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몸이 점점 빠져드네' 똥통에 빠진 날

2010. 9. 2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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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안건모 기자]

수세식 화장실에서 똥을 누고 일어서는데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가 퐁 하고 빠진다. 아차차! 물을 내릴 뻔하다가 멈췄다. 라이터가 똥 속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다. 이걸 어쩌지? 선물 받은 것이라 그냥 포기하기도 그렇고, 이 금속 물질이 넘어가면 화장실이 막힌다. 사무실로 다시 들어가 일회용 비닐 장갑을 끼고 똥 속을 뒤져 라이터를 찾았다. 뭉클뭉클한 똥이 손에 걸리는 게 영 기분이 찝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비누로 몇 번을 닦아 말렸더니 잘 켜진다.

일이 끝나고 아는 이들과 술 한잔을 하면서 그 이야기를 하니 다 뒤집어진다. 똥 냄새가 난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손으로 코를 막는 사람도 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주제가 똥과 화장실 이야기로 흘렀다. 어릴 때 똥 때문에 별별 일이 많았다.

'똥참외'를 아시나요

내가 초등학교 때 일이니 1970년 이전 일이다. 그때 화장실은 물을 내리는 수세식이 아니라 '푸세식'이었다. 그때는 변소라고 했다. 내가 살던 곳은 서울 변두리 산 중턱이었다. 집하고 좀 떨어진 곳에 변소가 있었다. 그 변소는 나무 판자 몇 개를 얼기설기 붙여 놓아 허름한 곳이었다. 안에는 커다란 금속 통을 묻어 놓고 위에다 두꺼운 나무 판자 두 개를 올려놓았다.

변소는 지저분해서 똥을 눌 때마다 늘 께름칙했다. 여름에는 냄새가 심했다. 구더기가 득실거렸고 파리가 많았다. 똥이 꽉 차면 퍼내야 하는데 아버지가 일이 많아서, 가끔 초등학교를 다녔던 내가 두 살 위인 형하고 같이 퍼내기도 했다. 처음에는 비위가 약해 토하기도 했다. 퍼낸 똥은 산등성이를 깎아 만든 밭에다 뿌렸다.

푸세식화장실 도구

ⓒ 변종만

겨울에는 냄새가 좀 덜했지만 퍼내는 게 쉽지 않았다. 위에는 딱딱하게 얼기 때문이다. 똥을 퍼낸 뒤에는 오줌만 남는다. 그 오줌을 다 퍼낼 수 없어서 그냥 누어야 하는데 이게 또 쉽지 않다. 똥이 '퐁' 하고 떨어지면 오줌이 튀어 엉덩이에 묻는 것이다. 똥이 나와 떨어지자마자 엉덩이를 들어야 한다.

오줌이 튀지 않게 하려고 어쩔 때는 신문지를 띄워 놓기도 했다. 하지만 신문지가 귀해 늘 그럴 수는 없다. 신문지는 똥을 누고 엉덩이를 닦을 때 꼭 필요한 종이였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 기둥에 박아 놓은 못에 걸어놓고 한두 장씩 써야 한다. 신문지가 없으면 달력으로 쓴다. 지금 흔히 보는 그렇게 두꺼운 달력이 아니고 한 장씩 떼어버리는 얇은 종이로 된 달력이었다. 손으로 구겨 부드럽게 한 뒤 닦는데 가끔 찢어질 때도 있다.

변소가 하나밖에 없어서 가끔 형하고 같이 누기도 했다. 서로 등을 보이고 엉덩이를 맞대고 누는 것이다. 서로 엉덩이 살이 닿을 정도로 좁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어른이 들어가 있을 때는 그냥 밭에다 눌 때도 있었다. 종이가 없을 때는 호박잎이나 지푸라기를 뭉쳐 밑을 닦기도 했다.

똥으로 밭에다 거름을 주면 다음해에는 밭에서 참외가 열리기도 한다. 참외를 먹을 때 씨까지 먹는데 그게 밭에서 싹이 터 나는 것이다. 그걸 똥참외라고 한다. 우리 작은책 출판사 일꾼들 나이가 26살에서 29살 정도 되는데 이 똥참외를 모른단다. 이 똥참외가 뜻밖에 맛있다. 하긴 그때 먹을 게 없어서 배가 고프니 맛있었는지도 모르지.

쿨렁쿨렁, 진흙탕 아니고 똥통?

똥통에 빠져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시골에서는 참외나 수박 같은 과일을 몰래 따 먹는 걸 서리라고 했다. 이런 참외나 수박서리 대신에 서울 변두리에서는 무서리가 있었다. 남의 밭에 심어 놓은 무를 몰래 뽑아 먹는 것이다. 어느 날 동무들하고 무서리를 하다가 주인한테 들켰다. "야, 이놈들. 거기 서!" 하고 쫓아오는데 잡힐까 봐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을 쳤다.

막 뛰는데 발밑이 쿨렁쿨렁하면서 빠지는 것이다. 진흙탕인지 뭔지 모르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주인한테 목덜미가 잡힐 거 같아 그대로 막 뛰는데 어어? 몸이 점점 빠져들었다. 우악! 거름을 만들려고 밭을, 깊고 넓게 파서 똥을 담아 놓은 똥통이었다. 어어? 엄마! 몸이 허리까지 들어가더니 금방 목까지 들어가 버렸다. 똥이 입까지 차 올라올 찰나 뒤따라온 주인아저씨가 꺼내 주었다. 온몸에 똥이었다. 냄새 때문에 토했는지 기억에 없지만 입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주인아저씨한테도 혼난 기억도 없다. 똥통에 빠졌던 그 장소는 지금도 기억에 또렷하다. 서울 남가좌동에 있는 명지대학교 근처였는데 거기서 집 앞 냇가까지 20분 정도 되는 거리였다. 그 길을 가면서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웃었을까. 그런데 그런 건 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울면서 갔는지도 모르겠다. 냄새 나는 내가 손을 벌리고 그 동네를 가던 그 모습도 상상만 해 본다. 똥독이 오를지 모른다고 어머니가 나를 집 앞에 있는 냇가로 데려가 흐르는 물에 씻어 주고 빗자루에 소금을 묻혀 온몸을 닦아 주던 기억이 떠오른다. 에고, 말썽꾸러기. 얼마나 힘드셨을까.

