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선교여행(30)] 뉴질랜드・호주..부흥의 '뉴 스타트' 불씨 당겨

2004. 12. 24.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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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석 목사를 단장으로 한 안디옥성결교회 세계일주 선교여행팀은 지난달 22일부터 지난 5일까지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사역하면서 과거 흥왕했던 뉴질랜드 및 호주 교회가 극한 침체기에 접어든 것을 목격하고 자유주의 신학의 오류를 씻어내기 위해서는 복음의 본질 회복 운동이 시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뉴질랜드=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출발,15시간에 걸친 비행 끝에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했다.

이승현 목사가 공항으로 마중 나왔다.

참으로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1980년대초 신 목사가 예성교단 청년부장을 맡고 있을 때 그는 ‘성청’(성결교회 청년전국연합회) 임원으로 활동했다.

그때 받은 인상은 매우 똘똘한 청년이라는 것. 중년의 목회자가 돼서 다시 만나니 세월의 빠름을 느꼈다.

이 목사는 크리스천선교동맹(C&MA) 교단과 협력사역을 하면서 오클랜드 한인성결교회를 개척,현재 성도 100여명으로 성장시켰다.

C&MA 교회 앞에 있는 건물을 빌려 1층은 교육관,2층은 사택으로 사용하고 있다.

늦은 저녁식사 후 임원혁 선교사의 사역에 대한 오리엔테이션도 있었다.

9년째 사역중인 임 선교사는 밸리로드국제교회에서 다민족을 위한 사역을 하고 있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개인 전도도 하고 있다.

그는 영국 여왕으로부터 사법권을 부여받은 평화의 재판관에 임명됐다고 한다.

또 신학대학 두 곳에서 강의하며 이사로 활동중이다.

뉴질랜드에 최초로 들어온 기독교 선교사는 새뮤얼 매스덴이다.

그는 호주에서 활동하다가 1814년에 뉴질랜드에 도착했다.

그는 그해 성탄절에 최초의 설교를 했다.

하지만 그는 뉴질랜드 정착 선교사가 아니었다.

일곱차례 방문,복음을 전하던 그는 1883년 마지막 방문시 뉴질랜드에서 소천했다.

1823년에 헨리 윌리엄스 선교사가 마오리족 언어와 문화를 습득하고 활자를 만들어 마오리어로 성경을 번역했다.

마침내 마오리인들은 1837년에 최초로 성경을 갖게 됐다.

3만7000권의 성경을 인쇄,뉴질랜드 전역에 뿌렸다.

감리교 장로교 침례교 루터교 형제교단 등의 선교사들이 뒤를 이어 뉴질랜드를 찾았다.

1904년 오순절교회가 성령운동을 일으키며 1900년초 부흥운동을 견인했다.

1922년에는 스미스 위글스 워스 목사가 신유은사집회를 통해 오순절 운동의 불길을 당겼다.

이어 하나님의교회 사도교회 새생명교회 엘림교회 빈야드교회 등이 등장했다.

1960년대 오순절 교회들이 성장하고 80년대까지 국민의 20%가 교회에 출석했다.

현재는 10%로 줄어든 상태다.

이는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 때문이다.

자유주의적인 삶의 철학이 개인주의에 불을 붙였고 매스 미디어와 할리우드 영화 등이 젊은이들을 빼앗아 간 것이다.

이런 점을 인식,신 목사는 목회자 세미나를 통해 향후 목회방향은 전도 제자선택 제자훈련 파송 위임 등을 통한 뉴 스타트(New Start)운동에 있다고 강조했다.

밸리로드국제교회에서 현지인 집회를 하면서도 뉴 스타트 운동을 시작할 것을 권고했다.

뉴 스타트 운동의 원천은 사도행전 1장 4〜5절이다.

이에 따라 제자들은 다 함께 모여 마음을 같이 하며 기도에 힘썼다.

그 결과가 사도행전 2장1〜4절이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자 하루에 3000〜5000명씩 회심했다.

선교팀은 세계 곳곳에서 기독교 쇠퇴기를 목격했다.

이를 보면서 기도할 때 예수님의 뉴 스타트 운동이 떠올랐다.

이것만이 교회의 생명력과 역동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뉴질랜드에서 뉴 스타트 운동을 외치자 밸리로드국제교회의 앤드루 목사가 “하나님께서 신 목사님을 보내 우리에게 예언을 해주셨다.

우리 교회부터 뉴 스타트 운동을 시작하자”고 외쳤다.

◇호주=호주와 뉴질랜드에는 교단(예성)의 해외지방회가 구성돼 있다.

따라서 지방회 임원들과 17년째 호주에서 사역하고 있는 정선일 선교사가 선교팀을 영접했다.

호주가 서방 세계에 알려진 것은 17세기 초중반 얀스와 A J 타스만이라는 네덜란드 항해자에 의해서였다.

영국 정부는 범죄자들을 영구 격리시키기 위해 1788년 1월 26일 최초의 선단을 구성하고 죄수와 군인 등 1000여명을 시드니에 상륙시켰다.

그 뒤 16만2000명의 죄수가 보내졌다.

당시 원주민인 애버리진이 30여만명 살고 있었다.

호주 기독교 선교사가 기록된 것은 죄수들을 싣고 들어오는 배에 영국의 감리교 리처드 존슨 선교사가 승선하면서부터다.

그는 1788년 2월3일 시편 116편 12절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는 말씀으로 최초로 선상에서 예배를 인도했다.

그러나 영국 국교인 성공회 목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결국 1812년 소환을 당해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1830년에 영국 정부는 죄수 유배를 중단하고 죄수들을 석방,농사를 짓게 했다.

이때 교회출석률이 70%에서 20%대로 떨어졌다.

이는 강제적인 교회 출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1870〜1900년대 복음주의 운동이 확산되면서 인구의 40%가 교회에 출석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주의 신학이 호주 전역을 휩쓸었다.

1960년께부터 오순절 운동이 일어나고 빌리 그레이엄 전도운동을 통해 범죄율이 떨어지고 교회가 다시 성장했다.

하지만 1960〜70년대를 거치면서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성장이 둔화됐다.

인구의 5〜7%만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현재 일부 복음주의 교회들이 소폭 성장하고 있을 뿐이다.

선교팀은 호주 기독교 지도자들과의 만남,현지 목회자 및 한인 목회자 세미나,동문들과의 좌담회,현지인 교회 집회,한인교회 연합집회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신 목사는 각종 집회를 통해 “매너리즘에 빠진 현재의 기독교로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며 “뉴 스타트 운동만이 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전도하지 않고 조용히 신앙생활하다가 천국 가겠느냐? 그러면 주님이 여러분을 기쁘게 영접하시겠는가”라는 추상같은 설교에 모두 숙연해졌다.

신 목사는 틈나는대로 뉴 스타트 운동에 대한 노랫말을 만들고 뉴욕에서 음악공부하는 막내딸에게 이 메일로 작곡을 부탁했다.

정리=함태경기자 zhuanji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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