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컬트를 만나자..조도로프스키 감독이 한국에 남긴 얘기들

2007. 3. 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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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연예] 컬트 무비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엘 토포'(1970)와 '홀리 마운틴'(1973)이 30여년 만에 HD고화질로 복원되어 다시 관객을 만난다. 마니아들이 시네마테크를 통해서 혹은 불법 다운로드를 감행하며 숨어서 만날 수밖에 없던 작품을 양지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컬트무비의 고전 '30년 만에' 재개봉

개봉 당시 신성모독, 지나친 표현수위 등이 문제가 돼 촬영부터 상영까지 홀대를 받았던 터라 필름 보관상태는 재상영이 힘들 정도로 나빴다. 이번에 복원된 필름은 그동안 음지에서 보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깨끗할 뿐 아니라 초현실주의적 환상과 독창적인 감각이 넘치는 화려하고도 실험적인 화면을 생생하게 맛볼 수 있다. 무삭제판이라는 것도 놓칠 수 없는 매력이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영화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 길어진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엘 토포'를 보고 감독의 광팬이 된 '비틀즈'의 존 레논은 '홀리 마운틴'에 100만 달러를 투자하는가 하면 매니저 알렌 클라인(롤링 스톤즈와 비틀즈의 매니저)에게 두 영화의 판권을 사들이도록 했다. 시작은 좋았으나 감독과 클라인이 갈등을 빚게 됐고, 이후 두 영화의 공식 배급은 2006년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30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은 다시 친구가 됐고 컬트 영화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지난해 12월 프랑스를 시작으로 미국에서도 전국 로드쇼 형태로 순차 개봉 중이며 한국에서도 15일 두 영화가 동시 개봉된다.

감독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마니아들에게 기쁜 소식 한 가지 더. 무삭제 원판을 만나는 것으로 부족하다면 9일 오후 5시 서울 종로 낙원상가의 필름 포럼에 가면 조도로프스키 감독을 만날 수 있다. 지난 5일 6박7일 일정으로 방한한 그를 위해 주한 멕시코 대사관 주최로 칵테일 파티가 열린다. 퍼포먼스에 이어 오후 6시부터는 '엘 토포' '홀리 마운틴'의 유료 상영회가 이어진다.

30년을 앞서 산 미래인의 영화!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판토마임 배우로 출발해 연극, 영화, 음악, 소설, 만화, 잡지 등 다양한 예술 영역을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직접 연극이나 영화의 대본을 쓰고 제작하고 감독하고 연기하는가 하면, 음악도 작곡하고 만화도 직접 그린다. 이러한 면모는 '엘 토포'와 '홀리 마운틴'의 스탭 스크롤만 봐도 알 수 있다. 감독, 각본, 음악, 미술, 의상, 주연이 모두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이다. '홀리 마운틴'은 여기에 제작과 편집까지 직접 했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한 데에는 최소한의 제작비만으로 촬영을 시작하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끝없이 넘쳐나는 그의 상상력과 재능에서 기인한다. 30여년 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키높이 구두, 닭벼슬 머리가 등장하고 새카맣게 혹은 새하얗게 칠한 손톱과 스모키 화장법이 눈에 띈다. 남자가 성형수술을 하는 장면을 보노라면 마치 미래를 보고 와서 만든 듯한 생각이 들 정도다. '엽기'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에 만들어졌지만 광기로 가득찬 엽기적이고 현대적인 영화다.

장면 장면이 그림? 영화는 영화일 뿐!

'대부분의 감독들이 눈으로 영화를 찍지만 나는 고환으로 찍는다'고 서슴없이 말하던 괴짜 천재감독이 75세의 노장이 됐다. 지난 5일 서울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내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는 여전히 뜨거운 창작열을 과시했고, 한편으론 '영화는 의식을 깨우는 도구'라며 영화의 사회적 책임을 말하기도 했다. 세파를 견뎌낸 사람다운 성찰이 빛나는 얘기들을 남겼다.

다음은 기자회견 내용을 발췌한 것.

