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사람들'은 박봉성 만화에서 비롯"

2005. 12. 5.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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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뉴스게릴라를 찾아서'란 코너를 통해 본격적으로 시민기자들을 찾아 나섭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따뜻한 이야기에서부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특별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까지 기사로 만들어 훈훈함을 전해주는 시민기자들. 그리고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해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하는 시민기자들까지. <오마이뉴스>는 '뉴스게릴라를 찾아서'를 통해 오늘의 <오마이뉴스>를 만들어낸 주역인 시민기자에 대한 궁금증을 후련하게 풀어드릴 예정입니다. 우선 꾸준한 활동으로 그동안 써왔던 기사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 낸 시민기자분을 차례로 만나봅니다. <오마이뉴스 편집자 주>

[오마이뉴스 김대홍 기자]

▲ 2003년부터 1년동안 연재된 '새벽을 여는 사람들'. 그 기사는 매번 1만 이상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2005 심은식

"제 책이 솔직히 얼마나 나갔는지 모릅니다. 출판하면서 인세 전액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기로 했거든요. 새벽에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을 취재했는데, 그 분들 팔아서 돈을 벌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될 것 같았어요."

아니, 자신의 이름으로 나온 첫 책 이익금을 모두 기부하다니. 게다가 기부하고 난 뒤엔 아무렇지도 않게 관심을 끊은 초연함까지. 지난해 1월 발행한 책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감동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2003년부터 김진석 김은성 노유미 기자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세 사람은 2003년 3월 8일 동대문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김명선씨부터 2004년 3월 3일 도예가 임항택씨까지, 모두 잠든 새벽거리를 누볐다.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끄집어냈다.

그들의 기사는 매번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독자들은 그들의 기사를 통해 연탄배달원, 찹쌀떡 장수, 열차 홍익회 사원, 천문대장, 노량진 수산시장 경매원이 어떻게 일하는지 알게 됐다. 게다가 환경미화원 김달호씨는 기사 덕분에 자연사랑회장상까지 받았다.

박봉성 만화 보고 새벽길 누벼

지난 30일 김진석(33) 기자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김진석 기자는 사진, 김은성 노유미 기자는 글을 맡았다. 글을 썼던 기자들은 개인 사정 때문에 함께 하지 못했다).

가장 궁금했던 이유는 58회를 끝으로 연재가 갑자기 중단된 이유였다. 반응이 좋았고, 소재가 떨어졌다고 여겨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김진석 기자는 "직장을 구하면서 그만두게 됐다"면서 "당시 그만둘 때 모두 아쉬워했다"고 털어놓았다.

▲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란 시리즈 제목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의외로 싱겁고 재미있었다. 김진석 기자가 박봉성의 작품 '새벽을 여는 사람들'에 매료됐기 때문
ⓒ2005 김대홍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란 시리즈 제목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의외로 싱겁고 재미있었다. 김진석 기자가 박봉성의 만화 <새벽을 여는 사람들>에 매료됐기 때문.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새벽길에서 우연히 동대문 지게꾼을 보게 되면서부터.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진 않았지만 무척 밝게 일하는 지게꾼의 모습에서 새벽 사람들의 모습을 취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그러나 3D 업종 종사자나 새벽일을 하는 사람들 이야기는 여러 매체에서 여러 번 다뤘던 소재였다. 그래서 '새벽을 여는 사람들' 팀은 차별성을 두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따라다니자고 결정했다. 1년 동안 이어진 그 기나긴 글은 그렇게 시작됐다.

"저는 솔직히 새벽에 일하시는 분들이 정말 열심히 일할지 궁금했어요. 잠깐동안 몰아서 일하겠지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낮에 일하시는 분들과 똑같이 일하시는 거예요. 단지 낮과 밤이 달라진 것밖엔 없더라구요."

빠짐없이 담는다...단, 연출은 없다!

그들은 기사를 쓰기 위해 무작정 새벽 거리를 누볐다. 그리고 마음에 정한 대상에게 찾아가 취재를 부탁했다. 상당수 사람들은 "왜 나같은 사람을 취재하려고 하냐"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단다. 또한 사람들이 낮게 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부담을 느꼈다.

▲ 김진석 기자는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니면서 매번 1,500-2,000컷의 사진을 찍었다. 그중 고르고 골라 10개가 채 안되는 사진을 올린다.
ⓒ2005 심은식

김진석 기자는 "하고 싶은 말 다 하시라. 다 실어드리겠다"는 말로 설득했다고 한다. 그리고 절대 연출하지 않겠다는 내부 방침을 정했다. 그 때문에 우유배달을 하던 김봉금씨를 취재할 때는 아찔한 경험을 해야 했다.

새벽거리에서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김씨를 취재하기 위해 취재기자들은 모두 카메라와 수첩을 들고 뛰어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유배달을 하던 곳은 봉천동 고갯길. 5-6시간 동안 오르막을 뛰어다닌 뒤 김진석씨는 이틀 동안 뻗어버렸다.

