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 vs 넥슨 경영권 분쟁의 전말..엔씨의 위험한 자충수 통할까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나, 아니면 폭풍 전야인가.' 엔씨소프트와 넥슨의 경영권 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엔씨소프트와 넷마블게임즈(이하 넷마블)는 2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로 더플라자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글로벌 게임 시장 진출을 위한 공동 사업 모색과 전략적 제휴를 선언했다. 두 회사는 상호 지분 투자와 사업 협력에 합의했으며 조만간 합자회사도 설립하기로 했다. 엔씨소프트는 넷마블과의 제휴를 통해 최대 주주인 넥슨보다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겉으로는 엔씨소프트와 넥슨, 두 회사 간 분쟁이 잠잠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누가, 어떤 패를 숨겨 놓고 있는지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갈등을 바라보는 게임업계 시각은 당연히 좋지 않다.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한국 대표 게임회사 간 갈등 관계는 게임산업 발전의 저해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홍 한국게임학회장(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또한 "그렇지 않아도 국내 게임산업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 발생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김정주 넥슨 회장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선후배 사이다. 김택진 대표가 김 회장의 1년 선배로 30년 가까이 형·동생으로 지내왔다. 둘은 국내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벤처 1세대'로 불린다.
'절친'이었던 이 둘의 관계가 갑자기 틀어져 경영권 분쟁으로 확대된 원인은 무엇일까. 사건 전말을 시간 순서대로 재구성해본다.
갈등의 씨앗
EA 공동인수 실패
양 사 갈등의 시작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6월 넥슨 일본법인은 엔씨소프트의 주식 14.68%를 8045억원에 사들였다. 두 회사는 지분 매각 목적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이후 글로벌 스포츠 게임회사 일렉트로닉아츠(EA)를 인수하기 위함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EA 주가는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었다. 스포츠 게임 전문 기업인 EA는 모바일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2012년 6월 EA 주가는 11.02달러로 1999년 2월 이후 최저였다. 시가총액도 4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김정주 회장과 김택진 대표가 협력하면 충분히 인수 가능해 보였다.
넥슨은 2011년 12월 일본 증시에 상장하면서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게 됐다. 김택진 대표는 개발자 이미지가 강한 경영자로 EA 인수자로 나서기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김택진 대표의 자금이 넉넉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자신이 갖고 있던 엔씨소프트 지분을 넥슨 일본법인에 넘기는 방법으로 현금을 마련한 후 함께 EA 인수에 나서자는 작전을 짰다.
하지만 EA 이사회는 지분 매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때마침 출시한 '피파온라인3'가 인기를 끌면서 실적도 회복했다. 무엇보다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EA 인수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양 사의 EA 인수 시도는 결국 무위에 그쳤다.
이후 양 사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게 협력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첫 합작품은 '마비노기2'라는 게임이었다.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2012년 말 'N스퀘어'라는 조직을 만들어 개발자들을 투입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협력이 순탄하지 않았다.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개발 스타일은 너무 달랐다. 자동차회사로 비유해 넥슨이 경차나 소형차를 개발하는 회사였다면 엔씨소프트는 고급차를 개발하는 회사다. 엔씨소프트는 제품 완성도에 중점을 두지만, 넥슨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개발 스피드와 마케팅이다. 이질적인 두 회사의 협력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양 사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각자 자신들이 생각하는 철학을 바탕으로 게임을 만들었다. 보고 체계도 이중으로 나뉘었다. 양 사 개발자들 사이에서 자존심 경쟁을 벌이는 일도 허다했다. 결국 2014년 3월 N스퀘어 조직은 사라졌다. 공동 프로젝트는 서로에게 상처만 남았다. 프로젝트 무산 이유에 대해서도 양 사는 '남 탓'으로 일관하면서 협력은 더 이상 어렵게 됐다.

0.4% 추가 매입
단순 투자 → 경영권 참여
공동 프로젝트가 무산된 뒤 6개월이 지난 2014년 10월 8일.
넥슨은 엔씨소프트 지분 0.4%를 추가로 매입한다. 지분 15%를 초과하면서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심사도 승인받았다. 이때부터 게임업계에서는 넥슨이 엔씨소프트 경영권을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넥슨이 협력만으로는 시너지 효과를 내기 어렵다고 판단해 직접 운영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 넥슨은 지분 확보에 대해 당시만 해도 '단순투자'라고 공시했다. 엔씨소프트 측은 "사전 논의가 없었던 만큼 단순투자라는 약속이 지켜질지 주시할 것"이라며 경계했다.
