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특이모(특이한이름가진사람)

[오마이뉴스 박봄이 기자] 초등학교 4학년 때, 한 녀석이 전학을 왔다. 녀석은 내 옆자리에 앉게 되었고 난 잘 지내고자 하는 마음에 인사를 했다.
"안녕, 난 박봄이야."녀석은 갑자기 눈이 반짝거리더니 굉장히 반가운 듯 말한다.
"와, 봄이? 봄봄봄봄 봄이 왔어요~ 이거네?"순간 주변에 싸~한 분위기가 퍼진다. 그렇다. 내가 이름을 말했을 때 "봄봄봄봄 봄이 왔어요" 혹은 "봄 처녀 제 오시네~" 등의 노래를 부른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바로 찍히는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었던 반 친구들은 "불쌍한 녀석, 전학 오자마자 원수 하나 만들었구나"라는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 요즘 TV 드라마의 대세는 "순"인가? MBC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이>의 주인공 금순이(좌). <내 이름은 김삼순>의 주인공 삼순이. 자료 사진을 기자가 재작업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호들갑떤다고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나에게 이름은 어지간한 스트레스였다. 학기 초만 되면 선생님들이 아이들 이름을 한 번씩 부르는데 내 이름을 보고는 단 한 분도 빠짐없이 노래를 불러 주셨다. 더군다나 대표로 문제를 풀어야 할 때 손을 드는 아이들이 없으면 "봄봄봄봄, 봄이 와서 한번 풀어 보련~"하셨다.
이름이 예쁘다고? 그렇다. 이름만 보면 참 예쁘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는 발생한다. 이름만 예쁘면 뭐하냐고. 이름과 얼굴을 비교하며 "어머, 이름은 참 예쁘네"하는 눈길인 것을."보훈이 싫어... 혜미, 혜선, 혜진, 혜수가 좋아"그런데 중대한 사실을 하나 말하자면 내 이름은 한 차례 개명을 한 이름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가족을 제외하고서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기밀에 속하는 이야기이고 내 머리 속에서도 가물거리는 기억이다.
내 이름은 "보훈"이었다. 이름하야 "박보훈". 웃지 마시라. 제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큭큭큭"하며 웃지 말길 바란다. 나의 첫 이름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내 심정도 쓰리다.
무남독녀 외동딸이 될 줄 아셨는지 첫 딸이 태어나자마자 할머니는 내게 보훈이라는 참 건전하고 든든한 이름을 지어 주셨다. 널리 가르친다는 의미의 보훈(가르치길 뭘 가르치나요, 할머니!).비록 요즘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삼순이"처럼 촌스럽다고 놀림 받을 이름은 아니었지만 난 여자다. 여자아이에게 보훈이라니. 호국보훈의 달 6월이면 쓰라리게 아픈 기억들이 새록새록 기억난다. 난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보훈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다녔고 코찔찔이 어린아이들 사이에서도 "여자애가 보훈이가 뭐야?" "6월은 보훈이 달 우리들 세상~" 하는 이야기를 정말 수도 없이 들었다.
듣다 듣다 지친 나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와 이름을 바꿔주지 않으면 학교를 가지 않겠노라고 전면파업을 선언했다. 할머니는 얼마나 좋은 이름인데 그러느냐며 안된다고 하셨고 급기야 난 할머니의 약점인 할머니 이름까지 물고 늘어졌다.
"할머니는 둘째라서 두리라며, 두리가 좋아? 두리가 좋아? 난 보훈이 싫어. 바꿔 줘. 으아앙..."보다 보다 못한 아버지, 나에게 원하는 이름이 뭐냐고 물으셨다. 어린 나이에도 얼마나 한이 맺혔는지 혜미, 혜선, 혜진, 혜수 등 여성스러움이 철철 넘치는 "혜"자 돌림 이름만 불러대더란다. 하지만 30대 초반이셨던 젊은 우리 아버지, 당시 주가가 폭등하고 있던 한글 이름으로 눈길을 돌리셨다.