초등학생 아들, 바지에 '똥'싸다

똥 이야기 하면 우리 아들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초등학생 때였다. 한번은 아들이 여자 친구와 놀러왔다. 그런데 방안에 들어오는데 웬 이상한 냄새가 났다. 아들은 들어오자마자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나오지 않는다. 똥을 누나 보다 했는데 너무 시간이 걸렸다. 아, 그때서야 눈치챘다. 바지에 똥을 싼 것이다. "○○야 문 열어 봐" 한참을 두드려 겨우 문을 열게 하고 들어가 봤더니 억! 갑자기 구역질이 났다.

바지를 벗어 놨는데 팬티에 똥이 한 바가지가 있는 게 아닌가. 설사도 아니었다. 이 정도로 많이 쌌는데 여자친구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는 말이야? 얼마나 냄새가 났을까. 여자 아이는 모르는 척 했나 보다. 아들이 여자친구 앞에서 얼마나 창피했을까. 아들은 몸은 씻었는데 그 팬티에 쌓인 똥을 어떻게 치울지 몰라 쩔쩔매고 있었던 거다. "몸 씻었으면 바지 갔다 줄게, 입고 얼른 나와" 하고는 나가서 슬그머니 바지를 갖고 왔다.

변산공동체 화장실 모습

ⓒ 변산공동체

재래식 화장실 하면 냄새부터 떠오른다. 2005년쯤이었나 윤구병 선생님이 일군 변산공동체를 처음 가서 재래식 화장실을 갔을 때도 그런 냄새가 나겠지 하고 생각했다. 변소를 찾다가 흙으로 바른 벽에 문은 대나무로 얼기설기 돼 있는 여기가 변소이겠지 하고 문을 열었는데 어라, 어릴 때 재래식 화장실에서 나는 똥 냄새가 하나도 안 나고 파리도 없다.

여기가 변소 맞나? 어떻게 누는 거지? 바닥에 나무토막 두 개가 있고 밑에는 쓰레받기 같은 게 놓여 있고 겨가 조금 뿌려져 있다. 뒤쪽에는 커다란 대야가 있는데 거기도 겨가 쌓여 있다. 한참을 생각해 보니 아 그렇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내가 눈 똥이 담겨 있는 쓰레받기를 들어서 뒤에 있는 다라이에 담고 겨를 뿌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쓰레받기에 겨를 담아 다시 그 자리에 놓는다. 오줌과 똥이 안 섞이고 똥에다 겨를 뿌리니까 냄새가 없다.

변산공동체 화장실 사용법

ⓒ 변산공동체

그 똥은 다시 논과 밭에 뿌려 거름이 되어 다시 우리 입으로 들어오게 된다. 자연의 순환이다. 내가 똥을 퍼서 밭에다 뿌려 거기서 기르던 배추와 무도 김치가 되어 우리 밥상에 오르지 않았던가. 내가 어릴 때 먹던 똥참외는 아예 내 똥에서 나왔던 씨가 아닌가. 하지만 요즘 도시 사람들 똥은 거름으로도 쓸 수가 없다고 한다. 방부제가 섞인 음식을 먹어서 그런지 잘 썩지도 않는단다. 충격이다. 게다가 농촌은 점점 없어지고 도시엔 인구가 많아 그 많은 똥을 논밭 어디에 처리할 데도 없다.

내가 어릴 때, 1960년대는 왕십리에 웅덩이를 파서 몽땅 갖다 버렸다고 한다. 예전 왕십리에 별로 깨끗하지 않은 이미지가 씌워졌던 것도 이 때문이다. 1970년대 들어 위생처리장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가양, 난지, 중랑하수처리장에서 일반 하수와 병합처리한 뒤 '케익'(수분을 뺀 마른 것을 일컫는 전문용어)은 매립하거나 먼 바다에 내다 버린다고 한다.

변산공동체같이 냄새 안 나고, 거름으로 쓸 수 있게 하는 변소는 환경을 살리고 자연의 순환을 따르는 좋은 사례다. 하지만 도시 아이들은 그런 변소조차 가기 싫어한다. 변산공동체 체험하러 가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젊은이들조차 변소 때문에 가기 싫다는 사람들이 있다. 자연의 순환 법칙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변소에서 어떻게 똥을 누냐고 묻는 나 같은 서울 촌놈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변산공동체 아이들이 화장실에 재미있는 안내문을 그려 놓았다. 다른 마을 공동체 변소도 이 변산공동체 변소와 거의 비슷하다. 혹시 이런 공동체에 가시거든 참고하시기를.

"첫째, 똥바가지에 똥을 싸세요. 단, 흘리지 말고 조준을 잘하세요. 둘째, 바가지를 들고 따로 모아놓는 곳에 버려 주세요. 셋째, 똥바가지에 '겨'를 골고루 뿌려주세요. 겨를 뿌리면 냄새가 전혀 안 나요, 아참! 저희 화장실은 문 잠그는 게 없어요. 누가 온다 싶으면 "으흠!" 헛기침을 내어 안에 누가 있다고 알려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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