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같은 낯선 땅, 연변에 가다

[오마이뉴스 임윤수 기자]어느 방송 코미디 프로그램에 등장한 연변총각의 수다스런 언변으로 경상도나 전라도 사투리만큼이나 유행하고 익숙해진 게 연변말투입니다. 딱히 외국인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하기도 그런 어정쩡한 입장에 처한 사람들이 중국 내 조선족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 마치 한국의 어느 거리 같지만 외국인이라고 하기엔 너무 한국인인 조선들이 살고있는 연변자치구에 있는 지하상가 주변의 거리입니다. ⓒ2004 임윤수 굳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을 들먹이지 않아도 왠지 조선족들은 외국인이라기보다는 동포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조선족 5대라지만 완벽하게 한국말을 구사하고 한국문화와 전통을 너무 잘 아는 현지가이드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조국을 떠나 5대쯤의 세월이 지난 후손들이라면 전통은커녕 할아버지의 나랏말로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게 대부분인데 조선족 5대라는 그 가이드는 어색함을 느끼지 못할 만큼 말투도 행동도 우리와 같았습니다. 3일간 함께 한 그의 행동이 조선족들 남다르게 생각하게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 바구니에 담아온 물건들은 길거리에 앉아서 팔고 있는 아낙들의 모습입니다. 20여명의 아낙들이 길다랗게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2004 임윤수 북한과 중국의 접경 지 두만강 건너 쪽에 위치한 연변은 조선족 자치구이기에 시장은 조선족만 할 수 있으며 거리의 간판이나 안내판에도 한글과 한문을 병기하도록 법제화 되어있다고 합니다. 익숙해진 말투와 촘촘하게 써진 한글 간판 때문인지 연변거리는 흡사 흘러 간 시대를 배경으로 어떤 영화를 찍기 위해 마련된 세트 장 같은 기분이 들게 하였습니다.
60년대나 70년대 어느 도회지의 풍경을 보는 듯합니다. 나름대로 층을 이룬 빌딩사이로 소형자동차들이 무질서하게 돌아다니고 그 사이로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종횡무진 무단횡단을 일삼습니다. 인력거가 돌아다니고 사람이 끄는 커다란 손수레가 짐 운반의 주요 수단인 듯 골목골목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 이 아낙은 길거리에조차 앉을 자리 하나 마련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좀더 적극적으로 팔기 위해 그랬는지 어깨에 얹어진 장대에 물건을 매달고 돌아다니며 팔고 있었습니다. ⓒ2004 임윤수 낡고 초라해서가 아니라 휙휙 들어오는 한문 때문에 그런지 오래 전 한국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한문은 흘러간 시대의 문자였다는 어설픈 편견 때문에 그런지 모르지만 또렷하게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이유로 과거의 한국 풍경일거라고 짐작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저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비슷한 모양입니다. 연변지하상가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요즘도 국내 5일장을 찾아가면 볼 수 있는 그런 모습들이 그곳에도 있었습니다. 작은 바구니에 담은 물건을 팔기 위해 아낙들이 장터 길거리에 줄을 지어 자리를 잡고 앉아있습니다. 물건을 사라고 호객행위도 합니다. 시골장터에 나란히 앉아 보따리를 풀어놓고 팔아주기를 기다리던 할머니들이 연상되는 풍경입니다.
▲ 나귀가 끄는 수레에도 농산물을 싣고 나왔습니다. ⓒ2004 임윤수 작은 수레에 화로를 준비해 즉석에서 꼬치를 구워 파는 아줌마도 보이더니 드디어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 아주머니가 꼬치를 팔고 있는 근처에 있는 꼬치집 주인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라고 하면서 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언제부턴가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야기된 그들만의 또 다른 경쟁이 만들어내고 있는 모습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도 저도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좀더 적극적으로 장사를 하기 위한 상술인지 물건을 어깨에 걸머멘 장대 끝에 매달고 다니며 팔고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 짐꾼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건물이 있는 입구나 옆 골목엔 영락없이 이런 짐꾼들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2004 임윤수 사람 살아가는 모습들이 한꺼번에 다 연출되는 듯합니다. 부르고, 깎고, 덤으로 몇 개 더 얹어주기도 하며 시끌벅적 꾸려지는 시장풍경에서 생기가 돕니다. 5시가 되니 커다란 건물이 일제히 문을 닫아버립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난 모양입니다. 한국이라면 저녁에 먹을 반찬거리라도 준비하기 위해 모여들 주부들로 더 시끌벅적해질 시간이지만 그곳에선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의 일면을 보는 듯했습니다.
