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은 어디 아무나 하는 줄 알아?

2005. 12. 2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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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형준 기자] '울지 않는 뻐꾸기'에 관한 일본 전국시대 대표적인 군웅들의 이야기는 누구라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당시 일본의 시대를 뒤흔들고, 막부를 뒤흔들었던 3명의 군웅들에 관한 이야기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물었다. '울지 않는 뻐꾸기'가 있다면 당신들은 어떻게 하겠느냐고. 오다 노부나가의 대답은 "울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였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울게 만든다"였다. 반면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가장 강렬하게 와닿는 답변을 한다.

이 간단한 대답 속에 세 사람의 성격이 아주 잘 드러난다.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천주교를 비롯한 서양 문화에 깊은 관심을 드러냈던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대답을 통해 타성에 젖어 낡았거나 효용 가치가 떨어지는 제도는 가차없이 제거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현실주의적 혁명 기질을 드러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면 오다 노부나가의 신발 담당 하인이라는 미천한 신분으로 시작해 혼란스러운 전국 시대를 통일한 입지전적인 무장답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은 손에 넣고 마는 그의 일생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저 2명의 휘하에서 끊임없이 인내하다가 세키가하라 전투를 통해 단번에 천하의 패권을 잡은 무장답게, 주저없이 잡아야 할 기회가 올 때까지는 끊임없이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인생의 현명한 해답을 내놓는다.

그런 그들의 대답에 혹자는 '오다 노부나가는 국가나 기업의 창업자에게 모범이 될 만한 인물이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후계자로 적임'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만화 중에서는 '샐러리맨'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다룬 만화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의 직업이 샐러리맨인 현실에서 가장 현실적인 소재를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그렇듯 대단히 현실적인만큼 다루기 힘든 소재로 볼 수도 있지만, 저마다 처한 현실에 따라 다양한 개성을 드러내며, 작가의 역량을 드러낸 만화들도 많다.

지금 소개할 만화들은 언뜻 봐서는 말 그대로 '만화'로 보일 정도로 현실적인 개성이 떨어지는 캐릭터들이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 자리잡은 상황만큼은 현실과 크게 다를 점이 없다는 점에서 한 번 쯤 관심있게 지켜봐도 좋을 만화들이라고 생각한다. 흥미롭게도 이 만화들의 주인공은 앞서 언급한 3명의 군웅들과 제법 비슷한 면이 많은 캐릭터들이다.

<멋진 남자 김태랑> "울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 모토미야 히로시의 만화 <멋진남자 김태랑>, 전 30권
ⓒ2005 대원씨아이

물론 직접적으로 "죽여버리겠다"고 외치지는 않는다. 게다가 '김태랑'은 오다 노부나가와는 달리 여유가 느껴지는 캐릭터다. 하지만 '김태랑'은 타성에 젖어 활기가 죽은 조직을 존재 자체만으로도 뒤바꿀 수 있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한때 1만명이 넘는 부하를 거느렸던 폭주족의 두목이었고, 이제는 은퇴해 시골에서 어부로서의 삶을 살고 있던 '김태랑'은 '우연히' 바다에서 어느 노인을 구출하면서 다시 한 번 변화를 요구받게 된다. 알고 보니 중견 건설회사의 회장이었던 노인 덕분에 그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견습 사원으로서 서무과에서 연필을 깎는 하찮은 일부터 맡게 되지만, 오히려 그 일에 만족을 느끼는 그의 모습으로부터 회사는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이런 류의 만화에서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우연'이라는 설정은 김태랑의 예기치 않은 행동으로 인해 큰 파문을 일으키며, 관료 조직처럼 타성에 젖어 활기가 느껴지지 않던 회사는 '혁명의 계기'를 맞이한다. 그것은 주인공 '김태랑'의 숨길 수 없는 리더의 자질을 통해 회장을 비롯한 많은 임직원들이 모처럼 들끓는 피를 느꼈기 때문이다.

