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500년 전 한글로 쓴 부부 사랑 편지

500여 년 전 변방에서 군관으로 근무하던 나신걸이 부인에게 보낸 한글 편지.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 담겨 있는 이 편지는 지금까지 발견된 한글 편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대전선사박물관]'분(화장품)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꼬 울고 가네'. 500여 년 전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담은 한글 편지가 복원돼 공개됐다. 이 편지는 지금까지 발견된 한글 편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20일 대전시 유성구 금고동의 안정 나씨(安定 羅氏) 묘에서 미라와 함께 출토된 한글 편지의 복원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 편지는 지난해 5월 유성구 금고동 제2쓰레기 매립장 공사를 위해 안정 나씨 종중 분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당시 나신걸(羅臣傑·15세기 중반~16세기 전반 추정)의 부인인 신창 맹씨(新昌 孟氏) 목관 안에 미라와 복식, 명기 등과 함께 편지 2점이 들어 있었다. 편지는 출토될 때 꼬깃꼬깃 접힌 상태로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맹씨가 사망하자 후손들이 고인이 애지중지하던 편지를 같이 매장한 것으로 보인다.
편지는 당시 군관으로 함경도 경성(鏡城)에 근무하게 된 나신걸이 고향에 있는 아내 맹씨에게 보낸 것이다. 편지 뒷장에는 받는 사람이 '회덕 온양댁'으로 적혀 있다. 편지 속에 나오는 분과 바늘은 당시 매우 귀한 수입품이어서 남편의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고 기록원은 설명했다.
편지에는 또 '집에 가서 어머님이랑 애들이랑 다 반가이 보고 가고자 하다가…(중략) 못 보고 가네.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라고 적혀 있다. 그러면서 '장수가 혼자 가시며 날 못 가게 하시니'라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부인에게 '어머니와 아기를 모시고 다 잘 계시소'라는 당부와 함께 옷가지를 챙겨 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글들도 적혀 있다. 소작료와 세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자세히 알려주는 내용도 있다. 또 부인에게 '~하소'라고 16세기에 주로 사용되었던 경어체를 사용한 점도 눈길을 끈다.
편지는 16세기 전반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의 장례·복식문화와 한글 고어 등 생활풍습을 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로 평가된다. 종전까지 발견된 한글 편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순천 김씨 묘의 언간(諺簡·1555년 작성)보다 앞서 작성됐다.
나신걸의 편지는 10월 개관 예정인 대전역사박물관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송귀근 국가기록원장은 "부부의 날(5월 21일)을 맞아 조선시대 부부의 정 을 생생히 담은 기록물을 복원할 수 있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갑생.김방현 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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