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눕터뷰]"프로레슬링 붐은 온다!" 역도산·김일 뒤 잇는 김남석 프로레슬러
프로레슬링은 '엔터테인먼트' 요소 가미된 퍼포먼스
1960-70년대는 한국 프로레슬링의 전성기였다. 일본에서 활약한 역도산, 박치기왕 김일, 거구의 몸으로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이왕표까지. 프로레슬링 경기가 있는 날이면 사람들은 동네에 텔레비전이 있는 집으로 몰려들었고 경기가 열리는 서울 장충체육관 인근은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신당동 사거리까지 북적거렸다. 70년대 초반 은행원의 한 달 월급이 15만원 정도였는데 프로레슬러의 시합 출전료가 10~15만원이었다. 프로레슬러들은 많은 수입과 영웅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이왕표 이후로 선수들의 맥이 끊기고 새로운 격투기들의 등장으로 인기는 시들해져만 갔다.

과거의 영광은 사라졌지만 한국에서 프로레슬링이 사라진 건 아니다. 프로레슬링 ‘제10대 올 아시아 헤비급 챔피언’이자 인디 프로레슬링 단체 ‘피트(FIT)’의 대표인 '하비몬즈' 김남석(33)이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는 “한국의 프로레슬링은 아직 죽지 않았다”며 "한국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프로레슬링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경기도 고양시 피트 체육관을 찾아 한국 프로레슬링의 현주소와 미래의 청사진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현재 15명 정도의 선수가 활동하고 있다. 최근 한국프로레슬링연맹(WWE)이 재정비되어 새로 출범하기도 했다. 프로레슬링 부활을 위한 경기들도 열리고 있다. 선수는 각 단체에 소속되어 시합에 출전할 수 있다. 피트에서는 한 달에 2회 선수들 간 실력을 겨루는 '도장쇼'를 열고, 일 년에 한두 번 해외 선수까지 초청하는 큰 규모의 대회를 개최한다. 단체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운동에만 전념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낮에는 직장인으로, 밤에는 프로레슬러로 변신한다"
Q : 과거의 스포츠라 여겨지는 프로레슬링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있나?
A : “17살에 갑자기 사고로 누나를 잃었다.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컸다. 학교도 그만두고 소위 말하는 ‘비행 청소년’의 삶을 살았다. 삶의 목적도 없이 방황하던 날들이었다. 그때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미국 프로레슬링 경기를 봤다. 나보다 더 못되게 생긴 사람들이 싸우는데 관중들이 열광하더라. 충격이었다. 그들의 얼굴에 환호와 즐거움이 가득했다. 나도 링에 서서 그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그 길로 이왕표 선생님 체육관을 찾아가 프로레슬링에 입문했다. ”

Q : 데뷔전은 어땠는지?
A :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경기했다. 상대도 나와 같이 데뷔를 하는 선수였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링 위에 올라갔는데 경주마처럼 주변은 안보이고 앞만 보이더라. 십여분의 시간이 3~4초의 순간처럼 짧게 느껴졌다. 그저 다치지 않고 무사히 경기를 끝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승리로 장식했다”
![김남석 선수는 챔피언에 오르자마자 김일 선수의 고향을 찾아 인사드렸다. [사진 김남석]](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07/20/joongang/20190720110122254ireg.jpg)
A : 연습생 시절 휠체어를 타고 체육관을 자주 찾으셨다.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시기만 했는데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느껴졌다. 선수로 데뷔 이후 선생님이 누워 계신 병실을 자주 찾았다. “넌 될 놈이야”라는 말을 해주시더라. 일본 진출도 선생님의 권유로 도전하게 됐다. 지난 1월 챔피언에 오른 뒤 가장 먼저 선생님이 잠들어계신 전남 고흥을 찾아 인사드렸다.
![지난 2012년 제로원 코라쿠엔홀에서 열린 액션 대회. [사진 김남석]](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07/20/joongang/20190720110122527ujsi.jpg)
A : “지난 2008년 일본으로 갔다. 미국 WWF(현 WWE) 초대 챔피언을 지낸 타카 미치노쿠 선생님의 체육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타카 선생님이 날 좋게 봐주셨다. 데뷔전 상대로도 나서주시고. 한국보다 더 큰 무대, 많은 관중 앞에 서며 선수로도 승승장구했다. 일본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타카 미치노쿠(왼쪽)와 김남석. 김 선수는 타카 미치노쿠를 정신적인 스승으로 모신다고 했다. [사진 김남석]](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07/20/joongang/20190720110122714bkxv.jpg)
A : “날 시기하고 질투하는 무리가 있었다. 정신적으로 많은 괴롭힘을 당했다. 특히 한·일관계에 있어서. 자리를 피하면 쫓아다니며 집요하게 시비를 걸었다. 프로레슬러는 단련된 몸이라 육체적 고통에는 끄떡없다. 그런데 정신적인 고통은 정말 견디기 힘들더라. 결국 타카 선생님께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3년 만에 짐을 싸서 돌아왔다”
![지난 1월 챔피언에 오른후 함께 시합한 선수들과. [사진 김남석]](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07/20/joongang/20190720110122984fjil.jpg)
Q : 돌아온 직후 자신만의 체육관을 열었나?
A : “한국에서 다시 잘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프로레슬러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전문적인 훈련 공간을 만들어 선수를 길러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선수층이 생겨야 경기도 할 수 있는 거니까. 미국 필라델피아로 3개월간 전지훈련 겸 선진 시스템을 배우러 갔다. 체계적으로 연습생을 지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 11명을 데뷔시켰고 현재 5명이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올 아시아 헤비급 챔피언 매치'가 메인 이벤트로 소개된 인생공격5 포스터. 오른쪽 위가 김남석. [사진 FIT]](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07/20/joongang/20190720110123228fgmi.jpg)
!['올 아시아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한 김남석 선수. [사진 김남석]](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07/20/joongang/20190720110123514zezl.jpg)
김남석이 이번에 획득한 올 아시아 헤비급 챔피언은 1955년 11월 22일 역도산이 초대 왕좌에 오르며 탄생한 타이틀이다. 역도산의 사후 그의 제자 김일이 1968년 11월 9일 장충체육관에서 제2대 챔피언에 등극한 이후 4,5,7대 챔피언에 올랐다. 역도산·김일 등 한국 프로레슬링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챔피언 벨트인 셈이다.

