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욕망의 불꽃' 닮은 한국화이바그룹 경영권 분쟁

2011. 2. 23.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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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바그룹 경영권 분쟁◆'욕망의 불꽃.' 경영권을 둘러싼 가족 간 암투를 그려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다. 최근 이와 유사한 사례가 현실에서 벌어져 눈길을 끌고 있다. 복합재료 부문 선두업체인 한국화이바그룹 얘기다. 사실 부자간 경영권 분쟁 조짐은 이전부터 있었다. 직원들은 간혹 회장 집무실에서 두 사람 간 고성이 자주 오갔지만 결국 '가족이니까'라며 추스르는 분위기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지난 2월 7일을 기점으로 이런 상황은 변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이기석)가 조용준 회장의 맏며느리인 이명화 씨를 불구속 기소한 것이 언론에 보도되면서부터다. 검찰에 따르면 이 씨는 조 회장의 둘째 며느리 박경애 씨와 둘째 사위 이성욱 씨의 인터넷 사이트 ID와 비밀번호를 빼낸 것으로 파악된다.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남편을 돕기 위해서였다는 대목에 이르면 가족이 두 편으로 쪼개져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정리된다.

매경이코노미는 언론을 통해 사건이 공론화된 다음날인 2월 8일, 한국화이바그룹 본사가 있는 경남 밀양으로 내려가 사건의 전말을 취재했다. 조용준 회장, 조문수 사장과 일부 가족들 등 분쟁의 핵심당사자를 만났으며 이 중 조 회장과 조 사장은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이를 통해 갈등의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해봤다.

현장 분위기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기자는 밀양역 플랫폼을 빠져나왔다. 한국화이바그룹 본사는 차로 약 20여분 거리에 있었다. 정문에 들어서니 공장 마당에 '독창력(獨創力)'이란 글귀가 새겨진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독학으로 기술을 익혀 지금의 기업을 일군 창업주의 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했다는 게 소위 '회장파'로 분류되는 한국화이바 직원의 설명이다.

그 밖의 풍경은 전형적인 농공단지 모습이었다. 3만여평에 이르는 부지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한국화이바, 한국신소재, 한국카본이 자리해 있었다. 현재 한국카본과 한국신소재는 조 회장 장남인 조문수 사장이, 한국화이바는 차남인 조계찬 사장이 이끌고 있다.

기자가 처음 안내받은 곳은 한국카본 부지 내에 있는 공동관리본부. 한국화이바 직원은 한국카본 건물이지만 회장(창업주) 집무실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집무실에 들어서니 조 회장 외에도 조 회장의 처남인 김준호 부사장, 조계찬 한국화이바 사장과 그의 부인이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 면담이 끝나자 이번엔 '사장파'로 분류되는 한국카본 직원이 안내에 나섰다. 바로 건너편에 있는 건물로 1~2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이렇듯 가깝지만 양측 간에는 냉랭한 기운이 흘렀다. 한국화이바 직원이 한국카본 건물에 들어가려고 할 때 잠시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 것도 이런 맥락이다.

1층 회의실로 들어서자 이번엔 조문수 사장이 여동생 조정미 한국카본 연구소장과 함께 기자를 맞았다. 오너 일가는 '아버지-둘째딸(조정인)-둘째아들(조계찬)'과 '큰아들(조문수)-큰딸(조정미)' 이렇게 양쪽으로 편이 갈려 있었다.

뭐가 문제인가

각각의 고소장을 확보한 결과 내린 결론은 한마디로 '부자가 너무 다르다'였다. 우선 말투부터 달랐다. 전라남도 담양에서 자란 조 회장 말투에는 전라도 사투리 억양이 묻어났다. 반면 조 사장은 전형적인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했다.

경영관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조 회장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이상 좋은 제품을 만들면 어디서든 찾아온다'란 철학이었다. 반면 조 사장은 '세계 최고 기술을 구축해 여기까지 온 것은 맞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해 시장이 원하는 기술과 제품을 내놔야 기업이 성장한다. 외국 기계도 과감히 들여오고 외국 업체와도 손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관점의 차이는 조문수 사장이 입사한 30년 전부터 있었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조 회장은 '경영수업을 받다 보면 언젠가는 아버지의 말을 따를 것이라고 해서 쭉 지켜봐 왔는데 아니더라'고 했다. 반면 아들은 '아버지 말씀에 반대의견을 내보인 건 맞지만 반대행동을 한 건 최근 사건이 불거지기 전까지는 없었다'고 응수한다. 조 사장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다. 지난해부터 가족 및 관련 임직원 사이에 민사소송 30여건, 형사소송 10건 내외가 이미 진행 중이다. 서로 상대편 인사 중 일부가 부자간 이간질을 종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조 회장 측은 큰며느리를, 조 사장 측은 둘째사위와 외삼촌을 지목한다. 이번에 불거진 큰며느리 사건도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지목된 당사자들은 '사실무근'이란 입장이다.

