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의 성지 탐사―④ 브엘세바에서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이 야곱에 나타나신 곳

네게브 사막의 북쪽 끝과 지중해 연안에서부터 유다 산지를 만나는 지점에 텔 브엘세바가 있다. 지리학적으로도 요충지이지만 이름 자체에서 물이 풍부한 곳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브엘세바란 일곱개의 우물 또는 일곱이라는 단어에서 파생한 맹세의 우물이란 의미다. 물론 현대도시 브엘세바와는 구별된다.
창세기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이 맹세하며 암양 새끼 일곱을 주는 등 브엘세바라는 이름과 관련된 단어가 많이 사용된다(창 21장). 이곳은 하나님이 하갈(창 21:14), 야곱(창 46:1∼3)에게 나타나신 곳이며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해 도망온 곳이기도 하다(왕상 19:3). 후에 이곳은 시므온 지파에게 분배된다(수 19:1∼2). 또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삿 20:1, 삼상 2:20, 삼하 3:10, 17:11, 24:2, 왕상 4:25, 암 8;14 등) 단이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를 나타낸다면 브엘세바는 남쪽 끝에 위치한 성읍으로 남쪽 경계를 나타낸다. 우리 식으로 하면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라는 표현이다.
구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 특히 족장들이 한번씩 다녀간 이곳에 서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한밤중에 홀로 이곳에 있으면 혹시 하나님이 나타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버스를 타고 조금 북쪽으로 올라가면 세펠라 지역에 도달한다. 세펠라는 '낮다'는 뜻으로 '저지대'를 일컫는다. 한글 성경에는 평지(삿 1:9)로 번역돼 있다. 남쪽 해안평야, 즉 과거 블레셋 지역과 중앙의 유다 산악지대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해안평야에서 보면 그렇게 낮지 않은 해발 200∼500m에 달하는 구릉지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지나 저지대로 불렸던 이유는 산악지대에 주로 살았던 유대인들의 시각으로 본 편견이라고 생각됐다.
이 지역은 해안평야에 자리잡고 있는 블레셋과 산악지대에 있는 이스라엘이 늘 충돌하는 곳이었다. 또 적군들이 예루살렘을 공격할 때 이 지역 계곡들을 통해 진격했다. 따라서 이곳은 예루살렘을 지키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우리는 세펠라에 위치한 라기스, 즉 텔 라키시로 갔다. 구약시대 라기스는 유다 땅을 보호하는 중요한 요새 중 하나였다. 그러기에 르호보암도 라기스를 요새화하고 견고케 했다(대하 11:9).
히스기야왕 때 앗수르의 산헤립도 예루살렘을 치기 전 라기스를 먼저 공격하고 그곳에 전초기지를 마련한 뒤 예루살렘에 항복을 요구했다(대하 32:9; 왕하 18:13∼16). 당시 산헤립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니느웨 궁전 벽에 라기스 점령 장면을 새겨 놓았다. 현재 그 원판은 대영박물관에 있고 그 모형이 이스라엘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라기스 유적지 성문 경비대에서 21개의 오스트라카가 발견됐다. 느브갓네살왕에게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전 외부에서 라기스의 군사령관에게 보낸 서한들을 통해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잘 알 수 있다. 현재 라기스 주위는 대단위 포도밭이 널려 있다.
라기스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북쪽으로 소렉 골짜기를 향해 올라가 텔 벧세메스에 도착했다. 벧세메스는 태양신인 셰메시의 집 또는 태양 신전이라는 의미다. 북동쪽에는 삼손의 출생지 소라가 있고, 좀더 북쪽으로 멀리 에스다올이 보인다. 삼손이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에 장사되었다고 사사기는 기록하고 있다(삿 16:31).
현대와 고대가 묘하게 어우러진 나라 이스라엘, 어쩌면 현대가 고대에 파묻혀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족장들과 삼손, 하나님의 법궤 등 구약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 선상에 우리도 서 있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 땅에 왔다. 같은 땅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다.
김윤희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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