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이건 몰랐지] 김남일, 고등학교 때 막노동-웨이터까지

이정찬 2010. 5. 18. 21:4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JES 이정찬] 2002년 김남일(33·톰 톰스크)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거침없는 입담에 터프한 성격, 남자다운 외모까지. 그야말로 '김남일 신드롬'이었다. 월드컵 개막 전 프랑스와 친선경기에서 지네딘 지단이 그의 태클 때문에 허벅지를 다쳤다는 얘기가 나오자 "(치료비를) 내 연봉에서 까세요"라고 받아쳤던 스물다섯 청춘이었다.

그 뒤로 8년이 지났다. 한 때 그의 어깨에 어울리던 주장 완장은 박지성(29·맨유)에게 넘어갔다. 꿈쩍하지 않을 것 같던 입지도 예전 같지 않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난 2번의 월드컵 때는 없었던 큰 재산이 생겼다. 아내 김보민(32)씨와 아들 서우(2)다. 그는 "가족의 힘으로 생애 마지막 월드컵에 도전한다"고 말한다.

◇ '패밀리'는 나의 힘!

김남일의 축구 인생에 가장 소중한 단어는 '가족'이다.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인천 송월초등학교 3학년 시절 큰 형을 따라 축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부평고 1학년때 선배들이 자신과 동급생을 못살게 굴어 축구를 그만두려고 숙소를 박차고 나왔다.

부평역 근처 여관을 전전하며 막노동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유흥업소에 나이를 속이고 취직해 몇 개월을 웨이터로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을 유독 귀여워하던 할머니가 몸져누웠다는 소식이 들리자 곧바로 집으로 달려갔다. 가족의 따스한 품에 안긴 그는 "너를 믿는다"는 격려에 힘입어 다시 축구화를 신었다.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란 막내 손자는 29살이 되던 2006년, 두 번째 월드컵 출전을 앞두고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월드컵이 끝나면 결혼 할 것이다"고 깜짝 발언을 했다. 피앙세는 아나운서 김보민 씨였다. 그의 말대로 둘은 2007년 결혼에 골인했고, 이듬해 아들 서우가 태어났다. 가족은 그가 꼽는 재산 목록 1호다.

◇ 최악의 2009년, 대표팀 은퇴를 고민하다.

김남일은 2009년 상반기를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했다. 2008년 허정무팀의 첫 번째 주장으로서 의욕을 갖고 팀을 이끌었지만 북한전(9월) 이후 대표팀의 부름은 들리지 않았다. 그는 이날 위험지역에서 파울을 범하며 페널티킥을 내줬다.

허 감독은 냉정함을 잃은 그의 모습에 실망했다. 그가 빠진 사이 대표팀은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주장은 박지성, 중원은 김정우와 기성용이 맡았다. 젊어진 허정무팀은 승장구했다. 그의 위기는 J-리그에서 더 커졌다. 2009년 5월 나고야 그램퍼스와의 홈경기에서 기록한 자책골이 화근이었다. 하프라인부근에서 골키퍼를 향해 길게 백패스 한 공이 그대로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얼굴을 감싸고 그라운드에 누워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자책골이 들어간 뒤 동점골이 터질 때까지 '내가 지옥에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일주일 뒤에는 니가타전을 앞두고 몸을 풀던 도중 허벅지 부상을 당해 3개월간 그라운드를 떠났다.

심신이 지친 그는 대표팀 은퇴를 고민했다. 아내는 반대했다. "당신은 분명히 재기할 것이다. 그라운드에서 누구보다 훌륭하다"며 응원했다. 김보민은 "사실 대표팀 명단이 발표가 있는 날이면 남편보다 내가 밤잠을 더 설쳤다. 명단에 이름이 빠진 것을 알고 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고백했다.

혹시 남편의 기가 죽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명단 발표가 있는 날이면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 놓고 힘을 실어줬다. 아내의 응원과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들을 보며 김남일은 다시 힘을 냈다. 어느 날 그는 채 돌이 되지 않은 아들과 약속했다. "서우야, 아빠가 열심히 공 뻥~하고 차서 월드컵에 꼭 나갈게."

그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자존심을 버렸다. "남아공에 갈 수 있다면 벤치에 앉아도 상관없다"며 백의종군의 자세를 보였다.