리더란 인간의 잠재된 본능과 능력을 최대한 되살릴 줄 알아야 하며, 어쩌면 '비상식'으로 보일 수 있지만 타성에 젖은 인간을 각성시킬 수 있는 '대담함'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김태랑'을 통해 알 수 있다. 워낙에 카리스마적인 성격 덕분에 얻게 되는 많은 여성들의 구애가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다행히 '김태랑'은 숨진 아내에게 변함없는 순정을 바치며, 홀로 키우고 있는 어린 아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좋은 아버지로 그려진다. 인간이 갖출 수 있는 모든 장점을 두루 갖추었다는 점이 대단히 비현실적이지만, 이 만화의 재미는 그런 비현실성으로부터 출발한다.

만화 속에서 '김태랑'은 인맥과 정으로 움직이는 일본과 한국 사회의 시스템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물론 <멋진 남자 김태랑>은 '정'의 중요성은 강조하고는 있지만, 그 '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용할 줄 알아야 하며, 솔직담백함과 끊임없는 도전의식을 통해 '정'을 이용하기보다 '정'을 얻는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리더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활력있는 인간 김태랑, 어쩌면 타성에 젖어 반복되는 일상에 질려 있는 우리에게도 경종을 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마 과장> "어떻게 해서라도 울게 만든다"

▲ 히로카네 켄시의 신작 <시마 이사>, 현재 8권까지 출간
ⓒ2005 서울문화사

오랫동안 출간된 만화다. <시마 과장(전 17권)>은 <시마 부장(전 20권)>을 거쳐 현재 <시마 이사(현재 8권까지 출간)>가 됐으며, 그의 젊은 시절을 다룬 <사원 시마(현재 4권까지 출간)>도 재조명되고 있다. 회사일에 치여 가정을 소홀히 하다가 이혼당했으며, 겉으로 봤을 때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시마'는 회사에 적응하고 조직에 적응하기 위해 대단히 민첩하게 움직인다.

그가 다니는 회사 '하츠시바 전산'은 끊임없는 파벌 싸움으로 인해 눈치 잘 보는 사람이 곧 출세를 보장받는 전형적인 회사가 된 지 오래다. 그 속에서 파벌에 속하기보다 파벌로부터 한발짝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묘해 보일 정도로 끊임없이 생존하는 '시마'의 존재는 독특해 보인다.

그는 위기에 몰릴 때마다 '탐정'인 친구를 통해 타인의 약점을 잡아 생존의 계기로 이용하는가 하면, 때때로 어처구니없이 강한 '운' 덕분에 기사회생하기도 한다. 이따금씩 지나친 보수 논리와 과장된 여성 편력 이야기, <시마 이사>의 경우 5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젊은 시마의 이미지 등이 눈쌀을 찌푸리게 하지만, 시마가 맞이하는 위기와 그 위기를 헤쳐나가는 시마의 민첩함만은 흥미진진하다.

겉으로 봤을 때,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인간에게 오히려 강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는 임진왜란의 원흉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지만, 미천한 신분에서 일국의 통치자가 된 그에게 몰리는 일본 대중들의 끊임없는 사랑에는 그런 인간미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이유로 작용한다.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나약해 보이는 평범한 인간인 '시마' 역시 그런 인간미 속에서 끊임없이 야망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직장 상사와 여성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회사로부터 받는 발령 덕분에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과 와인 수입 사업 등에 종사하는 시마의 이야기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작가의 해박한 지식 역시 만화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보스의 두 얼굴>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

▲ 닛타 타츠오의 만화 <보스의 두 얼굴>, 현재 72권까지 출간
ⓒ2005 서울문화사

이 만화 역시 질리도록 오래 출간되고 있는 만화다. 현재 72권까지 출간됐으니 '72'라는 숫자에서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오래 출간됐다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만화 <보스의 두 얼굴>은 황당할 정도로 유치한 이야기들 투성이지만, 이 만화의 재미는 그 유치함으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인 '곤도'는 란제리 회사의 디자이너로 근무 중이다. '곤도'는 눈을 반쯤 감고 있는 멍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으며, 상식을 깨는 황당하면서도 유치한 디자인의 속옷만 계속 내놓는다는 이유로 직장에서도 매일 무시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누가 알고 있을까? 알고 보니 그는 1만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관동 최고의 야쿠자 조직인 '신선파'의 보스였다.

