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왕' 차화연 무서운 연기열정, 20년 공백 무색케 하다
[오마이뉴스 김성규 기자]
SBS 월화드라마 < 야왕 > 이 20%대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수애의 악녀 연기와 권상우의 복수, 새로운 인물의 등장 등 다양한 볼거리와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구미를 만족시키는 모양새다. 특히 수애의 숨은 조력자이자 조용한 복수를 꿈꾸는 백지미 역의 차화연은 가장 눈에 띄는 연기자 중 하나다. 그 누구보다 의뭉스럽고 강렬한 캐릭터를 능란하게 연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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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차화연은 SBS 월화드라마 < 야왕 > 에서 강렬한 캐릭터를 소화하고 있다. |
ⓒ SBS |
80년대를 풍미했던 '배우 차화연'
지금의 중장년층에게 차화연은 '80년대 톱스타' 중 한명으로 선명하게 기억되는 배우다. 1978년 미스 롯데로 연예계와 인연을 맺은 그녀는 그 해 이미숙, 원미경 등과 함께 TBC 공채 탤런트 20기로 발탁되며 본격적인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선악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외모와 연기에 대한 남다른 센스로 방송 관계자들의 주목을 일찌감치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 여자의 열굴 > < 달동네 > < 추적 > < 형사 >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는 행운을 누렸다.
1981년 KBS TV 문학관 < 삼포 가는 길 > 은 차호연의 연기 인생에 전환점이 된 작품이었다. 백화라는 술집여자 캐릭터를 빼어나게 소화하며 그동안 갈고 닦은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한 그녀는 이 작품으로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한다. 영화 평론가 김두호는 "당시 차화연의 연기는 '드라마의 큰 얼굴'을 예고하며 22살짜리 어린 연기자가 쏘아올린 눈부신 신호탄이었다"고 평가했다.
< 삼포 가는 길 > 로 스타성과 연기력을 모두 검증받은 차화연은 KBS 일일연속극 < 지금은 사랑할 때 > 로 첫 주연을 따냈고 이 후, < 꽃바람 > < 엄마의 일기 > < 해빙 > < 금남의 집 > < 봉선화 > < 빛과 그림자 > < 해돋는 언덕 > < 그대의 초상 > 등 KBS 주말 연속극의 단골 배우로 입지를 굳혔다. 뿐만 아니라 1981년 < 본전생각 > 을 시작으로 < 최인호의 야색 > < 참새와 허수아비 > < 도시에서 우는 매비 > 등의 영화에도 출연해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드는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1987년 MBC 주말연속극 < 사랑과 야망 > 은 차화연에게 운명 같은 작품이었다. '언어의 마술사' 김수현 작가가 극본을 맡고 그의 파트너 곽영범 PD가 메가폰을 잡은 이 작품에서 그녀는 황폐하고 즉흥적인 성격의 '김미자' 역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파트너 남성훈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치열하고 격정적으로 쏟아낸 차화연의 연기는 가히 일품 중의 일품이었고, 대중과 평단은 이구동성으로 극찬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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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7년 MBC < 사랑과 야망 > 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낸 배우 차화연 |
ⓒ MBC |
시청률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MBC 자체 발표에 따르면 당시 < 사랑과 야망 > 의 최고 시청률은 85%에 달했다. TV를 켠 사람들은 모두 < 사랑과 야망 > 을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치인 셈이다.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차화연은 제 23회 백상예술대상 인기상을 수상하는 등 당대의 여배우로 만천하의 존재감을 과시하게 된다. 차화연의 고백처럼 "명동을 혼자 못 걸어 다닐"만큼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 사랑과 야망 > 의 종영과 함께 차화연은 돌연 결혼 발표를 했고, 남편의 요구에 따라 연예계를 은퇴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9년여 간의 배우 생활에 스스로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그렇게 80년대 최고의 연기파 배우이자 인기 스타였던 차화연은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지며 서서히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2008년, 20년간의 공백을 깨고 그녀가 다시 TV 드라마에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다.
20년 공백을 무색케 하는 '차화연의 연기열정'
2008년 SBS 일일연속극 < 애자 언니 민자 > 를 통해 연예계에 복귀한 차화연은 "이를 갈고 연기하겠다"는 각오와 함께 그 동안 숨겨왔던 연기열정을 마음껏 과시했다. 역할의 크고 작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라면 언제든 달려가 연기했고 비극과 희극, 선악을 넘나들며 다양한 연기를 선보였다. 2009년 남편과 이혼한 뒤로는 더더욱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2009년 < 시티홀 > < 천사의 유혹 > < 백야행 > , 2010년 < 제중원 > < 나는 전설이다 > < 도시락 > , 2011녀 < 마이 프린세스 > < 가시나무새 > < 보스를 지켜라 > < 천년의 입맞춤 > < 피아니시모 > < 왔어왔어 제대로 왔어 > < 결정적 한방 > , 2012년 < 적도의 남자 > < 결혼의 꼼수 > < 다섯 손가락 > < 보고 싶다 > < 네버엔딩 스토리 > 에 이르기까지 지난 몇 년간 차화연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숨 가쁘게 달려왔다. 2013년 현재도 < 야왕 > < 백년의 유산 > < 가시꽃 > 세 편을 연달아 소화하며 일주일 내내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을 정도다. 연기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을까 궁금할 만큼 전방위적 활약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차화연은 여전히 연기에 목말라하는 배우다. 못해본 연기가 너무 많아서 고민이라는 그녀는 아직까지 '신명나게 연기할 수 있는' 작품을 찾아 헤매고 있는 중이다. 드라마, 영화는 물론이고 연극 무대에도 서고 싶다는 그녀에게서 50대 중년 여배우의 안일함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마치 20년 전 < 사랑과 야망 > 때처럼, 아무도 못 말리는 열정과 패기로 똘똘 뭉쳐 있는 모습이 딱 '차화연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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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화연 |
ⓒ 이정민 |
그래서일까. 지금 차화연은 외모 뿐 아니라 연기 역시 일취월장하며 대중에게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연기자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식단조절을 통해 보기 좋은 몸매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장르를 넘나드는 유려한 연기력으로 작품 내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년 공백을 무색케 할 만큼 발성, 발음, 동선 등의 기본기는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하고, 캐릭터 소화력과 극에 녹아드는 자연스러움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훌륭하다. 과연 무서운 연기열정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배우다운 탄탄한 실력이다. 이제 차화연의 이름 앞에는 80년대를 주름잡은 왕년의 스타가 아니라, 2000년대 가장 정력적인 활동을 보인 여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마땅하다.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이 차화연 만큼 어울리는 배우도 아마 없을 것이다. 재능과 노력의 황금비율에, 열정이라는 필살기로 무장한 채 혼신을 다해 연기하는 이 중년의 여배우가 언제나 '젊은 감성'을 잃지 않기를, 그리고 스스로의 바람대로 대사를 외울 수 있는 그날까지 연기하기를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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