넥슨의 약속은 오래가지 않았다. 0.4% 지분 추가 매입 이후 112일이 지난 1월 27일. 넥슨은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권 참여'로 변경했다.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직접적인 원인이다.
넥슨은 "지난 2년 반 동안 엔씨소프트와 공동 개발 등 다양한 협업을 시도했다. 그러나 기존 협업 구조로는 급변하는 IT업계의 변화 속도에 민첩히 대응하기에 한계가 있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지분 보유 목적 배경을 설명했다. 엔씨소프트 측은 즉각 반발했다. "넥슨의 일방적인 경영 참여 시도는 시너지가 아닌 엔씨소프트의 경쟁력 약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엔씨소프트의 주주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것이고, 한국 게임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비난했다.
넥슨은 2월 3일 최대 주주 자격으로 엔씨소프트에 8가지 요구 사항으로 구성된 '주주 제안 공문'을 발송했다. 넥슨이 추천하는 이사 선임, 현재 주식을 보유한 실질 주주 명부 열람, 자사주 매입과 소각, 전자투표제 도입, 비(非)업무용 부동산 매각, 다른 회사와의 협업 등이 주된 내용이다. 또 김택진 대표의 특수관계인인 동생 김택헌 전무와 부인 윤송이 사장의 연간 총 보수가 5억원을 넘을 경우, 내역과 산정 기준을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넥슨 측은 "김택진 대표의 연임은 동의한다"고 했지만, 엔씨소프트를 자극하기 충분한 제안들이었다.
엔씨소프트는 넥슨 측 요구에 대해 "두 회사 경영진이 대화를 나누는 도중 일방적인 경영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시장의 신뢰와 대화의 필요성을 떨어뜨리는 행위다. 특히 특수관계인 연봉을 공개하는 것은 법이 정한 주주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넥슨은 주주제안서에 엔씨소프트 답변 시한을 2월 10일로 정했다. 엔씨소프트 또한 기한에 맞춰 답변을 보냈다. 일각에선 일부 요구에 대해 엔씨소프트가 긍정적인 답변을 보냈다는 추측이 나왔다. 엔씨소프트의 답변을 받은 넥슨 측은 2월 12일 자신들의 입장을 정리한 공문을 추가 발송했다. 이대로 양 사 갈등은 조금씩 줄어드나 싶었다.

뒤통수친 엔씨소프트
넷마블과 제휴 통한 방어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엔씨소프트는 칼을 갈았다. 설 연휴 직전인 2월 17일, 몰래 준비했던 패를 드디어 공개했다. 국내 3위 게임업체인 넷마블과의 지분 교환을 통해 우호 지분을 확보한 것. 엔씨소프트는 넷마블의 신주 9.8%를 약 3800억원에 사들이면서 넷마블의 4대 주주가 됐다. 또 넷마블은 약 3900억원을 투자해 엔씨소프트의 자사주 8.9%를 인수해 엔씨소프트 3대 주주가 됐다. 김택진 대표와 방준혁 넷마블 의장은 "넥슨과는 무관하다"며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대한 절박함"이 제휴 배경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김택진 대표가 넥슨의 경영권 참여를 사전 차단하고 우호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라 보는 시각이 당연히 설득력을 얻는다.
이번 제휴로 엔씨소프트는 넥슨의 경영권 공격에서 한숨 돌리게 됐다. 엔씨소프트의 최대 주주인 넥슨의 지분율은 15.08%. 김택진 대표의 지분은 9.98%에 불과했지만 이번 거래로 본인 지분에 우호 지분(넷마블 보유분) 8.9%를 더해 총 18.88%의 의결권 있는 지분을 확보했다. 넥슨 측은 "엔씨소프트가 최대 주주인 넥슨과 상의 없이 넷마블에 자사주를 매각하고 대규모 지분 투자를 한 데 대해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엔씨소프트는 법 규정을 들며 넥슨에 이를 사전에 알릴 필요가 없다고 맞섰다.
이번 결정은 출혈도 컸다. 엔씨소프트는 협력을 위해 넷마블 유상증자에 참여해 신주 2만9214주(9.8%)를 3800억원에 인수했다. 넷마블 기업가치를 약 4조원으로 평가한 것. 현재 넷마블의 기업가치는 2조원 남짓이다. 즉, 두 배가량 비싸게 구입한 셈이다.
