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샤의 추억'..영상미로 감춘 일본문화 짝사랑

2006. 1. 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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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회색 눈빛,눈에 구멍을 뚫어 놓고 거기에다 잉크를 부어 말린 것 같은 눈.'

소설 '게이샤의 추억'의 작가 아서 골든은 엄마를 쏙 빼닮은 아이 치요(오고 스즈카)의 눈을 이렇게 묘사했다. 할리우드가 일본문화에 바치는 헌사인 동명의 영화는 치요가 일본 최고의 게이샤가 되는 과정을 화려한 영상미로 담아냈다. 무려 8500만달러(약 800억원)가 투입된 이 작품은 실로 '감성 블록버스터'라 불릴만 하다.

'아름답지 않으면 게이샤가 아니다'라는 말대로 이들의 춤 음악 미술 화법 등이 스크린에 아름답게 살아난다. 흔히 생각하는 노래하고 춤추는 기생이 아니라 예술인으로 재조명된다. 최고의 게이샤가 되기 위해 다방면에 걸쳐 수년간의 험난한 정식교육을 받는 과정,흰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넣듯 얼굴과 목 어깨까지 하얗게 칠한 뒤 눈 코 입술라인을 새로이 그려넣는 독특한 화장술 등 서구인에 비친 동양의 판타지가 그대로 녹아있다. 할리우드의 중심에 선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을 맡고 '시카고'의 롭 마셜 감독이 연출을 한 것도 이를 잘 반영하는 대목이다.

여기에 흩날리는 벚꽃부터 휘몰아치는 눈보라까지 사계절을 담은 영상,1930∼1940년대 어둡고 축축한 일본 골목길과 좁은 다다미방,게이샤를 통해 요즘 엔터테인먼트 세계의 성공과 질투를 은유한 줄거리,최고의 게이샤가 되고 싶었던 샤유리(장쯔이)와 하츠모모(궁리)의 숨막히는 경쟁,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누리고도 사랑만은 선택할 수 없었던 게이샤의 가슴아픈 운명도 있다. 배우들의 연기도 화면을 꽉 채울 정도로 빛난다. 특히 악역을 맡은 궁리는 주연인 장쯔이 못지 않는 존재감을 발한다.

이런 면에서 '게이샤의 추억'은 영화 자체만으로 볼 때 후한 점수를 줄 만하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상상력,그들이 보고 싶은 방식으로 잔뜩 포장된 영화는 정서적 거부감도 불러 일으킨다.

1930년대 일본 교토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두가지 면에서 관객의 예상을 배반한다. 첫째는 배경이 버젓이 일본인데 대사는 영어다. 자막을 극도로 싫어하는 미국인을 위한 배려다. 또 하나는 게이샤 역을 연기한 여배우들이 장쯔이,궁리,양쯔충 등 중국의 대표 여배우라는 것. 이쯤되면 할리우드가 중국배우를 내세워 게이샤를 추억한 상업성을 알 만하다.

또한 이야기 곳곳에 모순이 숨어 있다. 게이샤는 몸을 팔지 않는다며 예술가로 지칭해 놓고는 사유리의 처녀성을 매개로 한 순결 경매가 영화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게 대표적인 예.

주인공 샤유리 역은 당초 김윤진과 장만위가 거론됐지만 시나리오에 대해 강한 거부의사를 전해와 장쯔이가 낙점됐다. 중국에서는 이 영화가 반일정서를 달아오르게 할 가능성이 크고,세 배우가 중국 위안부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개봉조차 불투명하다. 일본에서도 소설 출간당시 '게이샤를 창녀로 전락시키며 일본 문화를 왜곡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한국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2월2일 개봉. 15세가.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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