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찬의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 읽기'](6)그리스 로마 신화 ➋ 신들의 왕 제우스는 쿠데타의 원조

2013. 9. 2.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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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가 '일리아스'에서 영웅들의 비범한 행위와 고통을 그렸다면 헤시오도스(기원전 740~670년)는 '신통기'에서 그리스인에게 신의 계보를 만들어줬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따르면 제우스가 신들의 제왕이 된 것은 주어진 게 아니라 스스로 권력투쟁을 한 결과였다. 신들의 세계는 자식이 부모를 배반하는 권력투쟁으로부터 시작됐다.

헤시오도스는 카오스 상태에서 등장한 최초의 신은 우라노스(하늘)와 가이아(대지)라고 했다. 이 두 신에게는 티탄(그리스 신화에서 올림포스 신족이 등장하기 이전에 세계를 지배하던 거인족의 신족)이라고 알려진 6명의 아들과 6명의 딸이 있었다. 그 가운데 막내 크로노스는 낫으로 아버지의 고환을 잘라 바다에 던져버렸다. 자식에게 거세당한 우라노스는 결국 열두 자녀에게 신들의 지배권을 넘겨줬다.

신티탄족의 지배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크로노스의 막내인 제우스가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었다. 제우스는 신티탄족과 10년 전쟁을 치른 후 아버지 크로노스를 쫓아내고 최고신이 됐다. 제우스와 그의 형제자매는 올림포스 산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들이 바로 신들의 세상을 다스리는 올림포스의 12신이다.

신들의 지배자는 우라노스에서 크로노스로, 그리고 제우스로 이어졌다. 말하자면 크로노스와 그의 아들 제우스로 이어지는 신들의 정권교체인 셈. 쿠데타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다. 이어 제우스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세상의 3대 영역을 지배하는데 포세이돈은 바다, 하데스는 땅 밑 죽은 자들의 세계를 맡았으며 제우스는 하늘의 왕으로 구름을 모으고 비를 부르며 천둥번개를 부린다. 제우스와 포세이돈, 하데스의 분할통치는 오늘날 민주정치의 삼권분립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올림포스 신들의 시대가 됐지만 아직 인간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제우스는 인간 창조에 나선다. 먼저 제우스는 사촌인 프로메테우스와 그 아우인 에피메테우스라는 두 티탄에게 인간 창조를 맡겼다. 프로메테우스라는 이름은 '생각이 깊다'라는 의미다. 에피메테우스는 '뒷걱정'을 의미하는데 무엇이나 충동적으로 해치우고선 나중에 후회한다는 뜻이다. 에피메테우스는 경솔한 성격대로 인간을 만들어내기 전에 이미 다른 동물들에게 용기, 힘, 민첩함, 영리함과 날개, 털가죽 등 뛰어난 능력을 거의 다 줘버렸다. 막상 인간에게 줄 것이 없자 에피메테우스는 당황해 형에게 도움을 청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 방법을 궁리하고 신들과 마찬가지로 서서 걸어 다니게 했다. 그리고 태양 가까이까지 가서 인간을 위해 불을 갖고 왔다.

그런데 불 때문에 인간은 점차 오만해지고 타락해 갔다. 불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자 인간은 자신을 창조한 신을 업신여기기 시작했다. 불로 오만해진 인간에 대한 분노로 제우스는 원인 제공자인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 산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어놓고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도록 하는 벌을 내린다. 그런데 제우스에게는 예지력을 지닌 프로메테우스의 도움이 필요했다. 제우스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자식 중 누군가가 언젠가는 반드시 자기를 왕좌에서 몰아낼 것임을 알고 있었다. 다만 누가 그 반역을 할 자식인지 알 수 없었는데,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존재가 프로메테우스뿐이었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헤르메스를 전령으로 보내 그 비밀을 알려주면 사슬을 풀어주겠다는 '사면' 제의를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단호히 거부한다. 이 지점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저항의 상징이 된다.

최초의 여성 '판도라'는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응징으로 제우스가 보냈다고 한다. 모든 신들의 재능을 모아 만들었다고 해서 이름이 판도라다. 판도라를 지상으로 데려가는 역할을 맡은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는 마지막으로 그녀 입속에 '거짓말'과 '도둑 근성'을 함께 넣었다. 그래서 여성의 목소리는 아름답지만 말은 진실과 감정을 왜곡하고 위장한다는 것이다.

판도라는 이 세상으로 상자 하나를 가져왔는데 신들은 거기에 전쟁, 역병, 기근 등 세상의 온갖 해악을 넣어 놓았다.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이 상자를 열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일렀지만 판도라는 호기심에 못 이겨 그만 상자 뚜껑을 열고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올 문제들을 인간 세상에 쏟아냈다. 다만 오직 한 가지, 모든 불행을 이겨내도록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희망'만 상자 속에 남겨 놓았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이후 인간의 타락은 더욱 심해지고 결국 신의 노여움을 사 멸망의 길에 이른다. 마치 성서 속 아담과 이브의 타락과 종말을 연상시킨다.

제우스는 판도라가 상자를 열면서 촉발된 재앙과 타락으로 인해 인간의 행태에 분노하고 신들의 회의를 소집한다. 여기서 제우스는 인간을 멸하고 다른 종족을 만들겠다며 세상을 물바다로 만든다. 이때 오직 파르나소스 산만이 물 위에 솟아 있었는데 프로메테우스의 아들인 데우칼리온과 그의 아내 피라(에피메테우스와 판도라 사이에서 생겨난 딸)만이 유일하게 이곳에 피신했다. 예지력을 가진 프로메테우스가 홍수가 닥쳐오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아들에게 나무상자를 만들게 하고 그 속에 필요한 것을 넣고 아내와 함께 타게 했던 것이다. 제우스는 신실한 이들 부부를 물의 재앙에서 구해내고 이들에 의해 '신인류'가 다시 창조된다. 이들 부부는 신탁에 의해 '돌'을 주워 뒤로 던졌는데 남편이 던진 돌은 남자, 아내가 던진 돌은 여자가 됐다. 이 또한 성서 속의 '노아의 방주'와 유사한 스토리다. 제우스는 대홍수 후 데우칼리온 부부로 하여금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게 하면서 전령 헤르메스를 보내 신인류에게 '정의(dike)'와 '수치심(aidos)'을 줬다고 한다. 인간이 오만해져 파멸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제우스가 인간을 창조했고 다시 인간을 멸망시켰다. 이후 신인류를 창조하고 이들에게 정의와 수치심을 줘 인간의 파멸을 막았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명령을 어기면서 인간에게 불을 줬고 이로 인해 고난을 겪었지만 위압에 굴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제우스가 인간을 창조했다면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자유'를 창조해준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어떤 신보다 프로메테우스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지금까지 소설과 음악, 미술 등에서 수많은 창작품의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났다. 인간을 창조한 제우스보다 어떤 위압에도 굴하지 않는 프로메테우스의 정신이 오히려 인간을 구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비교문학 박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22호(13.08.28~09.03 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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