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열전] 13 김성모




[일간스포츠 장상용 기자]
배고픈 장남 30세 되기전 정상 서겠다
무서운 집념 마침내 이뤄
▒승부욕의 사나이
1990년 이후 가장 빠르게 성공한 만화가가 있다면 그것은 김성모일 것이다. 그리고 그를 압축하는 한 단어가 있다면 '승부욕'이다. 그는 '사나이' '우정' '형제애' 같은 단어를 좋아하고 만화에선 선이 굵고 비장미가 넘쳐흐르는 사나이의 세계를 추구한다. 안양에 자리한 그의 화실 입구에 크게 매달린 '세계정복'이라는 간판을 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그는 불타는 승부욕으로 가장 밑바닥부터 정상까지 치고 올라왔다. 그것은 1992~93년 그의 원고를 봤던 만화 관계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더구나 1993년 데뷔 직후 30세가 되기 전에 만화빌딩을 세우고 고급차를 사겠다고 공언을 한 이 애송이 작가는 주변 사람들에게 정상으로 보였을 리 없었지만 그 말을 실현하고야 말았다. 잡지연재 신문연재 코믹스 대본소만화 성인극화 등 만화의 전 분야를 석권하겠다는 야심찬 공언도 했다.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현해 나가는 집념이 누구보다도 무섭다.
철저하게 상업적인 작품만 하고 프로덕션 체제로 막대한 물량을 찍어내며 성공한 그에게 만화계는 손가락질을 했지만, 그는 자신의 철학을 고수했고 1990년대 중반 <럭키 짱> 등으로 최고 수익을 올리는 작가로 발돋움했다. 2000년 이후에는 성인만화 <용주골>과 <대털>로 입지를 새롭게 굳혔다.
우선 그는 어떤 사람인가. 만화가가 되기 직전, 폐인처럼 생활하던 1992년 겨울의 일이다. 3남매의 장남인 김성모는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집안에서 아래로 남동생, 여동생을 하나씩 두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불우이웃돕기를 하면 반에서 걷은 돈이 3남매에게 돌아왔다.
1992년 2월 제대한 김성모는 이현세의 B팀(프로덕션에서 2진 개념으로 운영되는 팀)에서 약 6개월 동안 생활했다. 그의 우상은 이현세였다. 지금도 이현세를 향한 그의 존경심은 대단하다. 천호동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러 다녔지만 버텨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더구나 장남으로서 식구들에게 폐를 끼친다는 생각 때문에 방에서 혼자 습작만 하는 가학적인 생활에 돌입했다. 사회적으로 무능한 장남의 심정은 겪어 본 사람이 아니면 모를 것이다.
김성모는 몇 달 동안 머리도 안 깎고 씻지도 않았다. 긴 머리가 꼬챙이처럼 뻣뻣해져 뒷목을 찌르고 그 자리가 곪아서 고름이 줄줄 흘러내렸으니, 집만 있을 뿐 노숙자나 마찬가지 꼴이 됐다. 여기저기 뜯어진 더러운 추리닝을 입고 가끔 만화가게에 가면 주인들이 출입금지를 선언해 그토록 보고 싶던 만화도 제대로 볼 수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모에겐 절대로 손을 벌리지 않았다. 세상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두고 보자는 식의 승부욕은 그때부터 발동했다.
자신과 조직 항상 동일시
백여명 식구 함께 잘살자 승부욕 자극
▒조직에 승부욕을 불어넣어라
김성모가 가장 큰 재산으로 여기는 것은 오랫동안 다져 온 조직이다. 사나이라는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그이기에 100명이 넘는 김성모 프로덕션의 조직력은 어느 조직보다 끈끈하고 탄탄하다. 사나이와 인간이라는 끈으로 강하게 묶어 놓은 그의 조직 안에서 '한번 해보자'는 구호에 하나가 될 수 있다.
'야맹장'이란 필명으로 만화계에 데뷔한 동생 김충모와의 관계는 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김성모는 다섯 살 아래인 동생에게 입은 은혜를 잊지 않는다.
1992년 겨울 어느 날 재봉 회사에 취직한 동생 김충모는 형이 돈을 벌 때까지 매일 1000원씩 주기로 결심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형이 너무나 불쌍해 보였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담배 한 갑(600원), 자판기 커피 두 잔(400원) 값을 쳐서 매일 아침 출근 때 형의 머리맡에 놓고 나갔다. 그러기를 한 달쯤, 어느 날 아침 김성모는 머리맡에 1000원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동생이 깜빡 잊고 갔겠거니 하면서도 1000원이 못내 아쉬웠고 오후가 되니 담배를 피우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집(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에서 가까운 은행 옆 건물을 떠올렸다. 버려진 장초가 수북이 쌓여 있는 그곳에 가서 비닐 봉지에 꽁초를 담아 집으로 뛰어들어 왔다. 그런데 필터 부분을 가위로 자르고 담배를 입에 무는 순간 왈칵 울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이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는가라는 설움이리라. 엉엉 울기를 두 시간. 그날 동생은 집으로 돌아와 깜빡 잊고 갔다며 사과를 했다. 동생의 1000원은 김성모가 1993년 만화잡지 <보물섬>에서 단편 <약속>으로 데뷔하기 전까지 6개월 동안 계속됐고, 김성모는 그 후 <마계대전> <럭키짱> 등을 발표하며 무명의 설움을 벗었다.
