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SIS]한국 경제 '구조적 장기침체론' 스멀스멀..고령화·내수부진→더블S 진입(Secular Stagnation:구조적 장기침체)?

2014. 12. 2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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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한국)' vs '3.8%(세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다.

이 예상에 따르면 한국의 내년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지난 5월 전망치(3.8%)는 물론 글로벌 평균보다 0.3%포인트 낮다.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8년, 신용카드 사태가 있었던 2003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과 같이 특정 이슈가 있던 해를 제외하면 한국 경제성장률은 항상 세계 경제성장률보다 높았다.

KDI뿐 아니라 다른 연구기관이나 외국계 투자은행도 내년 한국 경제에 대해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금융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 현대경제연구원, LG경제연구원도 내년 경제성장률이 3%대 중후반을 기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노무라증권은 내년 우리나라 성장률을 3%대 중반으로 봤고, BNP파리바(3.3%)처럼 아예 3% 초반까지 낮춘 곳도 있다.

주요 경제연구소들이 이렇게 내년 전망을 암울하게 보는 이유는 고질적인 내수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세계 경제 곳곳에 암초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김성태 KDI 연구위원은 "최근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한국 경제성장세도 예상보다 낮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정부가 계획 중인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않거나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경우 내년 하반기부터 성장세가 기대만큼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선 우리 경제가 일시적 불황이 아닌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 잠깐용어 참조)' 국면에 진입한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한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얼마 전 금융·증권업계 종사자와 교수 등 경제전문가 3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4.7%가 내년 경제 상황의 키워드로 구조적 장기침체를 꼽았다.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임원은 "한국 경제가 흔히 '더블S'로 불리는 구조적 장기침체 국면에 돌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유럽과 일본 등 주변 국가의 경기 침체, 중국 경제의 성장세 둔화, 중국의 제조업 추격 등이 그 배경이 될 수 있다. 고령화와 이에 따른 만성적인 수요 부족 때문에 경제성장의 원동력인 투자와 고용이 위축되는 구조적 침체 현상이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장기침체 주장 나오는 배경은

만성적 수요 부족에 투자·고용 위축

KDI에 따르면 한국 경제는 소비와 투자가 동반 부진에 빠지고 그나마 지탱해오던 수출마저 대외 악재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 소비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부진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가계의 소비 여력이 축소되고 기대수명이 연장되는 등 구조적 요인 탓에 올해보다 소폭 확대된 2.3% 증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됐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밑도는 수치다.

수출 역시 유로존의 장기침체, 중국 경제의 성장세 둔화, 미국 기준금리 인상 등 불확실성이 부각되고 있어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내수가 부진한 데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출길이 좁아지니 기업은 당연히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KDI가 최근 1056개 상장사의 매출을 조사한 결과 지난 3분기(7~9월) 매출액 증가율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내외 경제 여건이 크게 호전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매출액 증가세가 둔화되고 영업이익률도 떨어져 올해 설비투자는 4.7% 느는 데 그쳤다. 내년에는 이보다 낮은 3.3% 증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를 서비스산업으로 바꾸려는 사회적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채 경기 자체가 가라앉고 있어 기업들도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의 민간연구소 임원은 "지난 2000년만 해도 명목 국내총생산 대비 설비투자액 비중은 12.2%였다. 하지만 지난해엔 8.6%까지 떨어졌다. 올 들어서는 더 떨어지고 있다. 투자를 견인할 만한 신성장산업이 등장하지 않고, 기업도 미래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늘리려야 늘리기 힘든 것"이라고 상황을 설명한다.

디플레이션 위협 또한 구조적 장기침체 주장에 힘을 보탠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하반기 들어 1% 안팎까지 떨어진 가운데 앞으로도 저물가 현상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저물가가 고착화하면 가계의 실질채무부담 증가, 정부의 국세 수입 여건 악화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 이대로라면 고령화로 인해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면서 장기침체에 빠진 일본의 전철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장기침체 피할 대책은 없나

재정·통화정책에 구조 개편 더해야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장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감한 통화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문한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EU, 일본 등 주요국이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펴는데 한국 혼자 가만히 있으면 원화 환율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기준금리 인하는 과도하게 떨어진 환율의 안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물가 안정 목표치가 2%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정책당국이 이를 지키기 위해 금리 인하를 포함한 추가적인 돈 풀기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다.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 하강 위험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미약한 경기회복세를 감안하면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치고 반대급부로 재정 적자가 확대되는 것은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를 위해 추가적인 세원 확보가 필수다. 김성태 연구위원은 "일단 비과세 감면 폭을 줄이고 세원을 확대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단기적으로는 어렵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증세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신 세원 투명성 강화를 위해 현금영수증 의무발급 업종을 확대하고 금융정보분석원(FIU) 정보 활용 등으로 소득 탈루를 통한 조세 회피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시경제정책 외에 잠재성장률 하락을 완충하기 위한 구조개혁정책도 필수다. 김용옥 전경련 경제정책팀장은 "경기 위축에서 벗어나려면 투자·소비 활성화를 위한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무조건적인 거시경제 확장정책이 능사는 아니라는 인식도 만만치 않다.

"물가 상승률이 1% 초반대로 낮지만 일시 충격에 의한 물가 변화를 제외한 근원인플레이션이 2% 수준으로 아직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올해 성장률도 3.5%로 애초 예상보다 낮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 경제 잠재성장률이 3% 후반대임을 감안하면 극심한 침체기라고 볼 수도 없다. 금융 안정성 규제를 완화하는 상황에서 금리까지 극단적으로 낮아지면 가계부채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이 뻔하다.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를 매우 취약한 상태로 만들 것이다. 현재 총수요 부족은 가계부채뿐 아니라 갈수록 심해지는 고령화 과정에서 생기는 수요 감축을 반영한다. 또 과도한 규제 때문에 투자가 발목 잡혀 있는 사례도 상당하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제로금리와 같은 극단적 통화정책만으로 해결하려 들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신관호 고려대 교수의 지적이다.

잠깐용어

*구조적 장기침체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 가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의 부진이 충격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만성적 수요 부족, 투자 감소와 과소 고용 등에 따른 것일 수 있다는 진단을 말한다.

앨빈 한센 하버드대 교수가 1938년 처음 사용한 용어로 지난해 11월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의 콘퍼런스에서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다시 들고나와 크게 회자됐다. 지난 8월에는 스탠리 피셔 연방준비제도(Fed) 부의장도 장기침체를 시사하는 발언을 해 크게 주목을 받았다. 피셔 부의장은 스웨덴 재무부가 스톡홀름에서 개최한 콘퍼런스에서 "실망스러운 세계 경제의 회복세는 보다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세계 경제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김병수 기자 bs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87호(12.17~12.23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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