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13년째..성우 안지환에게 일어난 변화
[오마이뉴스 이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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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우 안지환(44)은 1993년 MBC 11기 공채 성우로 데뷔해 영화·애니메이션·CF·TV 프로그램 등에서 활동했다. 그의 목소리를 알린 주요 프로그램 중에는 < 일요일 일요일 밤에 - 러브하우스 > < 위기탈출 넘버원 > < 무릎팍도사 > < TV 동물농장 > 등이 있다. 올해로 13년째 맡고 있는 < 동물농장 > 은 그가 가장 오래 참여한 프로그램이다. |
ⓒ ahnvoice |
지난 10일 오후 1시, < TV 동물농장 > 더빙이 진행 중인 SBS 목동 사옥의 스튜디오. 성우 안지환(44)이 "20층 아파트 옥상에 고양이가 있다"는 대본의 내용을 읽다 말고, "어, 얘 구조했어?"라고 물었다. 그리고 곧이어 들어온 고양이 구조팀의 제작진에게 "수고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2001년 < 동물농장 > 첫 방송부터 13년째 성우를 맡고 있는 안지환은 그저 작가가 쓴 걸 읽어주는 사람이 아니다. 화면을 보다가 동물의 행동이나 표정이 대본과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다른 멘트를 제안한다. 제작진과의 신뢰, 그리고 동물에 대한 관심이 전제돼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뿐인가. 사고뭉치지만 사랑스러운 강아지부터 사람의 손길이 무서운 고양이까지, 동물의 성격이나 나이에 맞는 목소리로 천연덕스러운 연기도 겸해야 한다. < 위기탈출 넘버원 > < 무릎팍도사 > 의 간판 성우로도 알려져 있는 그이지만, < 동물농장 > 이 가장 재밌게 느껴진다는 이유도 '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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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지환은 시청자와 같은 입장에서 연출되지 않은 리액션을 하기 위해 미리 방송이나 대본을 보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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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녹음, 너무 울어 이틀 동안 한 적도"
안지환은 녹음에 들어가기 전에 대본이나 방송을 미리 보지 않는다. 백지 상태에서 절로 나는 웃음, 이런 저런 자연스러운 감정의 추임새들이 시청자와 눈높이를 맞추는 방법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너무 울고 웃어 NG가 난다. 그는 눈물 때문에 어렵게 녹음했던 에피소드를 떠올리면서도 금방 눈시울을 붉혔다.
"언젠가, 암으로 죽음이 임박한 개가 실명위기의 개에게 각막 이식하는 장면은 이틀이 걸려서 녹음했어요. 제가 펑펑 울어서요. 웃음이 터지면 오히려 시청자들도 재밌게 느낄 수 있어서 좋지만, 눈물이 나면 안돼요. 소리가 맹맹하게 바뀌거든요."
13년 동안 울고 웃으면서 < 동물농장 > 이 안지환에게 가져다 준 변화도 있다. 14살된 말티즈 '깨모'를 키우는 애견인이지만, 특별히 동물애호가는 아니었던 그는 2011년 1월 '당신이 입는 모피의 불편한 진실' 편을 본 뒤로 가죽 옷을 사지 않는다.
"너무 쇼킹했어요. 시청자들은 모자이크가 되어 있는 방송으로 접했겠지만, 저는 산채로 너구리의 가죽을 벗기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면서 녹음을 해야 했거든요. 며칠을 잠을 못 잤죠. 방송 말미에 '실로 짠 옷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하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그 뒤로는 아내에게 '돈이 썩어 나도 모피는 사 입지 말자'고 했어요.
실제로 그 방송이 나간 후에 한 모피 업체가 < 동물농장 > 을 고소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몇 십억 원 어치의 반품이 들어와 손해를 봤다고요. 사실 전 통쾌했어요. 재방송을 안 하는 조건으로 합의를 봤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런 건 더 방송을 해서 알려야 하는 게 아닌가요.
