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크리스천인가―진덕규 이화학술원장] 주님은 내 삶을 인도하는 나침반

2007. 4. 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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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부산 피난시절에 살던 집 2층에는 서울에서 피난 온 가족이 살았다. 그들은 아침저녁으로 가정예배를 드렸다. 그들이 가정예배를 드리면 나도 아래층에서 그들의 의식에 따라 함께 예배를 드렸다. 비록 찬송이나 성경 낭독을 정확하게 할 수는 없었지만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휴전이 되자 그들은 서울로 올라갔다. 그때 내 또래의 중학생이 내게 책을 두 권 선물했는데 한권은 박술음의 '영어 첫걸음'이었고 다른 한권은 성경이었다.

그 학생은 자기들의 가정예배에 내가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던 듯하다. 그들이 떠난 뒤 나는 두 권의 책에 몰두했다. 특히 성경은 거의 암기할 정도로 읽었다.

그래도 나는 쉽사리 교회를 찾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집안 분위기는 완전히 반기독교적이었다. 2층집 사람들을 '예수쟁이'라면서 배척했을 정도였다.

내가 처음 교회를 찾은 것은 대학교에 입학해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였다. 서울에 올라온 내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교회였다. 그리고 학교 채플 시간에 하루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4·19혁명 후였으니까 아마 196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성북동의 한 기숙사에 살고 있었다. 새벽 5시부터 7시30분까지 혜화동 어느 집에서 시간제 가정교사로 일했다. 겨울에 새벽길을 나서면 나도 모르게 입에서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전날 밤에 읽었던 성경 구절을 소리 내어 암송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연히 찬송가가 흘러나오는 천막교회를 발견했다. 성북초등학교 뒤편에 있던 조그마한 개척교회였다. 나도 모르게 그곳에 들어가 교우 4∼5명과 함께 힘차게 찬송가를 불렀다.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나는 가정교사마저 팽개쳤다. 그 교회가 다른 곳으로 옮겨갈 때까지 나는 매일 축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떤 날에는 천막 지붕에서 물이 떨어지는데도 맨 바닥에 앉아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모든 일이 즐거웠고 힘이 넘쳐흘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제적으로는 궁핍했지만 내 신앙생활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해 채플 시간에 참석하기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를 단지 역사적인 사실로만 이해했다. 교회사와 예수 평전을 읽으면서도 기독교를 그저 역사로만 받아드렸던 것이다.

채플 시간에는 내 가슴을 파고드는 이상한 힘이 담겨 있었다. 기도와 찬송, 성경 낭독, 그리고 설교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예배가 끝날 때쯤이면 내 눈가에는 언제나 눈물이 맺혔다. 그것은 회개일 수도 있었고 현실의 고통에 대한 아픔일 수도 있었다.

어느 날, 교목실장이시던 김정준 목사님을 찾아뵈었다. 그때 내가 했던 말이 전부 생각나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렇게 힘든 고학생 생활을 하도록 놔두시는 것이냐"고 물었던 것 같다. 그날 김 목사님과 함께 기도를 드린 뒤부터는 이상하게 일상이 힘들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마냥 기분 좋게 생활할 수 있게 됐던 것이다.

그렇게 찾은 교회와 학교 채플 시간을 통해 나는 비로소 나 스스로를 온전한 기독교인으로 세울 수 있게 됐고 지금은 하나님께서 내 삶의 전부로 자리잡고 계신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나는 방약무인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자기 성찰이나 한없이 미약한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인식은 전적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이 가져다준 열매이다. 지금도 나는 절절할 정도로 하나님께 매달려 살아가고 있다.

◇ 진 교수는… 1938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정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법정대학장과 한국문화연구원장,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특임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이화학술원장에 재임 중이다.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다.지은 책으로는 '민주주의의 황혼', '한국정치와 환상의 늪'이 있다. 평신도로 집근처의 교회에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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