이번엔 반대로 동생이 무너졌다. 가난한 집안의 전형적인 반항아가 된 김충모는 직장도 때려치고 여자, 도박 등 대형 사고를 일으키며 경찰서를 들락날락했다. 그럴 때마다 형은 동생의 뒤처리를 도맡으며 마음을 잡지 못한 동생을 설득해 2002년 '야맹장'이란 필명으로 데뷔시켰다. <청송 감호소> <접시꽃 도박사> 등의 타이틀을 낸 야맹장은 형의 든든한 지원 속에 인기 성인만화가로 성장했다. 동생이 그렇게 사고를 치고 다닐 때도 "6개월간 머리맡에 놓고 간 1000원을 생각하며 단 한순간도 동생을 원망해 본 적이 없었다"는 말처럼 김성모는 사나이의 세계를 끝까지 지켜 나갔다.
그는 자신과 조직을 동일시한다. 주변 사람을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이용하고 버리는 도구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지금까지 나를 버티게 해준 조직의 사람들과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꿈"이라고 설명한다. 그 꿈을 화실의 식구들과 항상 나누려고 노력한다.
조직 안에 자신의 승부욕을 불어넣는 능력이 탁월하다. 승부욕과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 몇 가지. 그의 화실 건너편엔 안양공설운동장이 자리잡고 있다. 한때 그는 이틀에 한 번씩 10km를 뛰면서 체력을 키웠고 운동선수에게도 뒤지지 않는 체력이라는 자부심을 가졌다. 그걸 입증하기 위해 화실에 공고를 냈다. 즉 달리기 시합을 해서 자신을 이기는 사람에게는 누구를 막론하고 30만원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김성모는 1km를 1분 50초에 주파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체력장 만점이 3분대이니 그 기록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는 고등학교 체력장을 거친 사람이라면 누구든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내기를 하기 전 그는 한 가지 실수를 범했다. 머릿속에서 전 화실 식구의 얼굴을 하나씩 그려 봤는데 두려운 상대가 없었다. 그런데 매일같이 남산 꼭대기를 오르는 화실 막내를 빼먹었다. 경기 당일 10??달리기 경기에 10명의 지원자가 나섰다.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화실 막내가 총알같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당황한 김성모는 그를 따라잡기 위해 오버 페이스를 하다가 옆구리 통증을 느꼈다. 완전히 경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마음을 비우고 뛰었으면 30만원만 잃고 마는 건데 꼴등이 되는 바람에 300만원을 잃었다. 300만원을 날렸지만 화실 식구들에게 보스의 승부욕이 전달되었음은 두말할 필요 없다.
3일 동안 화실을 광기로 몰아넣은 야구 이야기도 코미디에 가깝다. 한 신문에 야구만화 <스터프 166km>를 연재하던 2000년 무렵의 일인데 화실이 야구에 대한 열기로 꽉 차 있었다. 김성모는 동생 김충모와 대칭으로 팀을 구성하고 직접 자기 팀 투수를 맡았다. 처음엔 30만원짜리 시합을 했고 김성모 팀이 졌다. 승부욕이 동한 그는 그 다음날 50만원짜리 시합을 다시 잡고 자기 팀 선수들에게 고기를 실컷 먹였지만 결과는 또다시 패배. 이길 때까지 한다며 그 다음날 또 시합을 걸었다. 이번엔 액수가 100만원. 둘 중의 하나는 망하는 게임이었다. 김성모의 팀이 한 점 앞선 9회 말 2사 만루. 투수는 김성모였고 타자는 동생 김충모였다. 형의 승부욕을 아는 동생이었지만 운동 경기에서 봐주는 게 어디 있나. 극적으로 적시타가 터지면서 김성모 팀은 역전패를 당했다. 경기 후 너무 화가 난 김성모는 평소 너무도 사랑하는 동생을 방으로 끌고 가 먼지 나도록 때렸다. 주변에서 이를 지켜본 화실 목격자들은 절대 장난이 아니었다고 증언한다. 동생 김충모가 눈물을 줄줄 흘렸다고 하니. 그래도 화실 식구들은 이 사건을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한다.
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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