장면 구성의 요소들을 꼼꼼히 챙기다보니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영화는 장면 장면이 그림처럼 보인다. 그러나 감독은 결코 영화는 영화일 뿐 그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영화 장면이 그림 같아도 미술이 아니라 또다른 예술이다. '하나의 예술은 다른 예술을 모방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 영화의 장면들은 어떤 미술가도 모방하지 않았고,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또다른 장르의 예술이다. 한 장면 장면을 예술로 생각하고 만들지만 어쨌든 그것은 그림이 아니라 영화다."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바꾸기 시작할 순 있다"

광기 넘치는 괴짜 감독도 나이가 들면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까.

"외면적으로는 늙었지만 내면적으로는 더 젊어졌다. 젊은 시절엔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았다. 모든 인생을 경멸했다. 지금은 죽을 사람인 걸 안다. 하루하루가 보석 같고 선물 같다. 모든 사람을 한 명 한 명 바라볼 때마다, 여행하면서 만나는 한 명 같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인간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개인적인 고통들을 겪고 끝내면서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알게 됐다. 사람이 보이니 세상을 바꾸고 싶은 의지가 생겼다. 세상을 바꿀 순 없겠지만 세상을 바꾸기 시작할 순 있다."

"영화는 의식을 깨우는 도구"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 감독의 작업은 어떤 것일까.

"예술이라는 게 자신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예술은 치유를 위한 것이다. 영화는 마약이 아니다. 의식을 깨우는 도구다. 영화는 영화에 등장하는 권총같은 것이 아니다. 의식을 깨운다는 건 발로 다른 사람의 머리통을 차주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하는 작업들은 사람들이 지구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도록 발걸음을 시작하는 단계다. 동물들은 인간의 큰 스승인데 동물을 먹고 있다. 인간이 점점 로봇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 도시가 무덤과 시멘트의 구조물로 변하고 있다는 것, 인생이 돈만 벌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정치하는 사람들이 인형이라는 것, 인간은 우주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사람을 존중해야 함을 배워야한다는 것 등에 대해 말하고 싶다.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인식하는 것이 세상을 바꾸게 할 에너지가 될 것이다."

"좌절은 없다, 길을 바꾸는 것일 뿐이다"

화려해 보이는 그의 영화인생에서도 좌절은 있었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10년 동안 준비했던 'DUNE(사구)'이 데이비드 린치에게 넘어갔고, 윌리엄 바로우즈 원작의 '네이키드 런치'를 영화화하려고 했지만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과거의 좌절에 대한 지금의 생각은 어떨까.

"이제는 아쉽지 않다. 뭔가를 할 수 없을 땐 다른 걸 하는 것이다. 'DUNE'에서 하고 싶었던 걸 코믹만화로 만들었다. 프랑스의 만화작가 뫼비우스의 '존 디풀의 모험'을 제작한 게 그 예이다. 한국어로 번역된 것도 있을 것이다. 영화가 아닌 다른 예술로 표현해 냈다. 좌절이라는 것은 길을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 일뿐 아니라 사람과도 마찬가지다. 'DUNE' 프로젝트를 함께 준비하던 사람들과 다른 공상영화에서 함께 일했다."

"세계 영화의 새로움은 한국에 있다"

한국에 온 이유는 무엇이고 무엇을 할 것인가.

"늙은 내 관절이 12시간 넘는 비행길을 버텨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한국영화에 관심이 많아 오게 됐다. 라틴영화는 하향길에 접어들었다. 매번 같은 철학, 같은 장면, 똑같은 기법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 영화는 13세 어린이를 위한 것일 뿐이다. 믿지 않을 지 모르지만 영화계에 있어 새로운 것은 한국에 있다. 한국영화의 테크닉, 주제, 배우들의 연기에 관심이 간다. 기존 영화들과 굉장히 다르다. 일본, 홍콩영화를 초월한 상태다. '왕의 남자' '괴물' '음란서생'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 '한반도' '섬' 등을 감명 깊게 봤다. 다양한 테마에 놀랐다. 정치적인 문제를 상업화하는 것도 좋다. 무엇을 할 지는 모르겠다. 이준익 감독과 약속이 있고, 몇몇 감독들을 만날 것이다. 모든 감독을 만나고 싶다."

한국인들을 만나니 해주고 싶은 얘기가 많은 듯하다.

