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쉰아홉 '히피' 한대수는 꿈을 꾼다



[오마이뉴스 홍성식 기자]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물 좀 주소
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 놀리면서 밖에 보내네아 가겠소 난 가겠소 저 언덕 위로 넘어 가겠소여행 도중에 처녀 만나 본다면 난 살겠소 같이 살겠소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물 좀 주이소그 비만 온다면 나는 다시 일어나리아 그러나 비는 안 오네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물 좀 주소물은 사랑이여 나의 목을 간질며 놀리면서 밖에 보내네- 한대수의 노래 '물 좀 주소'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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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수 한대수 | |
| ⓒ2003 오마이뉴스 남소연 |
좀은 괴이한 이분법일 수도 있지만,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존재한다. 그 첫번째 부류. 어린애들이 부르는 다장조의 동요처럼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 그것에서 탈피하려는 발버둥을 포기한 사람은 지지부진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다른 생과 다른 세상을 꿈꿀 용기의 부족 탓이다.
이른 아침 눈곱떼며 일어나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잠자고 다시 깨어나는 지겨운 반복을 죽을 때까지 되풀이하는 사람들. 마취된 일상은 그게 고통인지도 모르는 우리를 포박한다. 누구도 아무도 여기에서 우리를 구해낼 수 없다. 앞과 뒤, 좌와 우가 모두 암흑이고 캄캄절벽이다. 꿈꾸지 않는 자에겐 희망도 없다. 이런 삶은 언제나 갈증을 부른다. 정말이지 '목마른' 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동어반복의 삶을 사는 건 아니다. 허위허위 일상을 견뎌내는 수많은 '보통 사람'과 달리 영혼이 자유로운 인간이 있다. 앞서 이야기한 두 가지 부류 중 전자와 다른 사람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가슴 속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누구에게나 단 한 번뿐인 인생. 그 인생을 자신의 자유의지로 살아가고자 하는 절치부심(切齒腐心)의 태도를 놓치지 않는 이들.
그들은 일상이 주는 안온함과 평안함으로부터 언제나 떠날 준비가 돼있다. 이상향 혹은, 이데아로 지칭되는 '언덕의 뒤편'으로 걸어가다 만난 '처녀'와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 목마름만을 강요하는 넝마의 세상을 향해 당당하고 꼿꼿한 자세로 "내게 물을 다오"라고 말할 수 있는 크나큰 용기. 그런 용기를 가진 이들의 생은 비록 험난할지라도 빛나기 마련이다.
이런 분류법을 적용하자면 작사와 작곡을 겸하는 가수(싱어송라이터)에서 광고사진 작가로, 여행 속에서 인간과 세상의 진리를 찾아가는 방랑자에서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백전노장의 록커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바꿔온 한대수(59)는 분명 후자에 속하는 사람일 터.
제주에선 유채가 꽃망울을 터뜨렸음에도 여전한 꽃샘추위가 서울을 지배하는 초봄. 한국에 정착해 또 다른 존재전이를 꿈꾸고 있는 한대수를 만났다. '청춘의 해방구'라 이야기되는 젊은이들의 거리 신촌이었다.
선택과 판단의 순간마다 '새로운 다른 세계'를 꿈꿨던 그답게 나이와 상관없는 표정은 청년의 그것이었다. 한국 나이로 회갑을 앞둔 오십아홉임에도 1970년대 할리우드 배우들이나 입었을 법한 타이트한 검은 가죽바지에 최첨단의 패션감각을 자랑이라도 하듯 목에 걸친 밍크 목도리.
"야, 홍 기자, 이게 얼마만이야. 그 동안 양호하셨소(그는 '좋다'는 의사표현은 물론, '잘 지냈냐'는 것도 이런 방식으로 묻는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고 껄껄대는 그 특유의 인사법. 약속장소인 아트레온(신촌전철역과 이화여대 사이에 있는 복합영화상영관) 앞엔 그가 국제적 범죄조직의 보스로 깜짝 출연했다는 영화 <모노폴리>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나도 사진찍어본 사람 아닙니까. 여기서 몇 컷 찍고 가죠. 분위기 좋잖아요"라며 한 점의 망설임 없이 포즈를 취하는 한대수. 거침없는 그의 호기로움 덕분에 덩달아 기분이 유쾌해진 나는 이끄는 대로 뒤를 따를밖에.
