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의 직격인터뷰] "전투기 몰던 남편, 조종사 아내 위해 먼저 전역했죠"
전우들과 생사고락하며 성취감 커
갓난아이 두고 비상출격 힘들지만
아이 낳고 난 뒤 삶은 더 행복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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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첫 여성 비행대대장 삼총사
“막상 조종사가 되고 보니 아이 낳는 문제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여성 조종사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한다는 루머도 있었다. 그러나 임신하면 비행은 어떻게 하는지부터 출산 뒤 비행하지 못하는 문제, 심지어 출산하고 나면 기억력이 떨어져 깜박깜박하는 현상이 있다는 것도 두려움이었다. 임신과 출산을 마치면 남성 동기 조종사보다 경력이 뒤처진다는 걱정도 컸다.”
![공군 첫 여성 비행대 대장들. 사진은 공중급유기를 살피고 있는 공중급유비행 대대장 장세진 중령. [사진 공군]](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12/18/joongang/20191218105148172alhs.jpg)
Q : 공군 최초 여성 비행대대장이 된 기분은.
A : ▶장=“완벽하게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가장 크다. 일생에 딱 한 번 하는 대대장에 고민이 많았다. 전쟁에 대비해 실전적인 비행 기량을 쌓고 작전 수행능력을 유지하는 게 먼저다. 최상의 전비 태세 유지다. 그래서 사소한 스트레스보다는 정신무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박=“전투비행대대장은 창끝부대의 핵심 전투력이다. 그런 직책을 맡게 돼 영광으로 생각한다. 성별을 떠나 전투기 조종사로 역할을 다 하겠다.”

A : ▶장=“공군 작전을 획기적으로 신장시킨다. 그동안 공군 주력기(F-16과 15)로 독도와 이어도 등에서 작전하는데 시간상으로 제한이 많았다. 그러나 공중급유기로 전투기에 기름을 공급해주면 작전이 1시간 이상 늘어난다. 공중급유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전역에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여유 있게 작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공군의 전략적 작전능력이 크게 확대된다는 의미다.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KC-330 공중급유기는 4대다. 이 급유기 1대로 F-16은 20대에, F-15는 10여대에 공중급유할 수 있다. 또 해외 파병 병력을 싣고 거의 모든 대륙에 공수할 수 있다.”
![공군 첫 여성 비행대 대장들. 사진은 FA-50 전투기에 탄 전투비행대대장 박지연 중령. [사진 공군]](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12/18/joongang/20191218105150405jktv.jpg)
A : ▶박=“FA-50은 국산 고등훈련기 T-50을 개조해 만든 첫 다목적 전투기다. 별명은 파이팅 이글이다. 지상공격은 물론 공중 초계임무도 수행한다. 이 전투기로 2014년 부대를 창설했는데 이듬해 말부터 정상작전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새내기 부대다. 그래서 전투기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훈련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임무 수행에 필요한 훈련을 찾아내 반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신뢰를 바탕으로 안전한 비행과 완벽한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Q : 여성 조종사로 대대장 맡은 부담은 없나.
A : ▶장=“우리 공중급유기대대에는 40여명의 장교와 부사관이 있다. 그 가운데 여군은 나를 포함해 딱 2명이다. 그러나 사관생도 시절부터 20년 동안 남성과의 근무에 대한 부담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구성원 대부분이 남성이지만 지휘에 어려움이 없다고 본다.”
▶편=“최초 여성 대대장보다는 처음 맡게 되는 대대장으로서 책임감이 더 크다. 지휘관 소임을 잘해내고 싶은 성취 욕구를 느낀다.”
▶박=“여성이라는 부분이 부각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움을 훼손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전·평시 대비태세 유지가 더 중요하다.”
Q : 최초 여생도·최초 여조종사 등 최초에 대한 부담은.