보스의 체면에 어울리지 않게 '곤도'는 직장 상사인 여성 디자이너 '아키노'에게 순정을 바치고 있지만, '아키노'는 물론이고, 회사의 어느 누구도 그가 야쿠자 두목이라는 사실을 짐작하지 못하고 있다. <보스의 두 얼굴>의 재미는 그들이 '곤도'의 정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매일같이 구박하고 무시했던 그가 알고 보니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진 야쿠자 조직의 보스라면? 그 뒷감당은 독자 개개인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

'곤도'는 마음만 먹으면 대단히 잔혹해질 수 있는 동물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본능을 숨기느라 하루하루를 급급하게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무시하고 구박하는 직장 동료들이지만, 오히려 너무나도 평범한 그들에게서 자신의 안식처를 발견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세상에서 제일 냉혹한 곳인 직장, 그리고 직장에서 살아가는 샐러리맨들 덕분에 '곤도'는 오히려 야쿠자 조직을 지배할 수 있는 이치를 깨달아간다. 조직의 2인자인 '나마쿠라'가 매일같이 그에 대한 반란을 꾸미고 있지만, 직장 생활을 통해 몸에 밴 곤도의 '인(忍)'에 가까운 처세술과 터무니없이 강한 운 탓에 반란기도는 매번 실패하고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그랬다. 어떤 상황에서도 참고 기다린다면, 언젠가는 자신이 원하는 기회는 찾아오게 마련이다.

<보스의 두 얼굴>은 각자 독특한 개성을 자랑하는 많은 캐릭터들과 화장실 스타일의 유머, 그리고 변칙적이면서도 기발한 상황 설정이 대단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만화다. 이따금씩 '곤도'가 야쿠자나 마피아들과의 전쟁 속에서 잔혹한 내면을 드러냈을 때의 느와르적인 분위기도 무시못할 재미로 볼 수 있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따라 풍부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변함없는 상상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로맨스면 로맨스, 액션이면 액션, 스릴이면 스릴, <보스의 두 얼굴>은 겉으로 봤을 때 느껴지는 엉성함과는 달리 대단히 다양한 요소가 치밀하게 어우러져 어떤 만화 못지 않은 풍부한 장점을 지니고 있어 그 어떤 만화 못지 않은 매력이 느껴진다.

초반과는 사뭇 다른 '곤도'의 분위기 변화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배우나 개그맨의 이미지를 연상시켜 캐릭터의 이미지와 연결해 감상한다면 더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곤도'는 개그맨 김정식씨의 이미지와 통하는 면이 많다고 느껴진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시마 과장> 시리즈와 <보스의 두 얼굴>은 잦은 성적 묘사 탓에 '19세 미만 구독 불가' 등급을 받은 만화다. 미성년자는 대여점에서도 빌려주지 않는다. 보시는 분의 주의를 요한다.

그래도 그들은 멈추지 않고 전진한다

기회가 된다면 누구나 회사를 그만둘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이들이 바로 '샐러리맨'이지만,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다. 그렇듯 누구나 탈출을 꿈꾸지만, 오늘도 내일도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 그들은 변함없이 직장으로 향한다. 알고 보면 세상 사람들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직업인들이 '샐러리맨'이지만, 그들이 회사에서 느끼는 비애와 숨결을 실감나게 다룬 예술 장르는 많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허영만의 <미스터 Q>나 강주배의 <용하다 용해 무대리>가 돋보이는 샐러리맨 만화다.

가정의 생계를 위해, 혹은 순수한 본인의 꿈을 위해 어쨌든 그들은 매일같은 출근 전쟁 속에서도 전진하고 있다.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힘은 다름 아닌 그들이라는 관점에서 이 만화들을 본다면, 이 만화에서 그려지는 생생한 현실도, 터무니없이 과장된 비현실도 모두 제각기 다른 매력으로 와닿을 것이다. 현실과 꿈이 조화돼 또다른 재미를 생산할 수 있는 장르, 그것이야말로 '샐러리맨'을 그린 만화들의 매력이다.

/박형준 기자

덧붙이는 글오마이뉴스와 한겨레신문의 제 블로그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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