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 파리 외곽 양계장서 죽였다"

2005. 4. 11.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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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 ▲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을 암살한 특수공작원의 인터뷰를 실은 <시사저널> 808호 표지. ⓒ2005 시사저널 [기사보강 : 11일 낮 12시]26년 동안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의 실마리가 풀렸다.

11일 발행된 <시사저널>은 파리에서 김 전 부장을 납치해 시외곽의 양계장에서 그를 암살했다는 이아무개씨의 증언을 단독으로 보도했다. 이로써 김 전 부장의 실종사건을 두고 "누가 어디서 어떻게 죽였으며 그의 유해는 어디로 갔는가" 하는 의문은 풀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씨가 중간 지휘라인에 대해서는 입을 닫아 김 전 부장의 암살을 지휘한 "배후"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게 됐다.

암살범 이씨 "양계장 분쇄기에 김형욱을 집어 넣어 닭모이로 처리했다"시사저널에 따르면 중정에서 양성한 특수비선공작원이었던 이씨는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을 1979년 10월 7일 밤 파리 시내의 한 카지노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납치했다"며 "김형욱이 한국 여배우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각에 레스토랑 입구를 지키고 있다가 그 여배우가 보낸 안내자 행세를 하며 납치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캐딜락 승용차 안에서 김형욱을 마취시킨 다음 밤 11시께 파리시 서북방향으로 4km 떨어진 외딴 양계장으로 가서 분쇄기에 그를 집어넣어 닭모이로 처리했다"고 암살과정을 매우 구체적으로 털어놓았다.

이씨는 파리시 외곽의 양계장을 암살장소로 택한 이유에 대해 "암살이야 어떤 방법으로든 할 수 있지만 흔적을 남기면 우리 정부가 곤란해지는 일이었다"며 "프랑스 경찰과 정보당국의 추적을 피할 수 있는 완전무결한 방법을 찾다가 양계장 분쇄기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가 연구한 방법 중에 양계장 분쇄기 처리가 가장 안전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씨는 "우리는 교수대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집행인의 심정으로 그를 분쇄기에 처리했다"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그는 사라져 줘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에 다른 감상이 있을 수 없었다"고 "신념에 따른 암살"이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이씨는 "정보 총책임자인 김형욱이 함부로 떠드는 것을 막아야 했다"며 "국가의 정보 총책임자가 함부로 정보를 누출하고 그 정보를 돈을 주고 팔겠다고 하는 것은 제 정신이 아니지 않는가"고 말했다.

또한 이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 지시여부에 대해 "박 대통령이 "그놈 못쓰겠더라"고 하면 밑의 사람은 당연히 "각하 안심하십시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습니다" 하는 것이 원칙 아니겠는가"라며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가 지시하고 의논하고 보도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이씨는 "(박 대통령이) 그냥 "나쁜 놈이로구나"라고 한 말씀은 하셨다"며 "그 밑에서 꾸미는 일은 우리 스스로 했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이 김 전 부장의 제거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는 것.이씨는 김 전 부장의 암살을 위해 파리로 가기 전인 79년 초 청와대 별관에서 박 대통령을 만났다고 증언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나쁜 놈이로구나, 내가 믿었던 김형욱 이놈이 나쁜 놈이로구나"라고 통탄하면서 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고 한다.

암살 지휘라인, "김재규"인가 "차지철" 인가?현재까지 김형욱 전 부장의 암살 배후로는 당시 김재규 중정 부장과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 차장이 지목돼 왔다. 실제 유신체제에서 김 전 부장을 암살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기관은 중정과 청와대 경호실밖에 없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최근 <월간조선> 3월호에서 옛 중정출신 간부들의 증언을 통해 "김재규 지시설"을 제기했지만 <시사저널>은 "차지철 지시설"에 더 무게중심을 두었다.

먼저 김 전 부장을 암살했다는 이씨는 김재규 부장의 지시여부를 단호하게 부인하면서 "나를 담당하던 중정 윗선에서도 내가 파리에 침투하는 것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시사저널>은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부장이 아닌 윤일균 중정 차장을 통해 김형욱 전 부장의 회고록 발간 저지 공작을 편 점 ▲김재규 부장이 실종 직후 이상열 파리주재 공사 긴급 소환한 점 ▲김재규 부장이 중정에 대한 장악력을 상실한 점 등을 들어 "차지철 경호실장 지시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당시 중정 해외정보국장이었던 김관봉씨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것(이씨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파리 현지 중정라인은 누군가에게 철저히 유린당했다고 봐야 한다"며 "당시 현지 정보부 조직이 움직였다면 그런 만한 의지와 힘이 있는 사람은 차지철 경호실장이었다"고 주장했다.

즉 사실상 "권력의 2인자"였던 차지철 경호실장이 "김재규-윤일균-김관봉-이종찬으로 이어지는 정보부 지휘계통"을 유린하고 김 전 부장의 암살을 지시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또한 이씨는 "한국 여배우 최지희씨가 현장에 있었다"며 "김형욱이 미국에서 단신으로 파리로 온 것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김형욱 회고록"을 집필했던 김경재 전 민주당 의원도 "김형욱씨가 그 여배우를 만나러 간 게 맞다"며 "내가 지금껏 여가수라고 둘러댄 것도 그분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지희씨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김형욱씨를 만나러 파리로 간 여배우는 내가 아니라 다른 여배우였다"고 부인했다. 최씨는 "그 친구가 나에게 김형욱씨 문제로 고민하는 편지를 보내곤 했다"며 "그로 인해 그 배우와 남편 관계가 복잡해지니까 내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스라엘과 벨기에 거쳐 파리 도착해 이틀 동안 납치 및 암살 감행한편 이씨는 김 전 부장 암살 당시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파견되어 특수 암살 훈련을 받고 있던 곽아무개씨와 한조가 되어 그를 암살했다고 증언했다.

곽씨는 78년 11월 일본을 경유해 이스라엘에 도착해 텔아비브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 모사드에서 특수훈련을 받았다. 또 79년 초 출국한 이씨는 곽씨와 함께 79년 9월 이스라엘 북구 하이파 항구에서 화물선을 타고 10월 4일 벨기에 안트베르펜 항구도시에 도착한 뒤 자동차를 타고 10월 5일 파리에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 이씨는 자신과 곽씨가 이틀 동안 파리에 머물러 암살현장을 답사한 뒤 김 전 부장을 납치하고 암살했다고 주장했다./구영식 기자- ⓒ 2005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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