또 절대 외부와 공유하지 않았던 엔씨소프트의 IP(지적재산권)를 넷마블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엔씨소프트의 IP는 최대 주주 넥슨과도 공유하지 않았던 핵심 자산이다. 넷마블은 엔씨소프트-넥슨 경영권 분쟁을 틈타 신주도 비싸게 팔고 엔씨소프트의 핵심 자산까지 얻었다.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진정한 승자는 '넷마블'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앞으로 어떻게?
엔씨 주가가 변수
앞으로 경영권 분쟁은 어떻게 진행될까.
네 가지 시나리오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우선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기존 갈등을 뒤로하고 다시 협력하는 시나리오다. 물론 가능성이 가장 낮다. 양 사는 서로 격앙된 상황이다. 각자 한 번씩 신뢰를 깨는 행동을 했다. 엔씨소프트가 넷마블과 손잡음으로써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두 번째는 넥슨도 지분 경쟁에 뛰어드는 것이다. 현재 넥슨의 엔씨소프트 지분은 김택진 대표(우호 지분 포함)보다 약 3.8%가량 낮다. 큰 차이는 아니다. 넷마블이 엔씨소프트 지분을 인수한 가격을 적용하면 다시 최대 주주로 올라서는 데 드는 비용은 1500억원 정도. 4대 주주인 국민연금(6.88%)만 끌어들여도 김택진 대표 지분을 넘어선다. 다른 소액주주 등을 포섭할 수도 있다.
세 번째는 넥슨이 지속적으로 사태를 관망하는 것이다. 넥슨이 엔씨소프트 최대 주주 지위를 유지하는 한 회사 경영에 참여할 기회는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 내년 주주총회엔 7명의 등기임원 중 5명의 임기가 끝난다. 이 기회를 통해 넥슨은 자신들이 원하는 이사를 선임할 수도 있다. 협업 실패나 글로벌 성과 부진 등의 이유로 엔씨소프트와 넷마블 간 연합전선에 금이 가면 넥슨은 또다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넥슨이 넷마블과 손잡을 가능성도 없진 않다. 게임업계에서 넥슨과 넷마블은 '음모'를 즐기는(?) 기업으로 정평이 나 있다. 넥슨은 인수에 탁월하며, 넷마블은 매각에 일가견 있다. 이런 두 기업이 손잡고 김택진 대표를 쫓아낼 가능성도 분명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엔씨소프트가 넷마블과 손잡은 것에 대해 "여우를 쫓으려고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격"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팔고 물러나는 것이다. 이 경우 얼마에 팔 것인지와 누구에게 파느냐가 중요하다. 김정주 회장은 약 8000억원에 지분을 매입했다. 현재 주가는 매입 당시보다 약 20%가량 떨어졌다. 지금 시장 가격대로 매각하면 2000억원 가까이 손해다. 양 사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도 사실 '돈'이 문제였다. 넥슨 입장에서는 1조원 가까이 투자했지만 수천억원 손실이 발생하는 상황이 달갑지 않을 터다. 김정주 회장은 당연히 좀 더 비싸게 팔길 원한다. 그럼 누가 사는지가 중요해진다. 넷마블이 3대 주주인 텐센트의 지원을 등에 업고 넥슨 주식을 살 수도 있다. 텐센트나 알리바바 등 중국 IT기업이 눈독 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 지금과 같은 경영권 분쟁이 재현될 수도 있다.
결국 어떤 시나리오가 전개돼도 엔씨소프트 입장에선 불리할 수밖에 없다. 넷마블과의 제휴는 당장 묘책으로 보이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다. 방준혁 의장 역시 "김택진 대표와 넥슨 간 경영권 분쟁이 현실화됐을 경우 주주 이익에 부합된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며 중립적 입장을 표명했다.
"엔씨소프트의 생존 방법은 하나다. 넷마블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주가를 끌어올려야 한다. 다른 기업들이 엔씨소프트 주식을 매입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정도가 돼야 김택진 대표가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 주가가 뛰면 넥슨과의 갈등도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반대의 경우가 지속되면 이번 결정(넷마블과의 제휴)은 엔씨소프트의 존폐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이 될 것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의 총평이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97호(2015.03.04~03.10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