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삼국지] 황보숭, 황건적 토벌의 영웅이자 구시대의 마지막 충신
[일간스포츠] 황보숭은 후한 말 최고의 명장이었다. 그는 황건적 토벌에 가장 큰 공을 세웠다. 황건적의 난을 평정해 천하의 대권을 손에 넣을 기회를 잡았으나, 그는 끝까지 한나라 황실에 충성했다. 그는 구시대의 마지막 충신이었다. 일시 동탁에게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끝내 *와석종신할 수 있었다.
황건적이 평정된 후, 기주목이 된 황보숭은 굶어죽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일 년 동안 토지세를 면제해 달라고 주청했다. 황제가 이를 승낙하자 백성들은 노래를 지어 황보숭의 덕을 찬양했다.
"천하대란이 일어나자 도시가 텅텅 비었고 어미는 아이를 지키지 못하고 아내는 남편을 잃었네. 황보를 믿고 의지하고서야 편안한 삶을 다시 찾았네."
황보숭이 황건적을 격파하자 그 위엄이 천하에 진동했다. 조정은 날이 갈수록 어지러워지고, 천하의 백성들은 더욱 곤경에 처했다. 신도현령을 지냈던 서량 출신의 염충이 황보숭을 설득했다.
"지금 장군은 정말로 얻기 어려운 큰 운을 만났습니다. 이 기회를 맞이해 몸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장차 어찌 장군의 대명을 보존하겠습니까?"
천하가 어지러운 가운데 백성들의 중망과 병사들의 신임을 얻었으니 이 기회를 이용해 천명을 받아 거사해 자립하라는 뜻이었다. 황보숭은 이를 거절했다.
"밤낮으로 공적인 것만 생각하며 마음에 충성을 잊지 않는다면 어찌 평안하지 않으리오?"
후일 동탁이 집권한 후 어린 황제를 폐립하자 산동 반군이 일제히 일어났다. 동탁은 황보숭의 동태가 가장 걱정됐다. 당시 황보숭은 전투경험이 풍부한 삼만의 정예병을 거느리고 서량 변경에 주둔하고 있었다. 황보숭이 산동반군에 호응한다면 동탁은 동서 양쪽으로 협공을 받아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탁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황보숭은 한조의 충직한 신하였다. 동탁이 황제를 끼고 호령하는 한 황보숭은 그의 제어를 벗어날 수 없었다.
동탁은 산동의군을 피해 장안으로 천도를 추진하면서 천자의 이름으로 황명을 내려 황보숭을 *성문교위로 불러들였다. 장사 양연이 황보숭에게 조명을 거부하라고 권유했다.
"동탁이 수도를 약탈하고 제멋대로 황제를 폐립했는데, 지금 장군을 불러들였으니 일이 크게 잘못되면 일신에 화를 당할 것이요, 적게 잘못된다 해도 곤욕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지금 동탁은 낙양에 있고 천자는 서쪽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이 틈을 노려 장군께서 병력을 이끌고 가 천자를 영접해야 합니다. 그 후에 역적을 토멸하라는 조명을 받아 전국 각지의 병사들과 장수들과 합세해야 합니다. 원씨가 동쪽에서 압박하고 장군께서 서쪽에서 공격한다면 동탁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황보숭은 이 말을 듣지 않고 황명에 따랐다. 황보숭이 장안에 도착하자, 동탁은 담당 관리에게 지시를 내려 황보숭의 죄를 엮어 투옥했다. 황보숭은 평소에 동탁과 사이가 좋았던 그의 아들 황보견수의 간청 덕에 간신히 목숨만을 건질 수 있었다.
기회를 만났으나 용단을 내리지 못한 탓이었다. 황보숭은 치세의 충신이었지, 난세의 영웅감은 아니었다. 그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끝내 한나라 황실에 대한 충절을 버리지 않았다.

[영웅의 이면] 서량의 두 걸물, 황보숭과 동탁
황보숭(A.D ?~195)과 동탁은 여러 면에서 서로 대조적이다. 두 사람은 모두 서량에서 태어났다. 동탁은 한미한 가문 출신이었지만 황보숭은 양주 지역에서 제법 이름난 무장 가문 출신이었다. 황보숭은 조심스럽게 본분을 다하며 매사에 원칙적이고 투명했으나 동탁은 성정이 거칠고 용맹하면서도 임기응변과 권모술수가 뛰어났다.
장수로서의 성적은 황보숭이 훨씬 나았다. 동탁이 기주와 유주의 황건적에게 패전하자, 황보숭이 진격해 다 진압했다. 황보숭은 병사를 따뜻하게 대해 매번 행군할 때마다 병사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했다. 또한 병사들이 숙영할 영채가 다 건립된 이후에야 휴식을 취하러 막사로 돌아왔으며, 병사들이 모두 밥을 먹은 것을 확인하고야 밥을 먹었다. 장졸들이 사기가 높았고 황보숭을 믿고 따랐으므로 싸우면 늘 이겼다.
두 사람이 함께 출전했던 서량반군과의 싸움에서도 황보숭이 확실한 우위를 지켰다. 병법을 상황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능력에서 황보숭이 동탁보다 훨씬 뛰어났다.황보숭이 단독으로 대승을 거둬 모든 공이 황보숭에게 돌아가자 동탁이 몹시 질시했다. 그러나 정치권력 게임에서는 동탁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황보숭은 염충과 황보력의 권고를 받고도 천하의 대권을 잡겠다고 나서지 못했다. 반면에 동탁은 황명을 거부해 가면서 기회를 노렸다. 십상시의 난이 일어나자 동탁은 바로 낙양을 향해 진격했고, 도착 즉시 황제의 신병을 확보해 정권을 장악했다.
이러한 결과는 두 사람이 지휘하고 있는 군대의 성격 차이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 황보숭과 그의 부대는 매우 공적인 관계였다. 황보숭은 병사들을 아꼈지만 엄정하게 법규를 따르고 군율을 엄격하게 시행했다. 병사들은 황보숭이 국가에 충성하는 한 그에게 복종했지만, 위법적인 일에는 가담할 가능성이 없었다.동탁은 부하들을 함부로 대하면서도 휘하 장졸들과 항상 이해관계를 공유했다. 장졸들을 한솥밥을 먹는 식구들처럼 생각해 위법사항이 있어도 법을 어겨서라도 봐주었고, 전리품이든 관물을 횡령한 것이든 부하 장졸들에게 아낌없이 풀었다. 동탁과 부하들과의 관계는 좋은 일이건 나쁜 짓이건 함께 하는 사적인 운명공동체였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점은 권력의지의 문제였다. 동탁은 호시탐탐 대권을 잡을 기회만을 노렸지만, 황보숭에게는 권력의지 자체가 없었다. 결국 황보숭은 치욕스럽게도 동탁에게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거짓말 벗겨보기] 유비, 1차 황건적의 난에 참여하지도 않아
'삼국지연의'는 뭐든지 잘한 일은 다 유비가 했다고 한다. 장순의 목을 얻은 것도 유비고, 동탁과 여포를 쳐부순 것도 유비였다. 마찬가지로 황건적을 쳐부순 것도 다 유비의 공이라고 한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유비는 1차 황건적의 난 진압에는 참여하지도 않았다. 유비가 세상에 처음 나온 것은 장순·장거의 난과 2차 황건적의 난 때였다.
[풀이]
*와석종신=제명을 다하고 편안히 자리에 누워서 죽음.
*성문교위=수도 낙양의 성문을 지키는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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