연변대학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26살의 현지가이드 K씨에게 궁금한 몇 가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우선, "한국 기업들이 중국으로 진출하면서 믿었던 조선족들 때문에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한국에 들어와 돈을 벌겠다고 불법체류를 하며 일하다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 등이 발생하는데 조선족들 사이에 한국에 대한 여론이 어떤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 연변 거리를 활보하는 택시들입니다. 연변택시들은 소형이나 경량차가 많았습니다. 사진 속의 차들은 한국에서 생산된 프라이드들 베타입니다. ⓒ2004 임윤수 그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사람 사는데 다 있을 수 있는 일로, 한국에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조선족 중에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있다. 좋은 조선족을 만난 한국사람은 조선족을 나쁘게 말하지 않을 것이며 사기꾼 같은 조선족을 만나 사업에 실패하거나 피해를 당하게 된 사람은 조선족을 나쁘게 말할 것이다.""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에 가서 좋은 사람을 만나 목적하였던 돈을 모아온 조선족은"한국은 한 핏줄을 나눈 형제국가로 정말 좋은 곳"으로 말하지만 그렇지 않고 나쁜 사람을 만나 돈은커녕 신세까지 망치고 돌아온 사람들은 "한국 사람은 나쁘다"고 말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며 그가 말할 수 있는 조선족들의 여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조선족들 사이에서도 이제는 더 이상 "한국은 기대기만 하고 그리기만 하던 꿈의 동포국가는 아니며 그냥 기회 되면 돈을 벌 수 있는 나라,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는 그런 곳"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 인력거꾼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까운 거리를 택시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2004 임윤수 이어서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조선족들이 중국에 진출한 한국사람들을 상대로 저지르는 나쁜 짓은 그래도 자신보다는 있는 사람을 상대로 한 범죄 행위지만, 한국의 일부 악덕 고용주가 불법체류중인 조선족들의 약점을 이용해 임금을 착취하거나 체불하는 것은 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간접 살인이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정말 척박한 삶을 살다 "잘 살 수 있다"는 한가지 꿈으로 한국엘 갔다 그렇게 당하고 돌아온 사람들에게 있어 임금체불 등은 원(怨)이 되고 한(恨)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같은 피해를 당해도 입장에 따라 상처의 강도와 깊이가 분명 다르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걸 의미하는 듯합니다.
그렇다고 불법체류를 일방적으로 정당화하거나 합법화하려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국에 나가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만 본다면 불법체류의 합법화가 당연히 요구할 법적 최우선 조건이지만 연변에 있는 조선족들 입장에선 그렇지만은 않다고 합니다. 이해를 달리하는 불법체류 문제가 불거지며 자칫 중국정부당국자의 심기를 건드려 연변 자치구에 대한 어떤 구실을 주지 않을까 염려하는 눈치였습니다.
▲ 소가 끄는 수레에 짐을 싣고 주인도 함께 타고 있습니다. 보는 입장에선 한가로와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도 과연 한가로울 까는 의문입니다. ⓒ2004 임윤수 1983년 중국 민항기 납치사건(1983년 5월 5일 중국 민항기가 탁장인(卓長仁) 등 중국인 6명에 의해 납치돼 춘천비행장에 불시착한 사건)이 보도되기 전까지 조선족들에게 있어 대한민국은 가난한 남조선이었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납치되었던 승객들이 중국으로 돌아오면서 한국의 발전상이 구전을 통해 알려지고, 88올림픽 등을 통해 남조선은 그들이 새로운 삶을 기대하게 되는 꿈의 한국으로 위상도 명칭도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위성방송을 통해 한국에서 보도되고 있는 이런저런 뉴스들을 실시간 시청하므로 한국인들과 대동소이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국인과 조선족들 사이에 발생하는 좋은 일 나쁜 일들을 대부분 알 수 있어 세상 "어느 곳을 가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있다"는 일반적 가치를 갖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들려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떠올리며 주위를 살펴봐도 연변에서 흘러간 시대를 연상케 하는 건 화장실에도 있었습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누구나 다 하는 일이지만 감추고 숨기는 게 생리적 배설문제입니다. 그러기에 화장실 문화는 그 나라의 다양한 문화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 새로 짖고있는 화장실도 위쪽이 개방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이 화장실은 칸 사이가 막혀있지만 많은 화장실은 칸 사이도 개방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볼일을 보고 일어나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민망할 듯합니다. ⓒ2004 임윤수 위쪽이 개방된 화장실은 영화에서나 보았던 그때 우리 나라의 화장실을 연상케 했습니다. 그것이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는 그들의 문화라는 것은 새로 짓고있는 화장실도 위쪽을 개방해서 짓고있는 데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곳은 문 위쪽만 개방되어 있지만 어느 곳 화장실은 아예 화장실 전체가 가슴높이까지만 벽이 있고 위쪽은 휑한 공간입니다. 물론 지붕은 되어있었지만 말입니다. 두 칸에서 나란히 볼일이라도 보고 동시에 일어나게 되면 민망스러울 듯 한데 그들은 어떨까 궁금해집니다.
연변에서 그렇게 멀지 않게 두만강이 있었습니다. "두만강 푸른 물!" 엄청나게 깊고 넓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깊고 넓은 곳도 있겠지만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두만강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좁고 얕았습니다. 장마철이 아니면 무릎정도만 빠지면 쉽게 건널 수 있는 곳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 다리건너가 염원의 땅 북한입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고 지금 어떤 갈등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평화스런 전원풍경일 뿐입니다. 들릴 듯 말 듯한 두만강 물소리에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하고 부르던 어른들의 애환 어린 목소리가 섞인 듯합니다. ⓒ2004 임윤수 수천만이 노래로 타령으로 그렇게 외쳐대던 두만강은 인간들의 전쟁놀이와 이념싸움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는 듯 낮은 곳을 향해 아래로 아래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도움닫기로 펄쩍 뛰면 닫을 듯한 강 건너 북녘 땅도 드러낸 모습은 평화로운 전원일 뿐이었습니다. 들릴 듯 말 듯 두만강 물소리에 가이드가 하였던 "세상 어느 곳을 가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있다"라는 말도 함께 흐르는 듯했습니다. /임윤수 기자 (zzz-daum@hanmail.net)<hr noshade color=#FF9900>덧붙이는 글연변에는 7월 7일부터 2박 3일간 머물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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