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실제 역사와는 이렇게 달랐다

2012. 9. 2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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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성연 기자]

*본 리뷰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분은 이를 감안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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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독스런 군주 광해의 모습.

ⓒ 리얼라이즈 픽처스

< 광해, 왕이 된 남자 > 가 다룬 광해군은 현대 국사학의 연구 성과 중 하나를 소재로 했다. 바로 광해군은 폭군이 아니라, 전란 이후 국가 재건을 위해 실리외교와 대동법을 시행한 뛰어난 임금이라는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전의 인식이자 조선왕조실록의 평가인 폭군의 이미지와 새로운 연구성의 인식의 간격을 나름대로의 상상을 통해 그려낸 작품이다.

1. 기존의 영웅 신화를 비틀어서 신선 했지만..

< 광해, 왕이 된 남자 > (이하 '광해')에서 가장 신선했던 상상은 기존의 영화처럼 정형화된 영웅신화적인 구조를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영화 < 광해 > 는 폭군의 이미지와 성군의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광해군이 왜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새롭게 상상한 것이다. 즉 이 두 사람이 하나지만 다른 둘이었다는 점이 이 상상의 시작점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해볼 수 있는 상상이다. 하지만 성군의 이미지를 가진 왕이 사실은 왕이 아니라 '천민'이었다는 점은 신선한 점이다.

사실 기존대로 마치 하늘이 내려준 영웅이 등장하는 구조를 사용하면 이야기는 전혀 새로움을 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영웅적인 사람이 천민이었다면 일반 대중에게는 새롭기도 하지만 평범한 사람 중에서 국가적 영웅이 등장하기를 바라는 욕망을 만족시켜줄 수 있다. 더구나 기존 정치인들에게 염증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와 같은 설정은 대중들에게 보다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새로운 시도가 신선할 지라도 그 타당성까지 긍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하선이 '천민'임을 강조하다보니 곳곳에 억지 설정이 등장한다. 하선이 왕노릇을 하기 위해서는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하는데(심지어 이는 한글이 아니라 한문이다.) 그 결과 글을 읽을 줄 아는 천민이라는 조선시대에는 상상하기 힘든 인물을 만들어 냈다. 한문은 표음문자(소리나는 대로 쓰는 문자 - 한글이나 영어의 알파벳이 이에 속한다.)가 아니라 표의문자이다. 표의문자는 한글이나 알파벳과 달리 그 언어적 약속만 알아서는 새로운 글자를 읽을 수 있는 문자가 아니다. 그 문자를 읽기 위해서는 사전에 뜻과 음을 암기하고 있어야 한다. 쉽게 생각해서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쓰면 누구나 바로 읽을 수 있지만 한자로 쓰면 사전에 그 한자를 알지 못하면 읽을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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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해, 왕이 된 남자 > 스틸.

