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역사? 풍자화로 보면 쉽다
[오마이뉴스 김현자 기자]
|
|
| ⓒ2007 지식산업사 |
"러일전쟁기를 전후한 구(舊)한국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허수아비, 양반차림에 검은 안경을 쓴 우스꽝스런 모습, 혹은 갓 쓰고 도포 차림을 한 채 어울리지 않게 딸랑이를 들고 있는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모습 등으로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그려진 것이다.바깥세상의 물정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 그것이 곧 한국의 모습이었다. 한국은 청일 전쟁기 이래 작은 몸집의 동물, 게, 나약한 호랑이, 허수아비 등으로 묘사되었다. 프랑스와 독일의 삽화나 엽서에서는 한국이 일본풍의 여성 또는 가슴을 드러낸 빈한한 여성의 모습으로도 나타나기도 했다." - <풍자화로 보는 러일 전쟁>에서
구한말 우리가 어떤 나라였고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대략 알고 있었지만 <풍자화로 보는 러일 전쟁>(지식산업사)에서 언급된 한국에 대한 표현들은 충격이었다. 사실 난 구한말의 역사를 혼란스럽고 어렵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풍자화로 보는 러일 전쟁>은 쉽게, 그것도 풍자화로 보기 좋게 설명해 주었다. 궁금했다. 대체 이런 책을 쓴 사람은 누굴까?
4월초, 일산의 한 커피숍에서 <풍자화로 보는 러일 전쟁>의 저자 석화정(48) 박사를 만나 책이 나오기까지의 간략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러일 전쟁의 본질과 실체를 가급 많이 알리고 싶다"
|
|
| ▲ 석화정 박사 |
| ⓒ2007 김현자 |
- 왜 하필 풍자화로 러일 전쟁을 설명하고 싶었는가?
"10여 년 전, 책 속에서 우연히 한 장의 풍자화를 만났다. 책의 내용을 설명하려고 곁들인 그 풍자화는 복잡한 책 내용을 아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었다. '역사라면 딱딱하고 어렵다고 생각하기 일쑤인 우리 학생들에게 이처럼 그림이나 사진을 가지고 설명하면 훨씬 효과적 일 텐데….' 그때부터 풍자화에 관심을 두고 수집, 강의를 했다. 학생들은 훨씬 쉽게 이해했고, 강의내용을 책으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학생들의 열망과 부추김으로 나온 책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 책의 주제인 러일 전쟁은 어떤 사건인가?
"러일 전쟁은 본질적으로 한국과 만주 지배를 둘러 싼 군사적 제국주의의 패권 다툼이자,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일본의 대륙진출정책이 충돌한 결과였다. 만주를 점령한 채 한반도 북부를 중립하고자 하는 러시아를 막는 것은 일본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문제였다. 또 러시아와 일본, 두 나라의 패권다툼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당시 제국주의들의 동아시아 정책, 19세기 내내 지속된 영국과 러시아 사이 전 세계적 규모의 대립관계, 독일과 프랑스의 민족적 대립, 발칸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대립, 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등, 당시 국제질서의 변화 등이 러일 전쟁에 잘 압축되어 있다."
-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러일 전쟁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러일 전쟁의 본질과 실체를 잘 모른다. 하지만 러일 전쟁은 구한말 우리나라의 운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엄청난 사건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최대 치욕스런 일본이 승리한 전쟁이라 외면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면도 많은 것 같다. 러일 전쟁의 본질과 실체를 알면 알수록 일본에게 지배당한 이유가 보인다."
- 러일 전쟁 당시 세계의 만평가들이 표현한 일본의 모습은 어떤가.