아래는 빛나는 동시에 험난했던 한대수의 생을 미래, 현재 그리고 과거라는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다.
#1 미래 : 내 조국 한국이 '행복의 나라' 스위스처럼 됐으면...
2003년 뉴욕에서의 20년 삶을 마감하고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현재 열 두번째 앨범 '생존'을 준비하고 있다. '이게 내 음악인생의 마지막 증거물이 될 것'이라는 각오를 다지며. 어어부밴드의 장영규 등과 함께 작업 중인 앨범에는 '태어나고 죽는 것은 인간의 의지 바깥에 있는 문제다. 하지만, 그렇다고 삶을 헛되이 보낼 것인가'라는 진지한 물음이 담기게 될 것이라 한다.
내용의 진중성과 함께 형식적인 면에서도 칼날같은 록 사운드와 몽환적인 사이키델릭의 다채로움을 보여줄 것이라고 하니 노장의 노작(勞作)을 기다려온 음악팬들에겐 올 한해가 행복할 것 같다. 흐르는 세월 속에 머리엔 서리가 내렸지만 여전한 한대수의 젊은 열정을 볼라치면 새 앨범에서도 '행복의 나라' '물 좀 주소' '바람과 나'에 필적하는 아니, 그것들을 넘어서는 천재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대수가 음악만큼이나 좋아하는 게 사진이라는 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 몇 권의 사진집을 출간하기도 한 그 역시 "앞으론 사진작업 쪽에 좀 더 큰 방점을 찍고싶다"고 말한다. 좀 더 구체적인 걸 묻는 질문에 그는 '고비 퀸(고비사막의 여왕) 프로젝트'에 관해 설명했다. 동양적 신비로움을 지닌 여성을 고비사막으로 데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누드를 찍고싶다는 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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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틱한 한대수의 삶은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했다. | |
| ⓒ2006 * |
이 작업을 위해 이미 40여명의 모델들을 인터뷰했지만 아직은 "그래, 내가 원했던 게 바로 이런 이미지야"라고 무릎을 칠 만한 여성을 찾지 못했다. 여차하면 뉴욕으로 건너가 모델을 구해서라도 촬영할 생각이라는 말을 들은 나는 취중임에도 미야자와 리에의 <산타페>를 떠올리며 그에 필적할 누드사진집에 벌써부터 가슴이 울렁거렸다.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란 고은(73)의 진술이 옳다면 한대수는 그 천성부터가 시인이다. 20대부터 지금까지 초지일관 평화와 사랑을 노래해온 음유시인. 그런 그이기에 전쟁을 혐오하는 건 당연지사. 한대수가 만든 아래 노랫말은 다소 과격하지만 한 편의 반전 시로도 손색이 없다.
이 X같은 세상 다 썩어가네/총알은 튀고 또 피바다 되어/비린내 나는 이 끝없는 전쟁/공해와 질투 또 오해와 권투/돈 좇아가다 다 지쳐버렸네/어린애들은 다 미쳐버렸네…내 피는 끓네 터질 것만 같네/왜 달만 보면 왜 이리 눈물만 나나/이웃사랑 비웃기만 하네/서로 미워하자 여기는 사기는 천국/이 아름다운 지구는 다 쓰레기로 변해/공포에 자고 또 공포에 깨고/지옥이 따로 있나/바로 여기 있지쓰러진 사람 옆구리 차는/창자가 터진 알라의 전사/예루살렘은 아직 흐느끼고 있나/우리 집사람 새벽기도 갔네/멸망의 밤은 이제 또 다가왔네.
이처럼 생래적으로 다툼과 분란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 한대수는 아름다운 자연풍경 속에서 국민 대부분이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는 스위스를 이상향으로 꿈꾼다.
그는 한국이 스위스처럼 부유한 나라가 돼 그 속에서 음악과 사진, 영화와 미술 등 온갖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런 기대가 터무니없는 것일지라도 한대수는 절망하지 않는다. 그 넉넉한 낙관주의가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그를 추동해 나가리라.
>#2 현재 : "내가 쓴 책 <올드보이> 양호하지?"
