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 라이프―여행] 경주 선덕여왕릉과 춤추는 소나무

2009. 9. 24.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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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이 잠든 낭산 숲속에 아침이 찾아왔다. 푸르스름한 산안개가 스러지자 첨성대 허리처럼 부드러운 곡선의 왕릉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우아하면서도 소박한 여왕의 왕릉이다. 산새들의 노랫소리가 오렌지빛 숲을 산책하고 풀잎에 맺힌 아침이슬이 보석처럼 영롱하다. 여왕이 등극하던 그날의 신라 백성 춤사위가 이랬던가. 선덕여왕릉이 춤추는 소나무와 함께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1300여 년째 찬란한 아침을 맞는다.

1300년 잠에서 깨어난 '여왕의 미소'

선덕여왕릉을 둘러싼 들녘이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신라 27대 왕이자 한반도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 진평왕의 둘째 딸인 덕만 공주로 태어나 국난을 극복하고 신라 문화를 꽃피운 여왕은 누에고치처럼 봉우리가 두 개인 경주 낭산의 남쪽 능선에 잠들어 있다. 서라벌의 진산인 낭산은 나지막한 구릉으로 실성왕 12년에 산 위로 누각처럼 생긴 구름이 뜨고 오랫동안 향기가 피어올라 나무 한 그루도 함부로 베어내지 못하는 신들의 공간으로 보호받았다.

그래서인지 낭산 자락에는 선덕여왕릉을 비롯해 진평왕릉, 신문왕릉, 효공왕릉, 신무왕릉 등 유난히 많은 왕릉이 위치하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거문고로 방앗공이 소리를 냈다는 백결선생과 '토황소격문'으로 유명한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도 낭산 기슭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향기로운 왕'으로 불리는 선덕여왕을 만나러 가는 오솔길은 발굴 작업이 한창인 경주 배반동의 사천왕사지에서 시작된다. 한낮에도 어둑어둑할 정도로 울창한 소나무 숲을 10분쯤 올라가면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소나무 줄기 사이로 선덕여왕릉이 보인다. 암흑의 터널 끝에서 만나는 광명이 이처럼 반가울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과의 치열한 권력다툼 끝에 왕좌에 오르는 선덕여왕은 낭산에서 유일하게 하늘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벗하고 있다.

선덕여왕의 능은 신하인 김유신 장군의 묘보다 화려하지 않고, 아버지 진평왕과 조카 태종무열왕(김춘추)의 능보다 작다. 첨성대와 분황사, 그리고 황룡사 9층목탑 등 신라를 대표하는 문화재가 모두 선덕여왕 재위(632∼647년) 시절에 탄생했지만 정작 여왕의 능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반면에 신하였던 김유신 장군은 사후에 흥무대왕으로 봉해지면서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호석과 돌난간을 갖추는 등 웬만한 왕릉보다 화려하다. 월성 서쪽에 위치한 김유신 장군의 집도 화려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지금은 재매정이라는 우물과 드넓은 집터만 남아있지만 김유신의 집은 금으로 장식한 39채의 금입택(金入宅) 중 하나였다.

선덕여왕은 하필이면 낭산 남쪽의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을까. 삼국유사는 선덕여왕의 지기삼사(知幾三事)를 소개하면서 여왕이 죽은 후 10여 년 뒤에 문무왕이 선덕여왕릉 아래에 사천왕사를 세웠다고 한다. 불경에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했으니 여왕은 자신의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라는 사찰이 창건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셈이다.

경주 안강의 흥덕왕릉처럼 선덕여왕릉도 제멋대로 자라 뒤틀린 소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듯 구불구불 자란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룬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왕릉을 지키는 소나무라면 으레 금강송처럼 올곧아야 할 텐데 경주의 소나무들은 왜 꽈배기처럼 배배 꼬였을까.

학자들은 안강형 소나무로 불리는 경주 소나무의 특징을 신라인의 남벌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신라가 수많은 궁궐과 사찰을 짓느라 잘 생긴 소나무만 베어낸 탓에 열등 유전자를 가진 소나무만 남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열등 소나무에서 씨가 떨어지고 그 자손 중에서 우량 소나무는 베어지고 열등 소나무는 또 살아남아 씨를 뿌리는 일이 1000년 가까이 반복되면서 경주 일대에는 볼품없는 소나무만 남게 된 것이다.

선덕여왕릉 뒤로 이어지는 숲길을 벗어나면 감나무가 주홍색 감을 주렁주렁 달고 있고 들꽃이 한 주먹씩 피어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경주의 왕릉들이 골프장 잔디밭처럼 성역화될 때도 선덕여왕릉은 방치되다시피 했다. 왕자가 아닌 공주로 태어나 왕좌에 오르고 수많은 전쟁과 반란으로 결코 순탄치 않은 삶을 살다간 인생역정 때문일까. 홀대를 받은 탓에 선덕여왕릉 가는 길은 아직 개발의 손때가 묻지 않아 호젓하고 자연스럽다.

들길이 끝나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문무왕의 화장터로 알려진 능지탑이 나온다. 능지탑은 무너져 흩어진 돌을 모아 다시 쌓은 것으로 그 원형을 알 수 없어 2단만 쌓고 나머지 돌들은 옆에 모아두었다. 능지탑이 위치한 마을은 상강선마을. 능지탑에서 오던 길로 되돌아나가 삼거리에서 산을 넘으면 하강선마을이 나온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둘째 딸에게 왕위를 물려준 진평왕은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보문들녘의 동쪽에 잠들어 있다. 보석처럼 영롱한 이슬을 맺은 벼이삭과 황금들녘을 허허롭게 날아오르는 백로떼는 동산 크기의 고분과 보문호수 등으로 대표되는 경주의 이미지와 달라 정감이 넘친다.

낭산 동쪽 산자락이 시작되는 보문동 평지에 위치한 진평왕릉은 경주의 왕릉 중 가장 분위기가 좋은 곳. 선덕여왕이 만든 진평왕릉은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위엄을 잃지 않은 모습이 낭산의 선덕여왕릉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특히 호위무사처럼 진평왕릉을 지키고 있는 키 큰 미루나무와 굽어 절하는 모습의 소나무 사이로 해가 지는 모습은 사뭇 서정적이다.

삼국통일의 주춧돌을 놓은 아버지와 딸. 가을색이 완연한 보문들녘을 사이에 둔 부녀가 드라마 한 편으로 1300여 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신라 역사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경주=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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