A : ▶장=“공사에 가입교 때 언론 취재진이 대거 왔었다. 생도 가운데 유명인이 있나 했더니 여자 생도인 우리가 취재 대상인 걸 알고선 깜짝 놀랐다. 최초 여생도가 쉽지는 않았다. 여생도에 관한 축적된 자료가 없어 남생도보다 더 정밀한 평가를 받았고 관심도 집중적으로 받았다. 그래서 차라리 최초가 아닌 두 번째로 선발하는 여생도로 입교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후배들이 들어오면서 책임감이 생겼다. 힘은 들어도 의미 있는 일이어서 보람을 느꼈다.”
![공군 첫 여성 비행대 대장들. 사진은 조종사 양성 용 초등훈련기 KT-1에 탑승한 비행교육 대대장 편보라 중령. [사진 공군]](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12/18/joongang/20191218105154228qjhf.jpg)
Q : 여성 조종사로 20년 군 생활 가운데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
A : ▶장=“아이를 출산한 뒤 10개월 만에 비행단에 복귀할 때다. 공군에선 신체에 부작용이 있을까 우려해 아예 1년 뒤에 복귀하라는 권유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를 수용하면 여성 후배 조종사에게는 아예 규정으로 굳을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우겨서 비행대대에 돌아왔다. 복귀과정이 쉽지 않았다. 남성 조종사는 비행하지 않는 부대로 갔다가 비행단에 복귀하면 계기비행과 탐색구조, 조명비행 등을 한 번씩 거치면 조종 임무가 자동으로 정상화된다. 그러나 여성 조종사는 출산 뒤 이런 복귀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해야만 했다. 우리가 특별관리대상이 된 것이다. 다행으로 그런 시범적용은 다음 기수까지만 적용됐다.”

Q : 워킹맘 조종사로 어려움은 없었나.
A : ▶장=“워킹맘의 공통된 사안이지만, 일과 육아의 병행이 쉽지 않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격이다. 아이가 돌이 될 때까지 비행단 근무에 어려움이 많았다. 갓난아이가 밤새 우는데 잠도 자지 못한 채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해 비행 스케줄을 짜고 비행편대도 지휘했다. 특히 조종사는 비행대대에서 비상대기하는 임무가 주어지는데 갑자기 출격해야 할 때가 문제였다. 천안함 피격 사건(2010년 3월) 때다. 당시 남편은 대구에서 시어머니는 광주에서 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출격 임무가 떨어진 것이다. 아이보다는 임무 수행이 우선이지만, 마음은 아팠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니 더 행복했다. 부대에선 비행 임무 수행과 지시 등으로 긴장의 연속이지만, 집에 오면 아이들과 웃고 맛있는 음식 먹고 하면서 스트레스가 저절로 해소됐다. 밸런스가 유지됐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황달 등으로 입원시켰을 때 살면서 처음 울었다.”
Q : 남편이 조종사에서 전역했다던데.
A : ▶장=“공사 동기생인 남편과는 연애 7년 만에 결혼했는데 항상 주말 부부였다. 대구에서 F-15K 전투기 조종사였던 남편과 다른 지역의 부대에서 근무해 평일에는 만날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서로 대대장까지 하면 도저히 함께 살 형편이 안될 것으로 생각했다. 대대장은 한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로에 대해 고민했다. 가족만 생각하면 내가 전역하는 게 맞다. 아이들에겐 엄마와 함께 있는 게 중요해서다. 하지만 나는 조종사 생활에 만족했고 스트레스도 덜 받는 편이었다. 결국 남편이 양보했다. 그가 군 생활 15년 차에 전역해 민항기를 몰게 됐다. 그때 남편에게 정말 미안했다.”
박 중령 또한 남편이 동기생으로 전투기 조종사인데 장 중령과 같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박 중령의 남편도 아내를 위해 전역한 뒤 민항기 조종사가 됐다.
Q : 앞으로 포부는.
A : ▶장=“지난 1월 공군에 들여온 공중급유기를 내년 7월부터 정상적인 작전 임무 수행에 성공할 수 있도록 준비가 잘 됐으면 좋겠다.”
▶박=“안전한 비행과 공정한 조직문화가 조성되고, (공중에서) 서로의 생명을 의지하며 완벽한 작전을 수행했으면 한다.”
김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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