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줄 아는 사람 데려오랄 때 제일 난감"
[데일리안 변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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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신중계서비스를 통해 청각언어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통화하고 있다. ⓒ 데일리안 박항구 |
IT 기술의 발달은 사람을 향하고 있다. 시공간을 초월해 사람과 사람의 간극을 메우고 마음의 틈새를 박음질한다.
농어촌 지역 주민들이나 장애인, 고령층, 저소득층 및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의 낮은 곳에서 소외받고, 가장 큰 목소리가 필요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만족해야 하는 이들에게 IT는 가능성과 미래의 또다른 이름이다. 인터넷을 통한 무한한 정보와 다양한 기회는 신체적 불편함이나 물리적 한계는 문제되지 않는다.
<데일리안>이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벤트의 일환으로 지난달 한국정보문화진흥원과 진행한 '말 못하는 장애인, 대통령에 말하다'는 이같은 IT의 따뜻함을 잇는 행사였다. 청각언어장애인과 일반인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진흥원이 개발한 통신중계서비스(TRS, Telecommunication Relay System/www.relaycall.or.kr)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에 바라는 장애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통신중계서비스는 청각·언어장애인과 일반인의 전화통화가 가능하도록 장애인이 수화로 중계사에게 통화내용을 전달하면 중계사는 이를 음성으로 통화상대방에게 전달하고 통화 상대방의 메시지는 중계사가 다시 수화로 장애인에게 전달하는 실시간 전화중계서비스다.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을 꾹꾹 눌러담아왔던 청각언어장애인들은 타자에 대한 배려가 있는 '따뜻한 디지털'을 통해 봇물처럼 말을 쏟아냈다. "취임을 축하한다" "앞으로 5년 동안 열심히 일해달라" 등 축하인사와 함께 "지금보다 장애인의 눈높이에 맞춘 정책들을 펼쳐달라"는 바람이 주를 이뤘다.
이벤트에 참가한 청각·언어장애인들은 "장애를 큰 문제가 되는 것인양 생각하는 인식에서 벗어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입을 모으면서 수화통역 확대 실시 및 공공장소의 전광판 설치 등 장애인의 안전과 편익을 도모하는 작은 정책들을 펼쳐줄 것을 요청했다.
청각·언어장애인들이 일상에서 부딪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의사소통의 단절과 그에 따른 고립감이다. 휴대전화가 보편화된 요즘 전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은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해야 하는 부담과 번거로움으로 되돌아온다.
"궁금한 점이 있어 구청 또는 동사무소에 전화한통 걸어 물어보면 처리가 될 일을 남에게 부탁하거나 버스를 타고 직접 가서 물어봐야 하고, 음식하나 스스로 주문하지 못한다."
"병원에서도 자기의 몸 상태를 의사에게 자세히 설명할 수도 없고 동사무소, 구청에 가도 질문을 제대로 전달 할 수가 없어서 너무 불편하다."
"관공서에서 업무를 볼 때면 장애 민원인의 답답함은 아랑곳 하지 않고 종이에 '말할 줄 아는 사람을 데려오세요'하고 써서 내밀고는 상대조차 해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기획을 통해 청각·언어장애인 대다수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데서 곤란을 겪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청각·언어장애인들이 문장 표현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필담도 여의치 않은 점을 감안한다면 이같은 무관심한 태도는 장애인들에게 있어 이중의 서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벤트에 참여한 한 청각언어장애인 사업가 고광채씨는 "관공서에서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할 때면 완전히 외국인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고 고객인데도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수화통역을 이용하더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통역을 신청하면 최소 1주일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원하는 시간에 이용하기 어렵다"는 게 청각·언어장애인들의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통신중계서비스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넘어 장애인의 자립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듯했다. 서비스를 이용한 장애인들은 "내가 스스로 전화해서 일을 처리한다는 것이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면서 "비장애인의 짐이 아니라 동반자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민경주씨는 "우리를 지나치게 불쌍해하며 동정을 한다거나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자립할 기회를 주지 않고 타인의 도움에 기대게 만드는 것, 장애인은 지저분하고 모자란다고 오해하여 차별을 하는 것 등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탓"이라면서 "그러나 장애인을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고 자립을 도모하는 정책을 실시한다면 물질적 지원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이벤트에서 청각언어장애인들은 이명박 정부에 △통신중계서비스의 확대와 활성화 △인터넷을 통한 다자간 원격 수화통역 서비스 제공 △공공장소에의 전광판 설치 △공교육 내의 장애인 인식 교육 강화 등 희망사항을 전했다. 장애가 흠이 되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바람은 동영상으로 제작돼 청와대측에 전달될 예정이다./ 데일리안 변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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