ⓒ CJ엔터테인먼트

실제로 한문은 익히기가 쉽지가 않아서 중전(왕비)이나 대비(선왕의 중전)는 언문교지(한글교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의 경우 국모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여성이지만 어느 정도의 한문교육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언문교지를 사용했다는 점은 한문을 사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반증한다. 그런데 천민 출신인 하선이 단순히 소학 정도를 읽은 실력만 가지고 국왕의 역할을 해나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더 디테일하게 비판하면 궁중에서 왕이 사용하는 어휘는 일반 어휘와 다르다. 갑자기 대역을 하게 된 '하선'은 영화처럼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문은 둘째 치고 갑자기 왕이 된 하선이 갑자기 정사를 능수능란하게 한다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국가의 통치는 당시 인간의 일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저 단순하게 이게 맞다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이를 실제로 통치와 연결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은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까지 졸업하고, 관심이 있다면 언론을 통해 정치적 상황을 알 수 있던 시대와 달리 조선시대에는 지배층을 제외하고는 평소에 정치에 대해 생각할 기회도, 생각할 필요도, 이를 위한 교육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런 하선이 갑자기 된 왕 노릇을 잘해낼 수 있다는 점은 납득하기 힘든 설정이다.(그나마 지배층을 놀리는 광대였다는 설정이 이와 같은 허술함을 메워주는 유일한 장치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저 왕을 놀리기만 할 뿐이지, 유머 안에 뼈가 있는 해학은 아니다. 또한 조선시대는 양반에 대해서는 놀리는 일이 허용될지라도 왕에 대해서 하선처럼 놀렸다가는 곤장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실제로 하선과 가장 비슷했던 왕인 철종의 경우도(철종은 선왕이 후사 없이 죽자 선대에 역모로 몰려서 왕족임에도 강화도에서 일반 서민으로 숨어 살다가 하루 아침에 왕이 된 경우이다. 그래서 일명 '강화도 도령'이라도 불린다) 왕이 되고 나서 한 동안은 독자적인 정치를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제왕 수업을 전혀 받지 못한 즉위 과정에서의 문제도 있었지만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은 많은 준비가 필요함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기독교 성경에 등장하는 모세 역시 이스라엘을 이끌기 전에 이집트 왕족이 되는 구조를 취하는 점 역시 지도자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2. 광해군 시대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고려가 없는 영화 < 광해 >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이해가 안 되었던 부분이 기본적인 역사적 맥락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점이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된 인물이다. 스스로도 임진왜란이 터지자 세자가 되어 선조를 대신하여 전선을 누빈 인물이었다. 즉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아직 임진왜란의 후유증이 남아있던 시대임에도 영화만 보면 조선이 과연 전쟁을 겪은지 얼마 안 된 나라인지 의심스러운 너무나 평탄하다. 사실 이 전쟁 이후라는 상황은 영화적으로도 충분히 스토리를 만들 수도 있다. 즉 광해군의 인간적인 면을 보다 잘 설명할 수 있는 장치임에도 단순히 폭군으로 묘사하는 것은 영화적 상상을 위해서 너무나 간단하게 처리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더구나 세자 시절 왕을 대신해서 전장을 누빈 사람을 단순히 폭군으로 설정한 것은 국사학계의 연구 성과를 너무나 자의적으로 받아 들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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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광해 > 의 한 장면.

ⓒ 리얼라이즈 픽쳐스

구체적 인물 관계를 놓고 봐도 광해군은 선조의 둘째 부인인 인목대비와 평생을 걸쳐서 긴장 관계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 부분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또한 도승지로 나오는 허균 역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는 도승지로 등장하지 않는다.(승지로 재직한 기록은 있다. 현재로 치면 도승지는 대통령실장, 승지는 수석비서관이다) 오히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그 해 1월에 지금의 외교관으로써 북경에서 왕에게 보고를 올린 기록이 엿보인다. 당시 교통 상황으로 생각하면 2월에는 당연히 허균은 한양에 있었을리가 없고, 당연히 광해군을 지척에서 모실 수 있는 상황이 되지도 않는다. 물론 당시 역사적 인물 중에서 영화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이 허균이라는 것에서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사실관계 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극화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당시 왕실이 도승지와 상선의 묵인만으로 이와 같은 일이 가능했는가 하는 점에서는 의문이 남는다. 왕은 영화에서도 그려졌듯이 생리적 현상까지 감시 받는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노출되는 위치이다. 더구나 앞서 설명했듯이 선왕의 둘째 부인과 정치적인 긴장관계에 까지 놓여있는데 너무 쉽게 대역으로 바뀐다. 더구나 위중한 왕이 아무도 모르게 궁 밖으로 나간다는 설정 역시 당시 궁의 체계상 가능한 일이었는지 의문이다.(비슷하게 하선 역시 아무리 어명이라도 그렇게 은밀하게 궁궐을 드나들 수 있는지)

3. 광해군의 개혁 정치에 대한 3가지 키워드

광해군의 개혁 정치에 대해서 영화에서는 대동법, 호패법, 실리외교라는 3가지 키워드가 등장한다. 이 중에서 호패법에 대해서는 상선과 대화 도중에 이 법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설명된다. 영화가 교육을 위한 것은 아니기에 이 정도 설명이면 나름 칭찬해 주고 싶다. 하지만 문제는 나머지 두개의 키워드이다.

대동법은 정확히 말하면 특산물로 바치던 공납을 쌀로 대납하는 것이다.(사족을 덧부치면 대동법은 조선후기 시장 경제의 발달을 배경으로 한다. 이 시대가 되면 한양에서는 전국의 모든 특산물을 살 수 있었다. 그러므로 국가의 입장에서는 쌀을(당시에는 쌀이 사실상 화폐의 역할을 했으므로) 받아서 필요한 특산물을 구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특산물이라는 게 그 지역에서 알아서 정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특정 특산물을 올리라고 지정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 지역의 특산물 이었을지라도 세월이 흐르면 그 지역의 특선물이 아니거나 부족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처음부터 잘못 지정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백성들은 정해진 특산물을 바쳐야 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구해서 바쳐야 했다. 문제가 된 지점은 국가가 공납을 받는 다는 것이 아니라 잘못 지정된 특산물을 구해야 되는 약점을 이용해서 폭리를 취하는 구조였다는 점이다. 사실 이에 대한 부분은 사월이가 왜 나인이 되었나를 설명하면서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는 활용할 수 있는 소재조차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대동법이 재력에 따른 세금 부과 방법 정도로만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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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해, 왕이 된 남자 > 스틸.