그간 프로레슬링은 ‘짜고 하는’ 논란에 휩싸이곤 했다. 지난 1965년에는 “프로레슬링은 쇼다”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한국 장영철과 일본의 오쿠마가 시합하던 중 링 아래에 있던 장영철의 후배들이 링 위로 뛰어 올라가 오쿠마를 공격한 사건이다. 장영철과 후배들은 경찰에 입건됐고, 오쿠마가 ‘정해진 약속’을 어긴 것에 격분해 링 위로 뛰어올랐다고 실토했다. 이런 각본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많은 프로레슬링 팬들이 실망했다.
![지난 1월 '인생공격5'대회에 참가해 경기하는 김남석 선수. [사진 김남석]](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07/20/joongang/20190720110123921iasz.jpg)

A : “정해진 각본이 있다. 이걸 두고 경기를 ‘디자인’한다고 말한다. 승패도 정해져 있다. 이미 많은 관객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 살살 하지는 않는다. 짜여진 각본 외에 애드립도 존재하고. 승패를 나누더라도 선수들은 승자와 패자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낀다. 프로레슬링은 상대방이 쓰러질 때까지 계속 공격해야 하는 경기가 아니다. 관객들이 승패를 떠나 경기중에 나오는 격한 퍼포먼스, 연극적 요소 등의 즐거움을 느꼈으면 한다”

Q : 부상도 심할 텐데?
A : “자잘한 부상은 달고 산다. 큰 부상은 교통사고처럼 온다. 경기중에 싸인이 맞질 않아 상대 선수의 발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았다. 엄청 쎄게. 눈 주위 얼굴 뼈가 여러 조각으로 부서졌다. 수술받고 두 달 만에 복귀했다. 트라우마가 생길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링 위에만 올라가면 두려운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

A : “리프트 크러쉬박스. 상대를 들어 올려 그대로 내리꽂는 건데 내가 만들었다. 경기를 마무리하며 결정적으로 한 방 날릴 때 쓰는 기술이다”

Q : 프로레슬링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 것 같은데?
A : “현역 선수들 모두 투잡이 기본이다. 운동에만 전념할 수 없기에 생계를 위해서 막노동, 경호원, 물류배송, 휴대폰 판매도 했었다. 지금도 헬스 트레이너 일을 하고 있다”
A : “일단 김일 선생님이 넌 될 놈이야라고 하셨고… 그 말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것을 그만두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너무 좋아하니까. 레슬링이 주는 즐거움이 이러저러한 괴로움을 날려 버린다”

Q : 앞으로의 꿈은?
A : “프로레슬러로 유명해지고 싶다. 그리고 큰 무대에 서고 싶다. 고척돔처럼 엄청 큰 장소에서 많은 팬 앞에서 경기 하고 싶다. 더 나아가 세계 투어를 떠나 다양한 나라의 관객들 앞에서 한국의 프로레슬링을 보여주고 싶다.”
"프로레슬링 붐은 온다!"
사진·글·동영상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 눕터뷰
「 '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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