지난해 초겨울 출판사 '생각의 나무'에서 출간된 책 <올드보이 한대수>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청년시절 그를 매혹시킨 뮤지션 지미 헨드릭스, 밥 딜런, 섹스 피스톨즈에 얽힌 추억은 물론, 뉴욕에서 만난 온갖 예술가들과의 후일담, 여기에 자신의 여성관과 세계관까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책은 그의 '예술적 자서전'이라 이름 붙여도 무방할 정도다.
게다가 직접 찍어 책 곳곳에 실은 사진들은 한대수의 재능이 단지 음악에만 멈춰있지 않는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준다. 구사하는 문장 역시 어지간한 작가들을 찜 쪄 먹을 정도로 세련됐다. 뿐이랴, 자료조사와 취재의 철두철미함은 책의 신뢰성을 한층 높이고 있다.
<올드보이 한대수> 이야기가 나오자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그가 묻는다. "어때? 그 정도면 양호한 책 아냐?" 맞다. 순간을 영원처럼 혹은, 영원을 순간처럼 살아온 예술가의 자만은 그것 자체로 하나의 멋이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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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생각의나무 |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첫사랑 명신과의 만남과 사랑, 이별까지를 담담하게 서술한 대목과 그의 여행기를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독일과 노르웨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은 물론, 드넓은 초원을 지닌 몽골과 자본주의의 유입에 몸살을 앓는 대장정의 나라 중국까지 거침없이 넘나드는 한대수의 자유로운 영혼.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정열에 넘쳐' 세계 구석구석을 훑어가는 그의 에너지는 킹콩에 버금가는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1970년대 매력적인 저음으로 전세계 청춘을 열광시킨 짐 모리슨의 무덤을 찾아 막막하게 넓은 페르라세즈 공동묘지를 헤매고, 흉흉한 소문이 떠도는 모로코 뒷골목에서도 결코 겁먹는 법이 없으며, 스트립쇼가 벌어지는 파리의 극장에서 누구보다 크게 웃을 수 있는 호기로움을 지닌 한대수. 그 호방함은 KGB 출신의 마피아가 득시글거린다는 러시아 선술집에서도 결코 주눅들지 않았다.
<올드보이 한대수>는 갇힌 틀 속에서 뻐끔거리는 금붕어처럼 사는 우리를 부러움과 시기의 감정으로 이끈다. 멀리서 들려오는 신의 목소리. '인생은 두 번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너는 네가 하고싶은 것을 하고 살아라'는 권유에 머뭇거림 없이 자신을 던진 사람.
한대수의 현재가 누구보다 빛나는 건 자신의 자유의지를 통해 떠남은 물론, 돌아옴까지 조율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언제나 낯선 곳에서 맞는 아침을 꿈꾼다"고 말하는 한대수. 그는 그 옛날 프랑스에서 아프리카로 떠난 시인 아르튀르 랭보가 그랬듯 '닿으면 영혼이 타버리는' 뜨거운 현재를 살고 있다.
#3 과거 : 그 옛날 머리에 꽃을 단 열여덟 히피처럼
한대수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신학자이자 클래식애호가였던 할아버지와 미국에서 핵물리학자로 일하다가 불현듯 실종됐던 아버지 이야기, 사람의 숨을 틀어막는 유신시대 한국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도미한 이력과 지난 시절 그의 음악이 가졌던 의미를 여기에서 재탕·삼탕 우려먹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하지만, 과거란 미래를 확신케 하는 가장 명확한 증거. 그런 까닭에 이것 하나만은 말해둬야겠다.
제국주의의 욕망이 베트남을 시커먼 포연으로 뒤덮었던 1960년대 후반. 한대수는 머리에 꽃을 꽂은 수천 명의 히피들이 "우리에게 탱크 대신 꽃을 달라"고 외치던 반전시위를 바로 눈앞에서 지켜봤다.
그 평화적인 행진을 목도한 청년 한대수는 '사랑을 꿈꾸는 천진한 평화주의자'가 됐다. 그날 획득한 정체성은 사십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도 변함이 없다. 인터뷰의 끝자락. 그가 꿈꾸듯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과 평화 그리고, 자유의 힘을 믿는다면 우리가 못할 게 뭐냐"고. 바로 그 순간, 나는 머리에 꽃을 단 열여덟 히피 한대수를 봤다. 그건 분명 환시(幻視)가 아니었다.
/홍성식 기자
덧붙이는 글경기문화재단이 발행하는 <기전문화예술> 3·4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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