"곤충이나 원숭이, 혹은 싸움닭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체구가 작은 소년 병사나 왜소한 군인으로 표현된다. 혹은 기모노를 입고 교묘한 웃음을 흘리는 여인의 모습으로도 표현되기도 하는데 일본의 이와 같은 전체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러일 전쟁의 흐름에 따라 모습과 표정이 다르게 표현되는 것이 전체적인 특징이다."
|
|
| ▲ 일본을 표현한 이미지들 |
| ⓒ2007 지식산업사 |
풍자화로 표현된 국·영국·프랑스·독일
책 속 풍자화를 저자의 설명과 함께 자세하게 살펴보면 무척 흥미롭다. 러일 전쟁 당시 한반도를 향한 저마다의 속셈을 숨기고 러시아와 일본의 혈전을 지원하거나 주시하고 있는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은 몇 개의 대표 이미지로 고정, 표현 변화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일본은 변화무쌍, 러일전쟁의 흐름에 따라 상대국 러시아에 비해 훨씬 다양하게 표현된다. 전쟁 초기에 등을 떠밀고 있는 영국 신사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소년 병사, 차고 있는 칼조차 빼기를 두려워하는 작은 체구의 병사는(러시아 병사 반절도 안 되는) 제 몸보다 훨씬 큰 칼을 빼들고 기세당당하게 서 있다. 대들고 있는 꼴이랄까?
일본을 조롱하던 러시아는 전세가 일본으로 기울면서 온몸에 힘이 빠지고, 커다란 곰(러시아)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급물살을 두렵게 바라보고 있다. 방향까지 잃고. 영국은 언뜻 보면 사람 좋아 보이는 배불뚝이 신사, 프랑스는 우아한 여인, 그럼 미국은?
당시의 풍자화에서 줄무늬 바지를 입고 파이프를 물고 있는 키 큰 고쟁이 신사가 보이면 그는 엉클 샘. 즉, 미국이라고 보면 된다. 동아시아를 먹고는 싶지만 거리상 멀다 보니 먹을 수 없어 아쉬워하며 은근히 간섭을 하는 미국.
이처럼 풍자화 한 컷으로 당시의 복잡한 국제정세와 제국주의의 검은 속셈이 쉽게 이해된다. 석화정 박사는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제국주의들의 각축인 러일 전쟁을 마치 한반도 상공에서 내려다보면서 중계방송 하는 듯 생생하게 설명한다.
|
|
| ▲ 동아시아의 각축장에 차려진 식탁이 아수라장이다. 한쪽에는 러시아와 일본이 벌이는 육박전으로 의자가 나뒹굴고 있는데, 일본이 러시아의 수염을 낚아채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의 승기가 예상되는 상황임을 말해준다. - 책 속에서 |
| ⓒ2007 지식산업사 |
|
|
| ▲ 이 그림은 한반도를 앞에 둔 러시아와 일본의 대립을 풍자한 것이다. 일본군이 손에 칼을 든 채 커다란 러시아 곰에게 외치고 있다. "어디 한번 곰 재주를 부려보시지, 작은 별!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데?"라고 약을 올리면서. 한반도를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일본의 결의를 잘 드러내고 있다. - 책속에서 |
| ⓒ2007 지식산업사 |
역사가들 보다 더 예리했던 세계의 만평가들
|
|||||||||||||||||
- 당시 풍자화들은 러일 전쟁을 어떻게 표현했나?
"러일 전쟁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 만큼 복잡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세계의 시사 만평가들은 신문과 저널, 그리고 엽서 등에 익살맞고 날카로운 풍자화로 러일 전쟁의 실체와 제국주의들의 복잡한 얽힘을 훌륭하게 담아냈다. 한 장의 풍자화는 수많은 말과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들은(만평가들)은 사람들로부터 통쾌한 웃음과 공감을 자아내는 풍자화의 속성으로 당시 복잡한 국제정세를 날카롭게 분석, 사료로만 설명하려고 고집하는 역사가들의 시각을 압도하기도 했다."
- 주로 어떤 풍자화를 선택했고 역사적 사실들은 어떻게 증명되는가?
"책 속에서 160여점의 삽화를 만날 수 있다. 10여 년 동안 수집한 1000여 점의 삽화 중 지나치게 회화적이거나 연대나 출처가 불분명한 것은 피했다. 또 당시의 국제정세나 러일 전쟁을 잘 표현하고 있음에도 한쪽으로 치우친 성향의 풍자화는 배제했다. 최대한 객관적이면서 러일 전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쪽을 우선 선택했다. 역사적 사실들은 각국의 외교문서(비밀문서내지)를 참고하여 그동안 내가 연구해 온 것들을 확인했다."