ⓒ CJ엔터테인먼트

물론 대동법이 특산물 대신에 쌀로 받고 이전에는 사람에게 부과되던 것이 토지에 부과되기에 제대로 시행되면 백성들은 이익을 보는 대신에 지주들을 손해를 보는 것은 맞다.(현재적 관점으로 보면 주민세에서 재산세로 전환) 하지만 대동법이 무엇인지, 왜 문제가 되는 점인지 최소한에 설명조차 하지를 않는다. 사실 지주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전에 자신들에게 부과 되지 않던 세금이 부과되는 것이므로 그 반발이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 현재로 생각하면 모든 주민들에게 받던 주민세를 없애고 대신 부자들에게만 부과한다면 어떨지 생각해보자. 부자들이 반말하는 것을 단순한 탐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광해군 시대는 전쟁 직후이고, 백성들이 과도한 부담을 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국가 재정을 줄 일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백성들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신의 경제력에 비해서 세금 부담이 적었던 지주들로 세금의 징수처가 바뀌는 점은 시대적 정당성이 있다. 즉 대동법은 시대적 결단의 사항이지 100% 선과 악의 선택의 문제는 아니다.

앞서 언급한 천민 출신인 하선이 임금이 되는 것이 억지 설정이라는 문제의식과 연결하면 대동법이 무조건 적인 선이기에 단순히 임금이 어명만 내리면 되는 것이 아니다.(사실 절대적인 선이 있다면 정치적인 결단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떤 것이 지금 시점에서 최선의 선택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 임금의 역할이며, 그렇기에 갑자기 임금이 된 하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실리외교 역시 단순하게 자존심 문제 정도로만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 보다 친절한 설명이 필요했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이유가 어찌 되었든 명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구원병을 파견했던 나라이다.(지금으로 치면 한국전쟁에서 우리를 도와준 미국이 힘이 약해졌다고 실리를 위해서 미국을 모른 척 하는 것과 비슷한 꼴이다) 실리적으로도 당시 명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가 후금(훗날 청)에 의해서 위협 받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명을 도와줌으로써 기존 동아시아질서를 지킨다면 장기적으로는 조선에 이익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질서가 깨지면 어떤식으로든지 동아시아질서가 재편될 것이고 그 재편의 방향이 어떻게 흐를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더구나 명 중심이 세계질서 유지에 조선이 기여한다면 명에 대한 조선의 발언권은 강화될 것이다) 현재적 관점에서야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던 결국 후금(청)이 중국을 재패한다는 것을 알기에 판단이 쉽지만 당시로서는 국제 정세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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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해, 왕이 된 남자 > 스틸.

ⓒ CJ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영화일 뿐이므로 역사적 진실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 대장금 > 이나 < 다모 > 와 같은 퓨전 사극의 경우 소재만 빌려 왔을 뿐 역사적 사실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사극이라면 상관없다.(역사적 사실이라고 오해할 여지가 크지 않기에) 심지어 올해 개봉한 < 후궁 > 의 경우는 어느 특정 왕이 아니라 설정만 빌려온 것이기에 엄격한 역사적 평가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 광해 > 와 같이 실존했던 인물 자체를 다루는 사극이라면 어느 정도 역사적 맥락의 이해는 필수적이다. 성공한 영화나 드라마 사극의 경우는 그 사극의 이미지대로 자신의 역사관이 정립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예를 들어 이방원은 < 용의 눈물 > 의 유동근의 이미지가, 왕건은 < 태조 왕건 > 의 최수종 이미지(혹은 대조영)가 아직도 많은 사람의 뇌리에 있다. 사극이 교육용 자료는 아니지만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의 바탕 위에서 만들어질 것을 요구하는 것은 이 점 때문이다. 즉 다른 장르와 달리 사극의 경우 100% 허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역사적 책임 의식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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