< 동물농장 > 하면서부터는 보신탕도 못 먹겠더라고요. 한 번은 지인이 식당을 냈다고 해서 화환을 보내주려고 가게 이름을 물었더니, 영양탕집이래요. 아이고, 미안하지만 급한 일이 있다면서 전화를 끊었죠. 보신탕 파는 곳에 '동물농장 성우 안지환'이라고 화환을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웃음) 여러모로 유의미한 변화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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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지환은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던 연예인들의 목소리 연기 도전으로 점차 성우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현실을 두고 "그들이 왔으면 나도 그쪽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지난해 뮤지컬 < 헤어스프레이 > 에서 에드나 역을 맡기도 했던 그는 "'성우가 이런 것도 해?'라는 반응을 이끌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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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 되고 싶다면 녹음기 버리고 거울 들어라"
아직 안지환의 목소리를 떠올릴 수 없다면 더 확실한 어구들이 있다. 우선 십여 년 전 MBC < 일요일 일요일 밤에 > '러브하우스'에서 새롭게 바뀐 집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던 "어떻게 바뀌었을까요?"라는 멘트를 기억하는지.
당시 성우협회가 출연료 등급을 A와 B, 단 두 개의 등급으로 줄여놓은 것에 동의할 수 없어 '등급 프리'를 선언했던 그는 신경성으로 생긴 식도 출혈로 병원에 입원했다. 이에 '러브하우스' 담당 PD는 병원까지 찾아와서 그의 멘트를 녹음해 갔다고. 프리랜서로 전향한 이상, "대체 불가능한 성우가 되는 것"은 그의 목표이기도 했다.
그 다음은 여전히 유효한 < 무릎팍도사 > 의 "고민~ 해결!", 바로 그 목소리다. 토크 버라이어티니 만큼 상대적으로 성우의 역할이 크지는 않지만, 대본을 쭉 읽다가 한 템포 쉬고 허를 찌르며 들어오는 개그는 내레이션의 새로운 콘셉트처럼 보였다. 안지환은 " < 무릎팍도사 > 시작할 즘에 오윤환 PD와 더빙 부스에서 오만가지 수다를 떨었다"며 "그때 자유로운 분위기를 내레이션에 가져간 것인데, 지금은 콘셉트가 됐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외화에서는 주로 톰 크루즈와 장국영, 이연걸 등을 맡았다. 하지만 그는 "전담 성우라고 하기에 너무 많은 목소리를 연기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중국배우는 홍금보 빼고 거의 다 해봤다니까 천의 목소리란 이런 것인가 싶었는데, 그는 다르게 답했다.
"더빙은 약간의 착시예요. < 캐러비안의 해적 > 에서 조니 뎁을 맡았을 때, 제 딸이 허를 찌르더라고요. 톰 크루즈랑 조니 뎁 목소리를 차례로 내보라고 하더니 '대체 뭐가 다르냐'고.(웃음) 더빙은 내가 연기를 못 해도 안 되지만, 너무 뛰어나게 잘 해도 안 돼요. 딱 그 배우의 연기까지만 해야죠. 조니 뎁을 처음 맡았을 때가 기억나네요. < 가위손 > , 대사는 없고 '흣~ 후~'하는 호흡만 했었죠.(허공에서 가위질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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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우 안지환은 "목소리보다 연기력이 좋아야 성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사운드가 아닌 비주얼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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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너무 평범한 목소리"라고 자평하는 안지환은 "성우는 목소리보다 연기력이 좋아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날도 그는 의자를 들어 보이며 "의자를 들었을 때 숨소리는 이 정도다. 이렇게 직접 연기를 해보지 않으면 오버를 해서 소리를 내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안지환이 성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가장 역설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난해 말,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개원한 아카데미에 고가의 녹음 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가장 중요한 장비(?)는 연기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한 거울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평상시에도 성우를 꿈꾸는 이들에게 "녹음기를 버리고 거울을 보라"고 조언한다.
"성우는 목소리 연기자가 아니에요. 그냥 연기자죠. 목소리 연기도 사운드가 아니라 비주얼에 집중해야 되거든요. 내가 말하는 것들을 사람들이 영상으로 떠올릴 수 있어야 하니까요. 선배들이 늘 성우 연기를 할 때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라'는 얘기를 했는데, 20년이 지나니까 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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