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외국기업 IBM, 매출은 줄고 신뢰도는 떨어지고

2011. 9. 1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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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은 IBM. 지난 7월 미국에 위치한 IBM 본사는 2분기 깜짝 실적을 발표했다. 2분기 실적은 시장 전망치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매출이 12%나 증가했다. 이로부터 2달 전인 5월 IBM 시가총액은 100주년 기념에 화답이라도 하듯 마이크로소프트(MS) 시가총액을 추월했다. 15년 만의 일이다.

1990년대 중후반만 해도 IBM은 MS에 밀려 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하지만 IBM은 2005년 PC사업 부문을 정리하고 기업용 소프트웨어와 서버, 솔루션을 함께 제공하는 서비스 중심 기업으로 탈바꿈하면서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았다. 현재 IT서비스 부문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이상. 지난 2분기에는 57%를 차지했다. IT서비스와 소프트웨어를 합칠 경우 이 비중은 80%까지 치솟는다. 더 이상 IBM은 시스템에 딸린 하드웨어를 파는 업체가 아니다. 최찬석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IBM이 미국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컨설팅사업 부문을 인수하고 시스템통합(SI)사업자로 변모했다. 메인프레임과 함께 서비스를 제공하는 '턴키 베이스 방식'으로 사업을 해오면서 이제는 소프트웨어 쪽에서 매출이 많이 나온다. 체질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IBM 내부는 축제 분위기와 거리가 멀다. 심지어 대대적으로 기획했던 '100주년 기념행사'도 모두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IBM 내부에서는 한국을 중국, 브라질과 함께 여전히 성장시장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지난 10년간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IBM의 매출액은 1조2609억원. 2001년 매출액 1조2834억원보다 못한 실적이다. 이에 대해 한국IBM 관계자는 "국내에 들어온 다른 외국계 기업과 달리 IBM은 토착화 대신 GIE(Globally Integrated Enterprise) 전략을 펼치고 있다. 지사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IBM에서 올리는 매출을 볼 것이 아니라 전체 IBM의 실적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한국은 전 세계 매출의 1%를 차지하고 있지만 테스트베드(test bed)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10년 전 매출 그대로

문제는 올 매출액이다. 올해는 지난해 수준 매출액 유지도 어려울 거라는 게 한국IBM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의 설명이다.

단초는 지난 4월에 발생한 농협 전산망 해킹 사고다. 이 사고가 한국IBM 직원의 노트북 관리 소홀에 따른 것으로 밝혀지면서 한국IBM은 엄청난 곤욕을 치렀다. 그동안 한국IBM이 유독 강세를 보였던 금융부문에서조차 설 자리를 잃게 될 거라는 얘기마저 들린다.

이와 관련 한 관계자는 "한국IBM은 경쟁사에 비해 비싼 가격을 받으면서 '다른 업체 솔루션을 사용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어쩔 거냐'는 식으로 영업해왔다. 대부분의 금융기관에 IBM이 안 들어간 데가 없을 정도로 독점적 지위를 향유해왔는데 이는 IBM이 잘해서라기보다는 IBM 말고는 달리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사정을 전한다.

독점적 지위를 갖고는 있지만 금융권에서는 IBM 시스템에 대해 불만이 적지 않았다. 금융권에서 신규 상품이나 서비스를 내놨을 경우 IBM 메인프레임에서는 이를 즉각 반영하기가 어렵다는 게 불만의 대표적인 내용이다. 고객 성향에 맞게 맞춤형 상품을 개발해 판매하고 싶어도 재빠르게 대응할 수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 특히 자본시장통합법 시행과 함께 금융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한때 'IBM 무용론'이 시장에 퍼졌을 정도다.

IBM과 실력이 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국내 SI업체들이 줄줄이 나온 것도 또 다른 배경이다.

