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송 전 민한당 총재 별세

2006. 6. 2.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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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정치] 5공화국 시절 민주한국당 총재를 지낸 유치송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이 2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2세.

고인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48년 국회의장이던 해공 신익희 선생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3공화국 시절인 1964년에 민중당 원내부총무를 역임했고,1967년 통합야당 신민당이 출범한 후에는 조직국장과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경기 평택에서 6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같은 지역구에서 9∼12대 잇따라 당선된 5선 의원 출신이다.

고인은 특히 1981년 제5공화국 출범 당시 제1야당 민한당 후보로 12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12대 대통령선거는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로 치러졌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활동 금지상태였다.

1980∼1985년 민한당 총재를 맡아 여당인 민정당에 맞섰지만 민한당 창당과정에 중앙정보부가 깊숙히 개입됐다는 의혹이 일어 일각에서는 '어용 야당' 또는 '관제 야당' 총재라는 비난을 들었다. 그가 민한당 총재를 맡았을 때 신상우 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민한당은 1985년 이민우 총재의 신민당,1987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이 나오면서 제1 야당으로서의 위상이 급격히 추락됐다. 민한당은 결국 1988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총유효투표의 2% 이상을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정당 등록이 취소됐다.

고인은 대한민국 헌정회에서 회장,원로자문위원,통일고문 등을 지냈고,지난해부터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을 맡아왔다. 또 1989년부터 지금까지 신익희 선생 기념사업회장을 맡아왔으며 저서로 '신익희 선생 일대기''역사의 기로에서''민주화의 과제' 등이 있다.

고인은 지난달 부인이 사망한 뒤 병세가 더욱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으로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산하 국제정책대학원의 교수로 있는 아들 일호씨와 딸 현숙 현방씨가 있다. 발인 5일 오전 8시 천안 공원묘지. 빈소 서울대병원 장례식장(02-2072-2091)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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