- 풍자화를 수집하는 동안의 에피소드는 없는가?
"풍자화를 보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웃다가 나도 모르게 뒤로 넘어진 적도 여러 번 있다. 오랫동안 풍자화 수집 때문에 세계 주요 도서관 자료들을 뒤지면서 외국 도서관 관계자들에게 꽤나 많이 알려졌다. 이제는 귀한 삽화가 보이면 먼저 건네는 사람들도 있다."
"학생들이 많이 읽어 복잡한 역사를 쉽고 재밌게 이해했으면"
|
|
| ▲ 한일 의정서가 나오기 전 미국의 한 언론이 일본의 한반도 유린을 포착,풍자한 그림과 <풍자화로 보는 러일 전쟁>겉그림 |
| ⓒ2007 지식산업사 |
- 학생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나?
"아니다. 좋은 점수를 내기 위해 시험문제에 잘 나오는 것만 줄을 그어 외어야 하는 지긋지긋한 역사를 배웠다. 오죽 싫었으면 친하게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끼리 죽어도 역사나 세계사 선생님은 되지 말자고 다짐까지 할 정도였을까.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나만 역사를 전공하게 되었다.(웃음) 대학 1학년 어느 날, '우리는 일본에게 나라를 꼭 빼앗겨야만 했을까? 정말 빼앗길 수밖에 없었을까? 그렇다면 왜?' 그것이 궁금해 관련 책들을 수도 없이 읽으며 러일 전쟁과 만났다. 우리의 운명을 쥐고 흔들었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고 외면하고 있는 러일 전쟁의 실체와 본질이 궁금하여 접근, 연구하게 되었다."
- <풍자화로 보는 러일 전쟁>에 대한 바람은?
"올해는 헤이그 밀사사건 100주년이 되는 해다. 책으로 냈으면 좋겠다는 학생들의 열망에 몇 년 동안 준비해왔지만 마침 올해 책을 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을 헤이그밀사사건으로 마무리하였다. 이 책은 풍자화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러일 전쟁은 교과서에 한 줄로 설명되고 있는 정도다. 아쉽다. 이 책이 역사 교육의 자료로 많이 활용되었으면 더 이상의 바람은 없겠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읽어 복잡한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 준비 중인 책은 <1898 한국>(가제)이다. 청일전쟁 후 1895년에서 1898년까지는 아시아적 전통사회에서 유럽근대화로 전환하는 시기다. 우리에게는 복잡하고 고단한 시대지만 꼭 알아야 할 역사다. 다음으로는 <1905년 한국>(가제)이 될 것이다. 이후에도 낼 책이 많다. 물론 <풍자화로 보는 러일 전쟁>처럼 삽화 한 컷에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쉽게 설명하는 형식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로부터 복잡한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우리의 고단하고 복잡한 지난 역사를 10여 년 동안 수집한 삽화를 바탕으로 계속 시리즈로 묶어 낼 것이다. 할 일이 많다."
/김현자 기자
덧붙이는 글<풍자화로 보는 러일 전쟁>(석화정 지음/지식산업사. 2007년 1월/1만 5천원)
- ⓒ 2007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국정원 "검찰에 불리한 자료 누락"… 사건 뒤흔드는 '선별제출'
- "쌍방울 100억대 주가조작"… 검찰, 자료 안 가져가고 무혐의
- "면민은 읍에서 국밥도 못 사먹어"... 농어촌 기본소득이 부른 황당한 장면
- 평생 물 대신 와인 마시며 80세까지 장수한 사람
- 내가 막동어멈, 여기 '공주와 사는 여자'도 있습니다
- 주눅들어도 10개월을 버텼더니 '미미'가 되었습니다
- AI의 달콤한 칭찬, 나라를 망친 간신배가 여기 있습니다
- 국민화가 김홍도 작품의 특색, 소의 엉덩이를 자세히 보세요
- 민주당 대전시장 경선 결과, 장철민-허태정 결선 진출
- 민주당 충북도지사 후보, 신용한 선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