국내 대기업 SI업체 관계자는 "과거 IBM이 메인프레임의 절대강자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금융권은 IBM이 싹쓸이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차세대 시스템, 자본시장 통합업무시스템(CMBS), 국제회계기준(IFRS)시스템 구축사업 등에서 국내 IT서비스 회사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점차 IBM을 찾는 곳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금융권조차 국내 SI업체에 시장 내줘

현재 SI 시장은 대기업, 금융·국방·공공기관, 기타 부문이 각각 3분의 1씩 차지한다. 그룹마다 계열사로 SI업체를 하나씩 두고 있기 때문에 대기업 부문에서는 한국IBM이 독자적으로 사업을 따내기가 쉽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A애널리스트도 "대기업은 그룹 계열 SI업체들이 대부분 사업을 도맡아 한다. 금융에선 SK C&C, 국방은 LG CNS, 공공기관은 삼성SDS가 우세를 띠는 모양새라 IBM이 비집고 들어갈 분야가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대기업 시스템 프로젝트를 따낸다 해도 단독이 아닌, 국내 SI업체와 함께 들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나 LG그룹 계열사는 IT솔루션을 구축할 때 그룹 SI업체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경우 IBM이 발을 걸치려면 무조건 관련 업체와 컨소시엄을 형성해 같이 들어가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한국IBM 기술력이나 인력 수준이 국내 대기업 SI업체보다 크게 나을 것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국IBM 인사부 출신 한 인사는 "주로 하는 일이 삼성SDS와 LG CNS 출신 직원을 헤드헌팅업체를 통해 스카우트하는 일이었다. 이 일이 결국 경험이 얼마나 풍부한가가 관건인데, 그쪽 인력은 워낙 경험이 많은 터라 내부적으로 스카우트해올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귀띔했다.

최근에는 SI업체를 별도 자회사로 두고 있지 않은 KT까지 돌아서면서 한국IBM은 더욱 수세에 몰렸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한국IBM은 KT에 메인프레임 컴퓨터는 물론 해당 솔루션 전체를 납품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최근 KT는 클라우드컴퓨팅 강화, 자체 기술력 향상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좀처럼 계약을 맺지 않고 있고 그 여파로 한국IBM의 메인프레임 납품은 사실상 답보 상태에 처했다.

업계 관계자는 "KT는 자사의 독자적인 기술만으로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한국IBM의 KT 수주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보는 시각이 더 많다. 만약 이게 현실화된다면 한국IBM은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얘기가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처음부터 한국IBM을 배제한 채 국내 업체만 대상으로 입찰 참가 공고를 내는 경우도 생겼다.

상황이 여기까지 치닫자 한국IBM 내부에서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IBM 한 관계자는 "IBM 기술이 예전만큼 압도적이던 시대는 끝났다. 컨설팅으로 전환해야 살아남는다는 회사의 캐치프레이즈와 달리 직원들 위상이 'AS 기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됐다"고 전했다.

한국IBM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대기업 중심의 메인프레임 컴퓨터 사업을 중소기업으로 확대하는 전략으로 전환 중이다. 지난 7월 출시한 메인프레임 신제품 'z엔터프라이즈 114'를 중소기업과 정부기관에 납품하기 위한 용도라고 천명한 것도 이런 이유다.

이에 대해 A애널리스트는 "한국IBM이 어쩔 수 없이 중소기업 시장을 공략하고는 있지만, 사실 중소기업 시장은 크지 않아 고정비 투자나 인력 충원이 효율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일각에서는 대안으로 클라우드컴퓨팅 기술 영업이 떠오르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다. 실제 한국IBM은 이 분야에 원천기술을 많이 갖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빛 좋은 개살구'란 시각이 비등하다. 클라우드컴퓨팅 사업에는 한국IBM의 솔루션 말고도 여러 업체들의 기술이 복합적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IBM은 '별로 남는 게 없다'는 입장이다.

[김헌주 기자 donga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23호 추석합본호(11.09.14·21일자) 기사입니다] [화보] 한복입은 스타들‥전세홍 시스루 한복 `아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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