◇다시 돌아온 '진공청소기'

허 감독은 지난해 9월 호주전을 앞두고 김남일에게 다시 기회를 줬다. 아내가 더 기뻐했다. 김보민은 "명단이 발표되기 전날은 떨려서, 발표된 날은 기뻐서 잠을 못 이뤘다"고 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대표팀 합류를 이틀 앞두고 열린 J리그 경기서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것. 의사는 수술을 권했다. 하지만 그는 수술을 미뤘다.

1년 만에 되찾은 태극마크를 놓칠 수 없어서다. 도핑테스트에 걸릴까봐 진통제 조차 먹지 않고 밤새 얼음찜질을 하며 통증을 이겨냈다. 부상 1주일 만에 열린 호주전 후반 25분, 그는 2002년 김태영(현 올림픽팀 코치)처럼 마스크를 쓰고 서울월드컵경기장 잔디를 다시 밟았다.

그 순간 관중석에서 아내와 아들은 누구보다 큰 박수를 보냈다. 11월 유럽전지훈련에 참가한 그는 세르비아전에서 모처럼 선발 출장해 풀타임을 소화했다. 후반 25분 박지성은 교체 돼 나가며 주장 완장을 벗어 김남일에게 채워줬다.

지난해 말부터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던 그는 돌연 이적을 결심했다. 적응을 마친 J리그를 떠나 러시아행을 택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더 강해지기 위해' 위험을 감수했다. 다행히 러시아리그 데뷔 시즌의 성적표는 준수하다. 톰 톰스크의 주전 미드필더 자리를 꿰찼다. 지난 6일 테렉 그로츠니전(2-1승)이 끝난 뒤에는 양 팀 통틀어 최고 평점(6.5점)을 받으며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라운드 베스트 11에 선발됐다.

김남일의 남아공행 꿈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허 감독은 최근 그에 대해 "벤치에 있으면서도 선수들이 하나될 수 있도록 힘을 불어 넣는 모습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단 몇 분을 뛰더라도 팀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좌우명.

"그런 거 없다."

- 신체 비밀.

"음….밝힐 수 없다. 밝히면 비밀이 아니다."

- 아내와 만난 계기.

"TV를 보고 반해 내가 먼저 대시했다."

- 주량. 즐기는 보양음식.

"소주는 2잔. 보드카는 1병. 보양식은 일본에 있을 때는 장어를 좋아했다. 러시아에서는 직접 사골국물을 끓여먹는다."

- 나를 5자로 설명하면.

"알수없는놈."

- 핸드폰 첫 화면과 문구.

"서우와 아내가 함께 찍은 가족사진. 서우 동영상 보는 게 삶의 낙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

"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들."

- 가장 기억에 남는 골.

"나름대로 골을 많이 넣었다. (웃음). 2003년 7월 30일 광양전용구장에서 열린 대구 FC와 경기. 1-3으로 뒤지다 4-3으로 뒤집었고 결승골을 넣었다."

- 제일 친한 선수.

"다 친하다."

- 나에게 축구란.

"인생의 스승이다. 배울 게 참 많다."

- 스트레스 해소법.

"경기장에서 주로 푼다. 알아듣지 못하게 욕도 많이 하고(웃음)."

- 롤 모델.

"지금은 감독이 되신 황선홍 선배와 홍명보 선배다. 지금은 아무래도 지도자의 모습을 더 많이 보게 된다. 톰 톰스크의 니폼니시 감독은 선수들과 관계, 훈련장이나 운동장에서 보여주는 카리스마 등 본받을 점이 많다."

- 나에게 월드컵이란.

"내 인생을 바꿔준 것."

- 내 맘대로 월드컵 베스트 11.

"베스트 11은 어렵다. 같은 포지션에서 좋은 선수를 뽑자면 FC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들을 꼽고 싶다. 사비와 이니에스타는 흠 잡을 데가 없다. 이들을 볼 때면 억울한 생각까지 든다. 축구를 다시 배우고 싶다."

- B조의 16강 진출 예상국가.

"아르헨티나와 한국."

이정찬 기자 [jaycee@joongang.co.kr]

Copyright © 일간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