본격적인 분쟁의 시작은 언제부터일까. 2009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0월 9일 조 회장은 조 사장에게 '한국화이바 대표이사 교체를 안건으로 하는 이사회 소집을 요구하니 소집권자인 이사는 조속한 시일 내 본 회사의 이사회를 소집해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낸다. 당시 조 사장은 한국화이바, 한국신소재, 한국카본 공히 대표이사직에 올라 있었다.

이때 조 사장은 '공식후계자 자리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고 전한다. 이에 조 사장은 14일, '현 대표이사가 과연 어떠한 임무 해태를 했는지 그리고 어떠한 사유로 대표이사 직무수행에 부적격이고 부정당한지 등에 관해 우선 구체적으로 소명해달라'고 답신을 보낸다.

그 당시 조 회장은 JEC(유럽복합재료협회)가 주는 특별공로상을 받으러 싱가포르로 출국했다. 조 사장은 이 시기에 아버지가 보유하고 있던 한국카본과 한국신소재의 법인인감과 당좌인감을 바꿨다.

아버지는 이를 '쿠데타'라고 말하고 아들은 이를 '엄연히 대표이사 명의로 돼 있는 만큼 정당한 행위였다. 당시 회사 업무상 회사직인과 법인계좌가 꼭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회장님 부재로 의사결정이 어려웠기에 부득이 그렇게 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이후 상황은 더욱 꼬였다. 조 회장은 한국화이바 사장직에 그동안 꾸준히 지분을 늘려줬던 둘째아들 계찬 씨를 앉혔고 이와는 별도로 '조(문수) 사장의 각 계열사 보유 지분은 사실상 차명이며 실소유주는 자신'이란 논리를 펴 조 사장을 압박했다. 각 계열사의 주주총회결의사항은 조용준 회장이 최종 의사결정을 해왔고 주권실물을 장악하고, 주주권을 행사해왔으며 주권의 경제적 이익도 직접 취득했기 때문이란 이유다. 반면 조 사장은 이는 어불성설이라며 반발한 것이 법적 다툼으로 비화된 것이다.

합의점은 없나

올 초 법원은 양측을 불러 조정결정을 내렸다. 여기에는 한국화이바는 조 회장 측이, 한국카본은 조 사장 측이 가져가는 계열분리안이 담겼다. 양측 모두 여기엔 동의하지만 한국신소재를 놓고는 이견을 보이면서 최근 협상은 결렬됐다. 각자 계열분리에 한국신소재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

조 회장 측은 한국신소재를 가져오는 대신 한국카본에서 필요하다면 설비 사용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조 사장 측은 '조 회장 측이 독단적으로 설비 사용을 금지할 여지가 있으니 아예 일부 장비를 한국카본으로 떼 달라'고 맞섰던 것. 조정결정을 양측이 받아들이지 않게 되면 2월 말경 판결선고로 이어진다. 정말 합의점은 없을까. 고무적인 것은 법원의 '조 회장 측은 한국화이바를, 조 사장 측은 한국카본을, 그리고 한국신소재는 조 회장(55%), 조 사장(45%)이 나눠 가진다'는 내용의 지분정리안에는 양측이 동의한다는 점이다.

조 회장은 "양보를 많이 했다. 받아들이겠다"라고 했고 조 사장도 "한국카본의 진정한 독립을 보장한다면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강조한다. 세간의 따가운 시선, 직원 및 상장사인 한국카본 주주들의 동요도 합의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양측은 판결 직전까지 합의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경영권 분쟁이 '극적타결'로 갈 것인지 '판결'로 마무리될 것인지 지켜볼 대목이다.

■ 한국화이바그룹은연매출 3600억원대 복합재료 부문 선두 기업

조용준 회장(80)이 1972년 부산 괴정에 한국화이바공업사란 이름으로 창업했다. 70년대 당시 60만 국군의 방탄모였던 '철모'를 복합섬유소재인 '파이버(Fiber·방탄헬멧)'로 대체하면서 사세를 키워나갔다. 74년 부산 신평공장으로 확장했고 84년에는 한국카본을 창립해 복합재료 개발·생산·판매 등 전 공정을 일원화했다. 86년에는 경남 밀양시 부북면으로 본사를 옮겼으며 한국화이바, 한국카본, 한국신소재의 공장을 본격 가동했다. 한국화이바는 철도내장재, 저상버스, 전기버스, 틸팅열차, 상하수도파이프사업, 방위사업을, 한국카본은 탄소섬유를 기반으로 한 LNG, 전자재료 납품 등을 주력 사업으로 삼고 있다. 한국신소재는 첨단복합재료를 생산해 양 회사에 납품한다. 2009년 한국화이바의 매출액은 1740억원, 한국카본은 1760억원, 한국신소재의 지난해 매출은 107억원이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94호(11.02.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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