"박봉이" "박범이" "박보미"... 내 이름은 진화한다 ▲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는 이름들, 정말 많다. ⓒ2005 박봄이 보람이, 샛별이, 미류, 보담이, 아름이, 봄이, 봄시내, 봄내 등등 여러 가지 이름을 놓고 아버지는 할머니와 어머니와 의논했다. 그리고 전원 몰표로 "봄이"가 탄생했다. 미류가 좋다고 우겼지만 내 의견은 가뿐하게 무시됐다(지금 생각하면 "박미류", 좀 어감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그리하여 결정된 봄이. 봄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이미지처럼 그리 자라라는 의미였다. 아버지는 신속하게 개명 신청을 하셨고 의외로 쉽게 통과가 되어 순식간에 난 봄이로 삶을 살게 됐다. 그리고 박보훈은 8세를 끝으로 이 사회에서 마지막을 고했다(나이가 어리면 그나마 이름을 바꾸기 쉽다고 해도 정말 의외로 빨리 이름을 바꿀 수 있었다. 아마 아버지께서 "6월은 보훈이달 우리들 세상" 같은 "보훈이의 슬픈 전설"을 개명 이유에 적지 않았을까 싶다).그러나 이 고민하고 고민하여 지은 이름조차도 평범치는 않았다는 데 비극이 있다. 이후에도 어디 가서 이름을 말하거나 통성명을 할 때 사람들은 꼭 두세 번 말을 해야 알아들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박봄이요.""박보미요?""아니요, 박・봄・이요.""아~ 박봉이씨.""아니요, 아니요. 박! 봄! 이! 요.""네, 박범이씨.""봄여름가을겨울에서 봄이요, 봄!""아하~ 봄이씨. 이름 참 예쁘다."마지막에는 이름 예쁘다는 소리를 들으면 뭘 하냐고~ 난 이미 이름을 알리느라 진이 다 빠져 버린 걸.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서류들에 적혀 있는 내 이름 "박봉이"나 "박범이"나 "박보미"를 보고 얼마나 좌절했던가.그래서 이름이 특이한 사람들을 보면 남 같지가 않다.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있는 "삼순". 그 "삼순이의 슬픈 전설"을 봤을 때 얼마나 공감 충전이 되던지. 개명 신청을 하러 간 삼순이가 서류에 써내려 갔다는, 이른바 "삼순이의 슬픈 전설을 아시나요?"라는 제목의 슬픈 이야기. 엠티에 갔다가 친구들에게 이름 때문에 놀림 받고 울며 돌아오던 삼순이. 택시 안에서 엉엉 우는 삼순이를 보고 택시기사 아저씨가 "이름이 어때서 그렇게 우냐"며 "이름이 삼・순・이만 아니면 되지"라고 일격을 날린다. 그 말에 상처받은 삼순이는 자살을 한다는 게 슬픈 전설의 요지다.
혹 이름 예쁘다는 소리 듣는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하느냐 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고개를 끄덕인 건 봄이로서의 특이한 이름에 대한 공감과 개명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보훈이로서의 안도감이다.
*두환, *영삼, 유명인들은 제발 이름값 하세요언제나 행동 잘해야 하는 압박감에 사는 "황제".아버지한테조차 존칭을 듣는 "이형".들을수록 오묘한 "육봉근".인생이 싸구려인가 한숨 쉬는 "이백원".거꾸로 읽으면 민망한 "노우포".나이 들면 어쩌나 "이아기".그리고 우리 나라의 대표주자 삼순, 미자, 숙자, 봉구, 삼식, 춘식…(이 이름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분들을 희화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 점 오해 없었으면 한다).자기 이름을 편하게 말하지 못하고 입 속으로 우물거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무난한 이름을 갖고 있는 이들은 결코 공감하지 못할 그들만의 이야기. 이름에 대한 고민은 그들만의 말 못할 스트레스일 것이다.
하지만 이름은 이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불려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자. 나쁜 일로 자신의 이름을 오르내리게 하면 그 이름은 못난 이름이 되는 것이고 좋은 일, 행복한 순간에 오르내리는 이름은 그 이름만으로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따라서 "*두환", "*영삼" 같은 사람들은 그 이름을 가진 다른 이들에게 진짜로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세련된 세상을 눈치 보며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삼순양, 삼식군들이여... 그래도 사랑스럽게 이름을 불러주는 가족이 있고 연인이 있기에 그 이름이 빛나는 게 아닐까?/박봄이 기자- ⓒ 2005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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