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범의 문화탐색] 노블하우스 옆 바우하우스
국내 디자인 교육에 영향
우리 안의 바우하우스
그 현주소는 무엇일까

이상할 것 하나도 없다. 프랑스 빵집이 반드시 프랑스 풍(?)으로 생겨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막걸릿집 이름에 뉴욕을 붙인다고 해서 안 될 것은 없다.(홍대 앞에 실제로 있다!) 기호는 원래 자의적이다. 바우하우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바우하우스는 어디에나 있다. 미술학원이나 인테리어용품점이 바우하우스인 것은 차라리 그럴듯하다. 애견 샵 이름이 바우하우스(Bow House?)인 것은 가위 창의적이라 할 만한데, 심지어는 바우하우스라는 브랜드의 원목 도마가 텔레비전에 소개된 적도 있다. 이처럼 바우하우스는, 아니 바우하우스라는 기호는 우리 주변에 드물지 않게 눈에 뜨인다.
바우하우스는 1919년 독일에서 설립된 디자인학교다. 디자인에서의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학교로서 현대 디자인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올해 설립 100주년을 맞아 세계적으로 많은 행사가 열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전시와 강연, 영화 상영 등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바우하우스의 명성에 비하면 그리 관심이 높다고 하기는 어렵다. 한국 역시 현대 디자인을 상징하는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딱히 직접적인 관계는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웃 일본에서는 일찍이 바우하우스에서 유학한 부부 작가(야마와키 이와오와 야마와키 미치코)를 회고하는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바우하우스는 한국에서 하나의 기호적 풍경을 이루고 있다. 유난히 고시원·빌라·모텔 등 부동산과 관련된 대상이 많이 있다. [사진 최범]](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09/12/joongang/20190912000933687frap.jpg)
미국의 미술평론가 톰 울프(Tom Wolfe)는 『바우하우스로부터 오늘의 건축으로(From Bauhaus to Our House)』(1981)라는 책을 통해 유럽 건축의 압도적 영향 아래 놓인 미국의 현실을 식민지 콤플렉스라고 꼬집은 바 있다. 미국의 관점에서 바우하우스를 비판적으로 읽어낸 것이다. 나는 우리에게도 이런 시각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바우하우스의 명성을 단지 소비하거나 상투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닌, 바우하우스에 대한 객관적이고 균형 있는 이해를 선행하면서도 한국의 관점에서 바우하우스를 보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 안의 바우하우스’가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마침 오는 20, 21일 양일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바우하우스, 모더니티, 한국 디자인’이라는 심포지엄이 개최된다. 제목에 들어간 ‘한국 디자인’처럼, 이 행사는 단지 바우하우스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한국 디자인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찾아보고자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음 달인 10월에는 역시 DDP에서 ‘바우하우스 미러’전(10월 14일~11월 30일)이 예정되어 있다. ‘거울’이라는 개념을 매개로 삼아 바우하우스를 조명하는 전시다. 바우하우스라는 거울에 비친 한국 디자인과 한국 디자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바우하우스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를 묻는 전시다. 바우하우스 100주년을 맞아 노블하우스 옆 바우하우스만이 아닌 다른 ‘우리 안의 바우하우스’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물어보아야 하지 않을까. 바우하우스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하우스를 위해서 말이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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