"우리가 특별히 연출을 하거나 요구하지 않았거든요. 아, 그런데 어머니께서 너무나 묵묵히 일만 하시는 거예요. 저희들은 죽을 맛이었죠.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네요.(웃음)"

김진석 기자는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니면서 매번 1500-2000컷의 사진을 찍었다. 그 중 고르고 골라 10개가 채 안되는 사진을 올린다. 그렇게 땀과 땀을 짜내서 만들어진 글과 사진 때문이었을까. 기사가 나간 뒤 불만을 표시한 취재원은 한 사람도 없었단다. 그런데 김진석 기자는 "취재한 2명을 기사로 내보내지 못했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 사람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었다. 너무나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지만 결국 내보내지 못한 것은 '조폭'을 능가하는 인상 때문이었다. 김진석 기자는 "인터넷 여론이 워낙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칫 당사자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기자들의 합의하에 기사화를 포기했지만 지금도 그때 판단을 되씹게 된다고 고백했다.

또 한 사람은 도로보수정비원이었다. 모든 취재가 끝난 상태에서 취재원은 "자식들이 보면 피해를 입는다"면서 기사화를 거부하고 나섰다. 김 기자가 무척 가슴 쓰라렸던 순간이다.

하지만 1년 동안 새벽 사람들을 만나면서 취재진은 책에서 얻을 수 없는 값진 경험들을 얻었다. 김진석 기자는 "'새벽을 여는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은 한 두 명의 잘난 사람이 아니라 우리 같은 민초들이라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땀 냄새가 안 나는 사진은 사진이 아니다

▲ 김진석 김은성 노유미 기자의 저서 '새벽을 여는 사람들'
ⓒ2005 뿌리와이파리

화제를 사진 이야기로 바꾸었다. 2002년 10월 16일부터 기사를 올리기 시작한 김진석 기자의 사진은 생동감 넘치는 화면이 강점이었다. 그래서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2004년 총선 등 굵직굵직한 이벤트가 생겼을 때는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의 일원으로 현장을 누볐다.

그런데 그가 전문사진기자로 변신하게 된 과정이 이채롭다. 그는 원래 스포츠신문과 생활정보지 광고국 직원이었다. 그러나 그는 현장사진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 사진과에 입학했다. 그때 이후 그가 줄곧 간직하고 있는 사진 철학은 한 가지다.

"땀 냄새가 안 나는 사진은 사진이 아니다."

오마이뉴스 '아마스포츠' 기사 강화해야

김진석 기자는 인터넷 스포츠 전문매체인 <스포츠피플> 출신이다. 당시 쓴 기사를 올리면서 오마이뉴스와 인연을 맺게 됐다.

그래서 스포츠 스타 인터뷰는 그가 가장 즐겨 하고 잘 하는 분야 중 하나다. 그런데 김 기자가 다룬 스포츠 스타들은 스포츠신문에서 쉽게 보기 힘든 스타들이다. 대부분 과거 온 국민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추억의 스타들이기 때문이다.

아마야구 한일전 역전 3점홈런의 주인공 한대화를 비롯, '고무다리' 이해창, 프로축구단 '일화' 전성기 시절 주역 신태용, '돌주먹' 문성길, '강스파이크' 강만수, '왼발의 달인' 하석주 등 100여 명이 그에게 인터뷰를 당했다.

그중 김 기자가 첫손에 꼽는 인물은 전 복싱 세계챔피언 김태식 선수. 누군가를 인터뷰하던 도중 우연히 그가 고깃집을 운영한다는 정보를 알게 됐다. 그 뒤 세 번을 찾아가 결국 인터뷰 허락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박찬희 선수의 소식을 접하게 됐다. 과거 세계챔피언인 김태식-박찬희 전은 복싱 팬들이라면 누구나 고대했던 빅 이벤트. 두 사람의 맞대결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지만 그들의 동반인터뷰는 그렇게 이뤄졌다.

김 기자는 추억의 스포츠 스타를 발굴한 이유를 간단히 설명했다. 그들이야말로 어려운 시기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이 아니었냐고. 지난 시절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과 희망을 주었던 스타들이 쉽게 잊혀지는 세태를 그는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 김진석 기자는 헤어질 때 두 아이의 아버지란 사실을 꼭 넣어달라고 강조했다.
ⓒ2005 심은식

그는 요즘 오마이뉴스 스포츠면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 너무 프로스포츠 위주로 나가기 때문이란다. 과거 엘리트 스포츠를 이끌었던 스타들이 한순간 잊혀지는 것을 보면서 생활스포츠가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체감하고 있는 그다.

게다가 프로스포츠는 이미 스포츠신문과 일반 신문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 생활스포츠야말로 오마이뉴스의 성격을 차별화시킨다고 김진석 기자는 생각한다.

"아마스포츠 활성화 없이 엘리트스포츠 활성화는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오마이뉴스 스포츠면이 너무 메이저리그나 프리미어리그 경기 중계하는 식으로 가는 것 같아요. 사실 그런 뉴스는 다른 매체에서도 볼 수 있거든요. 생활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좀더 쏟았으면 좋겠어요."

김진석 기자는 누구?

1974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신문사 광고국을 거쳐 월간 말지 객원기자와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로 활동 중이다. 김은성 노유미 기자와 함께 2003년 '올해의 뉴스게릴라'로 선정됐으며 현재 '여의도통신' 기자로 근무 중이다.

그는 내년에 사진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다. 현재 직장 일에 좀더 충실하고 문화운동단체인 '풀로 엮은 집'에서 하는 사진 강의를 계속할 생각이다.

그리고 헤어지는 기자에게 저 멀리서 꼭 실어달라며 그가 크게 외친 말이 있다. 자기가 두 애 아빠라는 것. 아이들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부인에게 혼난단다. 그는 따뜻한 심장으로 세상을 찍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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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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