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냐 친정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2014. 10. 19. 00:1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매거진 M] 송원섭의 문화가이드 '문화인물 탐구생활' 사망 84년 후 왕후 칭호 얻어일각에선 남편 죽인 냉혈녀로 보기도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 사극은 대개 혜경궁 홍씨의 시선을 따르는 구성을 택해 왔다. 혜경궁 홍씨의 어린 시절과 성인 시절을 각각 강수연-김영란이 연기한 TV 드라마 '안국동 아씨'(1979, MBC), 이재은-하희라가 연기한 TV 드라마 '하늘아 하늘아'(1988~89, KBS2)가 대표적이다. 이후로도 그 전통은 상당히 충실히 지켜져 왔다. 이 시기를 그리기 위해 가장 많이 참고해야 할 문헌이 바로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이니, 그의 눈을 통해 사건을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듯하다.

사도세자의 아내이자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는 1735년 6월 18일 한양 서대문 밖 평동의 풍산 홍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홍봉한이 전날 흑룡의 꿈을 꾸었으므로 많은 사람이 귀하게 될 아이라고 축하했다 전한다. 홍봉한은 노론 명문가의 자손이었으나 매우 가난했다. 30세까지 과거 급제를 하지 못하고 종9품 참봉에나 간신히 올랐지만, 그해 딸이 세자빈으로 뽑혔고 이듬해인 1744년 드디어 과거에 급제해 본격적인 벼슬길에 올랐다.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적절한 타이밍이다.

이에 대해 혜경궁은 『한중록』에서 홍봉한이 30세 때 태학장의(성균관 학생 대표) 자격으로 영조를 만나 "오늘 인재를 얻었다"는 칭찬을 들었고, 그 덕분에 9세에 불과한 자신이 모든 규수들을 제치고 간택에서 뽑힌 것이라 적어 놓았다. 또 "영조의 두 왕후와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친정을 다 살펴 봐도 급제자가 없었다"며 홍봉한의 급제가 외척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실력의 결과라고 재차 강조하고 있다.

아무튼 그 뒤로 홍봉한·홍인한 형제를 중심으로 한 홍씨들은 최고의 권문세가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홍씨들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주도 혹은 방조한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돼 버렸다. 사도세자의 후원 세력이 소론이요, 그 상대편이 영조의 친위 세력인 노론인데, 노론의 핵심이 홍씨 가문이었으니 세자에겐 처가가 가장 큰 적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혜경궁의 숙부 홍인한은 세자의 죽음에 관여한 데다 세손의 대리청정을 적극 반대하며 세손의 등극을 저지하려 한 기록이 있다. 결국 정조 즉위 직후, 홍인한은 처형됐고 가문은 풍비박산 났다.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와 경주 김씨 집안, 정조의 심복인 홍국영 등이 모두 홍씨들의 적이었다. 홍국영은 같은 풍산 홍씨였지만 어린 시절 홍인한에게 박대당한 원한이 깊었다.

정리하면 혜경궁은 9세에 세자빈이 되어 27세에 남편을 잃고, 10여 년간 친척들로부터 아들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다가, 41세 때 정조의 즉위로 한숨을 돌렸으나 이번엔 아들이 아버지의 원수라며 자신의 친정을 처단하는 꼴을 지켜 봐야 했다.

세월이 흘러 정조도 마음이 풀렸고, 외가의 신원(억울함을 풀어줌)에 나섰다. 하지만 혜경궁의 풍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65세 때, 아들 정조가 급사하며 필생의 라이벌인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에 나섰다. 1년 뒤 혜경궁의 동생 홍낙임은 사약을 받았다. 이를 갈던 혜경궁은 1804년 순조가 친정에 나선 것을 계기로 정순왕후의 척족들을 한방에 쓸어 버린다. 그러나 묘하게도 『한중록』은 정순왕후 본인에 대해선 "본성이 착하고 천품이 용하다"며 호의적으로 써 놓았다. 정조에게 적대적이었던 화완옹주를 '정처(정씨의 아내라는 뜻)'라며 비하한 것과 대조적이다.

혜경궁이 60세 생일 때부터 네 차례에 걸쳐 쓴 『한중록』의 주제는 바로 '풍산 홍씨 가문의 재건을 위한 진실 소명'이다. 주요 내용은 아버지 홍봉한이 얼마나 사도세자의 구명과 정조의 보호를 위해 힘썼는가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여기서 혜경궁은 애매한 입장이다. 만약 사도세자가 진짜 역적이라 죽었다면 아들 정조의 왕 자격에 하자가 있다는 말이 되고, 죄가 없는데 죽었다면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홍씨들이 죽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인지 『한중록』은 세자가 '갖가지 비행을 저지른 것은 맞지만 이는 (정신)병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두 입장 사이의 절묘한 균형인 셈이다. 이런 입장 때문에 일각에선 혜경궁을 친정의 권력 때문에 남편을 죽음에 몰아 넣은 냉혈녀로 보기도 한다. 현재 방영 중인 TV 드라마 '비밀의 문'(SBS)이 그렇다. 하지만 단지 추정일 뿐, 확실한 근거는 없다.

1815년, 혜경궁 홍씨는 80세의 나이로 이승을 떴다. 43년 뒤인 1858년 홍인한이 복권됐고 고종 때인 1899년에는 남편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숭되면서 혜경궁 홍씨도 현경왕후의 칭호를 얻었다. 사후 84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얼굴을 폈을 혜경궁 홍씨가 지금 '비밀의 문'을 본다면, 저승에서도 편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글=송원섭 (블로그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운영자. 모든 종류의 구경과 참견이 삶의 보람. '오지라퍼'를 만든 사람.)

국민들 안전인식 바뀌나…"애석하지만"

"北 장교들 달러 탐내 부인과 대북전단 수거 소문돌자…"

노동보다 더 피곤해진 연애…차라으~리 의리로 살자

'DJ-日총리 회담' 통역男 "DJ, 차 앞자리 태우더니…"

똑똑하고 예쁜 최고의 인권변호사와 결혼하는 완벽男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