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유망주 ML 유출 '이러다 정말 다 빼앗길라'

2009. 3. 2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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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 하남직] "이러다 정말 다 빼앗깁니다. 모두 다."

수도권 구단의 모 스카우트가 긴 한숨을 내뱉는다. 3월에만 3명의 고교 유망주가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과 입단계약을 체결했다.

천안 북일고 우타 외야수 김동엽 (19)이 시카고 컵스와 55만달러(약 7억 7000만원)에 계약했고, 화순고 포수 신진호(19·3학년)와 동산고 포수 최지만(19·3학년)도 미국 진출을 확정했다. 신진호는 캔자스시티와 60만달러(약 8억 4000만원), 최지만은 시애틀과 42만 5000달러(약 5억 9500만원)에 사인했다.

전국 규모의 고교야구대회가 이제 막 시작한 상황에 3명의 고교생이, 각기 다른 구단과 입단계약을 체결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국내 스카우트들은 이를 "메이저리그 대공습의 신호탄"이라고 경계했다.

▲'야구 강국, 대한민국' ML의 관심 높아졌다

2006 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 2회 WBC 준우승. 한국 야구가 만들어낸 국제대회의 성과는 '유망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국내 구단의 한 스카우트는 "지금 한국에 13개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파견한 스카우트들이 있다. 시카고 컵스·미네소타 등 한국에 관심을 보여왔던 구단은 물론이고 오클랜드·디트로이트·피츠버그 등 국내로는 스카우트를 파견하지 않던 구단들까지 나섰다. 이들 얘기를 들어보면 국제대회 성과로 인해 한국에 대한 메이저리그 구단의 관심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류제국(샌디에이고·2001년 시카고 컵스 입단) 이후 한동안 명맥이 끊겼던 고교 유망주들의 미국 진출이 계속되고 있다. 2006년 정영일(진흥고 졸)이 LA 에인절스와 계약하면서 다시 물꼬를 텄고, 2007년 이대은도 컵스에 입단했다.

2008년에는 총 6명의 고교 졸업생이 미국행을 택했다. 이중에는 국내 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한 선수가 3명이나 포함됐다. 고교랭킹 상위 순위에만 주목하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이제는 표적을 '가능성있는 선수'로 넓혔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컵스의 독주를 막아라…ML 구단끼리도 경쟁

최근 한국 선수 영입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구단은 시카고 컵스다. 지난 해 충암고 이학주, 부산고 정수민, 마산용마고 하재훈을 영입하더니 올해에도 김동엽과 입단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스카우트들은 '컵스의 움직임을 포착하면 해외 유출의 50%이상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컵스의 독주를 막기 위해 나섰다. 시애틀은 2000년 추신수(현 클리블랜드)이후 9년만에 한국 고교생을 영입했다. 캔자스시티가 한국 선수를 영입한 것은 신진호가 처음이다.

국내 스카우트들에게는 견제상대가 더욱 넓어졌다. 한 스카우트는 "미국 구단이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친다면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공룡 여럿을 상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호소했다.

▲8월 17일까지 발목이 묶인다. 전면 드래프트의 맹점

올해부터 실시되는 전면 드래프트제도 때문에 국내 스카우트는 8월 17일(드래프트 실시일)까지 발이 묶였다. 연고지 우선지명이 폐지됨에 따라 운신의 폭은 확연히 좁아졌다. 지방구단의 한 스카우트는 "1차 우선지명을 할 때는 지역에서 돋보이는 2~3명의 선수를 '관리'할 수 있었다.

1·2학년 때는 용품지원 등으로 마음을 얻고, 3학년 때는 구체적인 계약금액과 구단 내에서의 대우 등을 약속하며 확답을 받았다. 선수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기도 쉬웠다. 메이저리그 구단을 상대로 최소한 1차 지명 선수는 지켜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올해에는 "8월까지는 누구와도 접촉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전면 드래프트 실시로 어느 구단에서 누구를 지명할 지 모른다. LG·두산이 서울 선수를, 삼성이 대구·경북 선수를 관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

국내 스카우트들이 현실의 벽에 막혀있는 사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운신의 폭은 넓어졌다. 국내 구단 모 스카우트는 "(우리가 움직이기 힘든)8월 17일 전에 최대 15명의 선수가 미국행을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정말 다 빼앗길라, 모두 다

"사실 올해 3학년 선수 중에는 성영훈(두산)은 물론 오지환(LG)·김상수(삼성·이하 2009년 신인) 정도의 선수도 눈에 띄지 않는다. 준척급이 즐비한 상태다. 그런데도 메이저리그 구단의 공습이 이 정도까지 진행된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선수들이 더 좋아지는 내년, 내후년에는 얼마나 더 빼앗길까." 1·2라운드 지명이 확실시됐던 3명의 고교 유망주 이탈 소식에 국내 스카우트들은 힘이 빠진다.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라 더욱 힘겹다.

한 스카우트는 "많은 선수들이 미국 진출 후 국내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국내 복귀를 원할 경우 2년의 유예기간도 유명무실해졌지 않은가. 오히려 국내 유턴 때 계약금을 또 받게 된다"고 지적한 뒤 "프로 구단끼리 '해외 진출 후 국내에 복귀하는 선수들에게는 계약금을 없애거나 상한선을 두는 방법'을 상의하는 것은 어떤가"라고 제안했다.

또 다른 스카우트는 "미국에서 제시하는 금액이 절대적으로는 커보이지만 '집을 구해야 하는 등의 정착 자금, 개인 용품을 구입에 필요한 금액을 고려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국내에 남는 것이 금전적으로 이익일 수 있다. 또한 '가르치기 보다 혼자 두는' 풍토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도태되기 쉬운 곳이 미국임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스카우트들의 자성 목소리도 들렸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학교를 찾아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가족을 만나 가정상황을 파악한다. 우리도 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남직 기자 [jiks7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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