심 확산 조짐
담배회사 앞다퉈 신상품 내놓고
장마당 유통도 비교적 자유로워
김정은 '건설' 담배 즐겨 피워
"담배 브랜드에 정치사상 담겨"
담배를 통해 들여다본 김정은 체제의 북한
![북한 양강도 혜산시 장마당의 담배 노점상 모습. 지난 7월 북·중 접경 지역을 다녀온 강동완 동아대 교수가 망원렌즈를 이용해 포착했다. [사진 도서출판 너나들이]](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10/04/joongang/20191004000546401uubk.jpg)
왜 북한은 세계 선두권의 흡연국이 됐을까. 담배는 2500만 북한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자리 잡은 걸까. 북한 문화와 주민 일상생활을 추적·연구해온 강동완 동아대 교수와 함께 ‘흡연 천국’의 내밀한 실상을 들여다본다.
“전자담배는 미성년자를 비롯해 담배를 피우지 않던 사람들까지도 흡연자로 만드는 안내자 역할을 수행하는 매우 위험한 매개물이다.”
노동신문은 지난달 27일 자 기사에서 전자담배의 폐해를 처음 언급했다. 북한이 최근 세계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전자담배의 유해성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북한은 전자담배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북·중 접경 지역을 중심으로 유입이 급격히 늘고 있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해외에서 근무하다 귀국하는 외교관이나 대표부 직원 사이에서는 직장 상사나 친인척에 대한 선물로 서방 국가에서 만든 전자담배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담배 소비나 유통 시장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기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담배 브랜드는 파악된 것만 수백 종류가 넘는다. 국민총소득(GNI)을 기준으로 47배의 경제력을 가진 한국이 50여 종의 담배를 생산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많은 수준이다. 엄격한 통제 사회인 북한에서 담배가 비교적 손쉽게 유통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전매(專賣) 제도를 운영하거나 지정된 판매소에서만 구입할 수 있도록 할 것 같지만 내고향담배공장, 평양룡봉담배공장, 라선신흥담배회사 등 40여 개 생산 기관이 앞다퉈 담배를 시장에 내놓는다. 강동완 교수는 “북한이 출시한 새 상품 구입을 위해 중국의 접경지역을 자주 방문하는 데 한두 달 만에 5개 안팎의 새 담배가 나올 때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장마당이나 길거리 곳곳에서 담배 노점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많은 담배를 싣고 오가는 도매상도 눈에 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인 남성 흡연율이 한때 54.7%에 달하기도 했다. 세계 평균인 48%를 훨씬 웃도는 건 물론 쿠바·중국·라오스 등과 함께 선두권이란 얘기가 나온다. 일각에선 북한이 여성 흡연자가 없다고 국제기구에 보고한 대목이 현실성이 없다는 점에서 실제 흡연율은 훨씬 높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금연 캠페인의 효과가 일부 나타난 것으로 북한 당국은 주장하고 있다. 2012년 말 52.4%이던 북한 남성 흡연율이 2014년 말에는 43.9%로 8.4%포인트 감소했다는 것이다.
TV를 통한 금연 캠페인은 과거 사회주의 교양 차원에서 벌어졌지만, 요즘엔 감성에 호소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최근 북한 당국이 제작한 영상에는 한 여성이 등장해 “여자들이 담배를 끊으라고 하면 ‘그러마’하고 끊어야 하는 데, 여자들의 말을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로 듣는다”고 흡연 남성을 힐난한다. ‘생명을 위협하는 특등 기호품’이란 제목의 캠페인 프로그램은 “남편에 대한 사랑, 가정을 지키려는 자각으로 우리 여성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으로 몸부림치게 했다”며 절절한 심정을 호소하고 있다.
금연 열풍은 앞서 김정일(2011년 사망) 국방위원장 집권 시기에도 있었다. 2001년 중국 방문 때 “담배를 끊었다”고 밝힌 김정일은 ‘담배는 심장을 겨눈 총과 같다’는 구호를 내세웠다. 북한 당국은 “흡연자와 음치, 컴맹은 21세기의 3대 바보”란 말까지 만들었다. 당시 북한의 노동당 간부와 대남 사업 종사자들은 친분 있는 남측 인사들로부터 “최고지도자와 당에 대한 충성심이 그렇게 높은 사람이 왜 금연 교시는 이행 않는가”하는 지적을 듣기도 했다. 그때마다 북측 관계자들은 “다른 건 몰라도 담배만큼은 정말 마음대로 안 된다”며 곤혹스러워했다. 하지만 2008년 건강 이상 사태를 맞은 상황에서 김정일은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고 금연 지시는 흐지부지됐다.

김정은이 나이 많은 노동당과 군부의 간부들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두고 강동완 교수는 “젊은 지도자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이미지 정치”라고 분석했다. 집권 당시 28세의 청년 지도자로서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이 안팎에서 제기되자 간부들에 대한 장악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흡연 장면을 연출했을 것이란 얘기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열차 편으로 이동하던 김정은은 중국 난닝 역 플랫폼에 선 채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여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당시 재떨이를 들고 옆에 서 있는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강동완 교수의 책 『북한 담배-프로파간다와 브랜드의 변주곡』은 지난 7년 동안 북·중 변경 지역 등에서 수집한 북한 담배 200여 종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한때 즐겼다는 ‘7.27’ 담배에 대해 강 교수는 “북한에서 7월 27일은 전승절(1953년 휴전협정 체결일)로 기념하는 날”이라며 “실제로 담뱃갑에 ‘1950~1953’이란 전쟁 기간이 기입돼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정은은 최근 들어 ‘건설’이란 상표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는데 “1950년대 전후 복구 건설의 망치 소리를 상징하는 브랜드”라고 강 교수는 해석했다.
북한 담배는 유독 체제의 특성과 관련된 이름이 많다. ‘붉은 별’이란 담배는 북한의 국장(國章)에 새겨진 별 모양에서 명칭을 따왔는데, 이른바 주체 혁명을 상징한다. ‘위성’은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개발을, ‘백두산’과 ‘천지’는 북한 정권 수립의 근간을 의미한다. ‘하나’는 북한 중심의 남북 통일을 강조한 구호와 노래에서 따왔고, ‘고향’은 김일성의 생가인 평양 만경대고향집과 그가 고향 집을 생각하며 불렀다는 ‘사향가’를 떠올리게 한다고 강 교수는 분석하고 있다. 그는 “소비자의 욕구가 강조되는 자본주의와 달리 북한의 브랜드는 국가가 주입하고자 하는 정치사상이 내포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담배를 비롯한 상품 브랜드가 북한 체제를 들여다보는 하나의 창(窓)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영종 통일 북한전문 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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