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총! 찔러! 고된 훈련.. 첫 여성 ROTC 후보생 군사훈련 국민일보 기자 동참 르포

19일 오전 6시. 경기도 성남 학생중앙군사학교에 새벽 찬 공기를 가르는 기상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얼마 전까지 캠퍼스를 누볐던 여대생 59명은 첫 여성 학군사관후보생(ROTC)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침구를 정리했다. 오전 6시45분 시베리아 한파가 더 차갑게 느껴지는 연병장에 모인 여성 후보생들은 남성 후보생들과 섞여 맨손체조를 시작했다. 군복바지에 흰 셔츠, 검은색 모자를 쓴 채 "하나 둘" 하는 구령소리는 벌써 익숙해 보였다. 지난 10일 학생중앙군사학교에 입교한 첫 여성 후보생들의 10일째 훈련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곳에서는 여성·남성 예비 장교 2400명이 방학을 맞아 훈련을 받고 있다. 여성 후보생은 60명을 뽑았으나 한 명이 입교했다가 중도 포기해 59명이 훈련에 참여했다.
맨손체조에 이어 연병장 2㎞를 뛰는 구보시간이 찾아왔다. 감기에 걸린 듯 '콜록콜록' 기침을 하거나 다리를 저는 남성 후보생 서너명이 눈에 띄었다. 운동장과 생활관 둘레를 두 바퀴 돌아야 하는 짧지 않은 거리였지만 단 한 명의 여자 후보생도 대열에서 뒤처지지 않았다.
오전 7시15분 기다리던 아침식사 시간이 시작됐다. 흰 밥에 버섯찌개, 소시지 볶음, 김치, 김이 반찬으로 나왔다. 단출한 식단이었지만 밥알 한 톨, 김 한 장 남기는 이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내무반에 돌아와 군화를 닦고 청소를 마친 여성 후보생들은 오전 8시40분 다시 연병장에서 총검술 훈련을 시작했다. 12중대 6분대장을 맡고 있는 숙명여대 체육교육학과 조수민(21) 후보생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12중대 인원 보고, 총원 40명, 열외 0명, 현재원 40명, 보고 끝"이라고 외쳤다. 허리에 멘 군장의 무게가 몸을 압박했다. K2 소총의 무게 3.91㎏에다 대검까지 끼우니 4.5㎏나 됐다. 총을 들고 발 맞춰 걷다보니 총 무게를 견디지 못한 팔이 절로 후들거렸다.
'차렷 총' 자세 훈련이 가장 먼저 실시됐다. 총을 만진 적이 없었던 여성 후보생들이었지만 대검을 적의 얼굴 쪽에 겨눈 자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숙명여대 홍보관광학과 최지혜(20) 후보생은 "현대전에선 첨단무기가 중시된다고 하지만 총과 칼을 이용한 기본적인 전술부터 잘 배워놓고 싶다"고 말했다. 소총을 몸 앞에 곧게 세우는 '앞에 총' 자세, 왼발을 축으로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좌·우로 돌아'와 '두 발 앞으로' 자세를 모두 마친 뒤에야 꿀맛 같은 휴식이 찾아왔다.
여성 후보생과 함께 총검술 훈련을 받은 충남대 식품공학과 최병택(20) 후보생은 "입교할 때 여성 후보생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막상 같이 훈련해보니 별다른 차이를 못 느끼겠다"며 "우리와 똑같은 훈련을 받아서인지 나날이 우정이 싹트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총검술 훈련을 마친 여성 후보생들은 정오가 가까워서야 생활관 내무반으로 돌아와 오후에 있을 경계훈련을 위해 다시 군장을 싸기 시작했다.
고려대 체육교육학과 정지윤(20·여) 후보생은 "훈련시간이 24시간에 육박할 만큼 빡빡하지만 '더 견뎌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새로운 훈련을 하나하나 배울 때마다 "육군 보병 장교란 꿈에 한 발자국씩 다가가는 것 같아 가슴 벅차다"고 했다. 고려대 화학생명공학과 김문경(20·여) 후보생은 "체력적으로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훈련에 열심히 임하고 있다"며 "여성 ROTC가 1기이고 주변의 기대도 큰 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리더십을 키워나가겠다"고 다부지게 다짐했다.
여성 후보생들은 남은 일주일여 동안 남성 후보생과 같은 조건에서 제식훈련부터 40㎞ 행군까지 군사훈련 과정을 빠짐없이 받고 이달 말 퇴소한다. 사격, 경계, 구급법 등 군사 기초지식을 체득하고 필수과목도 이수하게 된다. 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이미소 후보생(20)은 "앞으로 2년간 12주의 입영훈련과 총 175시간의 군사교육을 받고 임관하게 된다"며 "내가 배운 것을 후배 군인에게 전해줄 그날까지 즐겁고 열의 있게 훈련에 임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성남=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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