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재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연세대 축구 신 중흥기 이끄는 신재흠 감독

[JES] 김호곤ㆍ허정무ㆍ조광래부터 최용수ㆍ김도훈까지.
연세대가 배출한 한국 축구의 큰 별들이다.
몇 년째 침체에 빠졌던 연세대 축구가 최근 신 중흥기를 맞았다. 지난해 연말 실시한 프로축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연세대는 무려 8명의 선수를 프로에 입단시켰다. 압도적인 '취업률 1위'였다. 이들 중에서 조용태ㆍ박현범(이상 수원), 서상민(경남)은 입단 첫 해 주전 자리를 확보하면서 치열한 신인왕 경쟁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봄철 대학연맹전 우승과 가을철 대학연맹전 준우승을 차지했던 연세대였지만 8명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공백은 컸다. 하지만 연세대는 지난달 봄철 연맹전에서 또다시 우승했다. 올해 출범한 수도권 10개 대학 리그인 U리그에서도 1승2무로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올해 공식 경기에서 아직 패배가 없다.
2005년 1월 부임해 연세대의 '독수리 고공 비행'을 이끌고 있는 신재흠(49) 감독을 13일 만났다. 그는 축구 감독이라기보다는 교수 같은 분위기였다. 조용조용한 말투였지만 조리가 있고 힘이 느껴졌다.
그가 부임할 당시 축구부는 전임 감독이 금품과 관련한 투서 사건으로 옷을 벗고, 코치 대행 체제로 운영 중이었다. 분위기는 최악이었고, 성적은 각종 대회에서 예선 탈락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곤두박질한 상태였다.
"와서 선수들을 만나보니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한 모습이었습니다. 분위기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처음 시작한 일은 놀랍게도 축구부 기숙사에 서재를 꾸미는 것이었다. 신 감독은 동문과 친지의 도움으로 600권의 책을 장만했다. 선수들이 교양 서적을 읽으면서 스스로 돌아보고 '왜 축구를 하는지' 생각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선수들은 점점 책 읽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다음으로 신 감독은 저녁 시간에 선수들을 세미나실에 모아놓고 매일 2∼3명씩 '5분 스피치'를 시켰다. "너희는 축구 선수이기 이전에 대학생이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형식과 내용은 자유고, 메모를 보고 읽어도 좋다." 감독의 말에 선수들은 하얗게 질렸다. "훈련하는 것보다 발표하는 게 더 힘들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선수들은 내 생각을 전달하는 훈련을 하는 동시에, 동료의 생각과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됐다. 고교에서 1년 유급을 하고 입학한 A선수는 적응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렸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B선수는 반드시 축구로 크게 성공하겠다고 다짐하며 울었다. 목표 의식은 뚜렷해졌고, 팀워크는 탄탄해졌다. 5분 스피치는 지금도 매일 이어진다.
신 감독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기본기, 그 중에서도 패스다. '축구는 패스의 게임'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는 그는 단조로운 패스 연습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연세대 부임 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연수하면서 패스의 중요성과 패스 훈련의 방법을 익힌 게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선수들은 패스에 자신이 붙으면서 경기를 자유자재로 풀어갈 수 있게 됐다.
수비수 출신인 신 감독은 대신고를 졸업하고 78년 연세대에 입학했다. 장외룡 인천 감독과는 대학 및 대우 로얄즈 입단 동기다. 84년 럭키금성(FC 서울의 전신) 창단 멤버로 옮겨 박항서(전남 감독), 이용수(세종대 교수) 등과 함께 뛰었다. 장외룡ㆍ이용수와는 지금도 축구 철학을 공유하며 고민을 나누는 사이다. '기숙사 서재' 아이디어도 이 교수가 줬다고 한다.
신 감독을 돕는 최태호 코치와는 주택은행 시절 코치와 선수로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합류한 신진원 코치는 97년 대전 시티즌에서 뛰면서 프로축구 신인왕을 차지한 스타였다. 신 감독은 "팀 훈련과 선수 관리를 사실상 책임지고 있는 두 코치 덕분에 좋은 성적이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1학년으로 봄철 연맹전 득점왕에 오른 최정한은 "올해 출전하는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다"고 목표를 밝혔다. 그러나 신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성적은 열심히 하다 보면 따라오는 것이다. 나는 우리 선수들이 좀 더 진지하고, 성숙한 모습을 갖추기를 바란다. 물론 나도 더 배워야 한다."
축구전문기자 [jerry@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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