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생에서 '주전신화' 일군 흥국생명 전민정
[일간스포츠 정회훈.김진경] 퀴즈하나. 6명(리베로 포함 7명)이 뛰는 배구에서 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 연습생으로 들어와 경쟁을 뚫고 주전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확률을 얼마일까. 적어도 2004년까지는 0%가 정답이다. 그러나 불가능했던 일을 가능하게 만든 이가 있다.
바로 흥국생명의 '얼짱 센터' 전민정(22)이다. 한때 갈곳 없어 막막해 했던 그녀는 벌써 챔피언 반지 2개를 손에 넣었다.
어느새 팬도 부쩍늘어 8일 현재 그의 싸이월드 홈페이지 방문자 수는 24만 8000여명, 여자 선수들 가운데 단연 인기 톱이다.
설움의 눈물에서 기쁨의 눈물로 바꿔 흘리고 있는 전민정을 4월초 황사가 걷힌 어느 화창한 날에 만났다.
▲눈물로 뒤덮힌 20위 밖의 세상
서울 추계초 4년 때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배구를 시작한 전민정은 중앙여중·고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우승도 맛보는 등 비교적 순탄한 길을 밟았다.
그러나 '소녀의 꿈'은 2004년 고3 졸업반 때 산산조각이 났다. 그해 11월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한 것. 드래프트에 참가한 4개 팀이 5라운드까지 돌아가며 선수를 뽑았는데, 끝까지 그의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
1라운드에서 GS칼텍스에 지명된 동창생 김민지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민지가 상위로 뽑힐 줄은 알았죠. 그러나 마지막까지 제 이름을 부르지 않는 거예요. 얼마나 서글프고 창피했는지…."

작은 키가 문제였다. 배구를 시작할 때만해도 154㎝로 큰 편에 속했던 전민정의 키는 고1 때 180㎝에서 멈췄다. 여자배구라고 하더라도 센터로서는 작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숙소로 돌아와 펑펑 울었다. "진짜 2~3일은 울기만 했어요. 집에선 운동을 접고 대학에나 가라고 했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을 그만두기가 아까웠어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죠."
며칠 후 흥국생명으로부터 구원의 손길이 왔다. 그러나 수련선수. 정식 입단이 아닌 훈련을 시켜보다 안되면 그만두는 연습생 신분이었다.
그것도 어창선 당시 중앙여고 감독(현 흥국생명 코치)이 황현주 흥국생명 감독에게 부탁을 해 어렵사리 만들어낸 자리였다. 오기가 생겼다. '그래, 숨겨진 나를 반드시 보여주고 말겠다. 나를 지명하지 않은 감독님들을 후회하게 만들겠다.'
▲달리고 또 달리고
선수단에 들어와서도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힘들어서였다. 당시 흥국생명은 리그 하위권을 전전했기 때문에 황 감독은 엄청나게 훈련을 시켰다.
전체 훈련 뒤 수련선수에게는 항상 '보충 수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숙소에서 룸메이트 언니가 듣지 못하게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었어요. 다 때려치고 싶다는 충동도 있었지만 한바탕 울고 아침이 밝을 때면 모두 잊고 다시 시작했죠."
체력을 중시하는 황 감독의 주메뉴는 러닝. 매일 실내 코트를 40바퀴 돈 뒤, 400m 트랙도 20바퀴나 뛴다. 그냥 뛰는 게 아니라 정해진 시간 내에 들어와야 하는데, 타임오버가 되면 전체가 다시 뛰어야 한다.
효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러닝 훈련은 체력뿐 아니라 풋워크와 점프력에도 큰 도움을 줬다. 상대 스파이커를 찰거머리처럼 따라가는 전민정의 풋워크는 이때 완성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5년 2월 프로 원년 V리그 투어에서 공식대회 첫 선을 보였다. 첫 출전 소감을 묻는 말에 전민정은 "뛸 사람이 없어 엉겁결에 나갔다"고 수줍게 웃었지만 눈물로 이뤄낸 결실이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당연했으리라. 월급 80만원을 받던 수련 선수에서 정식 계약을 맺는 등 신분도 상승했다.

▲유쾌·상쾌·통쾌한 V2
전민정은 2006년과 올해 또 한번 폭포수같은 눈물을 왈칵 쏟았지만 이번 눈물은 초콜릿처럼 달콤했다.
흥국생명은 05~06시즌과 06~07시즌 연거푸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만년 하위팀에서 단번에 최강팀으로 뛰어오른 흥국생명의 성공스토리는 전민정의 그것과 오버랩된다.
배구 팬들 사이에서 '최고 얼짱'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지난해부터다. 불과 4년전 프로 구단도 알지 못했던 그의 이름을 이젠 팬들이 가장 많이 부르고 있다.
특히 지난 해 세터 이영주와 함께 나간 비치발리볼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그녀의 인기는 수직상승했다. V리그 동안 흥국생명 경기가 있는 날에는 '누나부대' 30여명이 항상 따라다닐 정도가 됐다. 그야말로 성공 신화를 일궈낸 것이다.
굳이 우승이 아니더라도 통쾌한 이유는 또 있다. 3년전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들 중 현재 배구판에 남아 있는 이는 김민지·지정희(KT&G)·김지현(도로공사) 등 7명에 불과하다. "그때 18명 정도가 뽑혀 갔는데 많이 그만 뒀더라고요. 이제 저는 20위 안으로 들어온 것이겠죠."
성공이 너무 빨리 찾아온 것이 아닐까, 앞으로 목표를 묻자 당찬 대답이 튀어나왔다. "은퇴할 때까지 우승하고 싶어요."
정회훈 기자 [hoony@ilg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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