"한국인들이 한국영화가 중요하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 기술에 관심이 많은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 지 모르겠다. 촬영 기법의 발전 등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이 한국영화에 많다. 나중에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한국 작가랑 작업해 보고 싶다."

"내 영화, 새가 봐도 좋겠다"

조도로프스키의 영화는 결코 단순하지도, 쉽지도 않다. 그의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관객이 이렇게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절대 의도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영화를 만든다. 그리고 관객들은 본다. '성스러운 인도'라는 책 속에 이런 말이 있다. '작품을 생각하지 그 산물을 생각하지 말라'. 전적으로 공감한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영화만 생각하며 만든다. 내 영화를 젊은이가 봐도 좋고 노인이 봐도 좋다. 고양이가 봐도 좋겠고 새가 봐도 좋겠다. 나름대로의 눈에 보이는 것이 있을 것이다."

"강자의 약자 문화 침탈이 가장 가슴 아파"

칠레 볼리비아 국경에서 태어난 러시아계 유태인 감독. 할아버지가 성폭행한 러시아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이가 자신의 어머니여서 '러시아계'가 되었노라 담담히 밝히는 사람. 그는 출생지인 칠레가 아니라 멕시코에서 인생의 많은 부분을 보내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왔다.

'홀리 마운틴'에는 스페인의 멕시코 아즈텍 문명 파괴가 동물과 피의 잔치로 표현된 충격적인 장면이 있다. 아즈텍 문명인들이 카멜레온으로, 스페인 침략자가 슈퍼 개구리로 대치돼 있고 거리에서의 공연 형식으로 표현돼 있다. 동물의 세계로 환치한 이유는 무엇이고,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멕시코에 존재하는 공연이 아니라 상상으로 만들어낸 장면이다. 스페인의 멕시코 정복의 파괴성을 '짧은' 2분 안에 보여주고 싶었다. 그 시대에 있어서 가장 큰 재앙은 스페인의 멕시코 문명 파괴라고 생각한다. 나를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은 큰 힘을 가진 나라가 힘 없는 나라에 침범해서 그 문화 다 없애버리는 것이다. 나의 또다른 영화 '산타산그레'는 미국 문명이 멕시코 문명을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뜨리는가를 보여준다. 여기에 칠레 친구들이 와있다. 칠레에 '마푸체'라는 문명이 있었는데, 얼마나 무참히 짓밟혔는지 잘 알고 있다. 한국도 침범당한 것 알고 있다. 문명은 커다란 보물 같은 존재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개구리 집단에 의해 침략 당했다. 동물로 표현한 것은 별다른 이유가 없다. 사람 부대로 하는 것보다 캐스팅이 쉽고 돈도 들지 않아 그렇게 했다. 사람으로 했다면 거대한 피라미드가 필요했을 것이다. 만일 기자가 자본투자를 하겠다면 사람으로 다시 한 번 해보겠다.(웃음)"

"상업적 폭력과 예술적 폭력은 다르다"

그의 영화에는 피가 넘친다. 끔찍하고 엽기적인 장면이 태연하게 등장하고 인간의 성기도 여과없이 드러난다. 폭력적이고 외설적으로 보이기에 충분한데, 그렇게 보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

"폭력에는 상업적인 폭력과 예술적인 폭력이 있다. 상업적인 폭력은 사회의 문제점을 터뜨려내는 역할을 하며, 사람들은 폭력을 인지하게 된다. 예술적인 폭력은 보여지기만 할 뿐 인지하지 않는다. 엘 토포'에서 피를 부각시켰는데 한 장면에 5000ℓ를 부어 피웅덩이, 피바다를 만들었다. 과장을 표현의 방식으로 쓴 것이다. '홀리 마운틴'에서는 파란 피, 노란 피, 검은 피, 오렌지색 피가 등장한다. 또 가슴을 찔렀을 때 빨간 나비들이 나오는 장면이 있다. 그런 장면들이 예술적인 폭력의 예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11일 한국을 떠난다. 그의 방한이, 한국 감독들과의 조우가 어떤 무늬를 남길 지 궁금하다. 사진=With Cinema 제공.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기자 dunasta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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