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에서 보물 캐내는 "진주" 헌책방

2004. 2. 9.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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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최종규 기자] ▲ 경남 진주에 자리한 헌책방 중앙서점 앞에서 ⓒ2004 최종규 ㄱ.남들이 문을 닫을 때 우리는 가게를 늘리지 진주를 두 번째인가 세 번째로 왔습니다. 진주교대에 볼 일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첫날은 진주 시외버스터미널 옆에 자리한 헌책방을 찾아갔습니다. 오늘은 서울로 돌아가기 앞서 육거리 쪽에 있다는 헌책방을 찾아나섰어요. 어느 곳에 있는지는 모르고 그냥 "육거리" 어디쯤 있다는 것만 알고요.길이 여섯 갈래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 좋을지 헷갈립니다. 그래서 거리를 하나하나 들어가 봅니다. 슬슬 걸어서 마을 구경을 하고 책방을 찾습니다. 좀처럼 보이지 않는군요. 어느덧 칠암동이라는 곳에 이릅니다. 칠암동 어디쯤에도 헌책방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육거리 헌책방은 못 찾아도 칠암동 헌책방을 찾을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칠암동 헌책방도 못 찾고 걷던 가운데 "책"이라는 간판 글씨 하나를 보았고, 아 저곳이 헌책방일까? 하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부지런히 놀렸어요. 역시. 생각했던 대로 헌책방입니다. 그곳은 바로 "중앙서점"입니다. 책방 유리문에는 인터넷서점으로도 문을 연다는 쪽지가 붙어 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 보니 중앙서점 아드님이 인터넷 관리를 한다는군요. 아버지는 책방을 지키고 아들은 인터넷으로 책을 사고팔고. 책방 문을 밀고 들어갑니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고만고만한 크기이지 싶었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천장이 무척 높고 책방이 안쪽으로도 꽤나 깊습니다. 책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가득 쌓였습니다. 책꽂이에는 빼곡하게 책이 가지런히 꽂혀 있고요. 뭐랄까. 뿌듯하고 반갑습니다.지역 헌책방으로서 이만큼 책을 잘 갖추고 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놀라운 한편으로 진주에 계신 분들은 좋은 헌책방 한 곳을 갖고 있으니 즐거웁겠다 싶어요. 헌책방이 하나둘 문을 닫는 현실이잖아요. 책을 보는 분들도 많이 줄고요. 그래서 출판사들도 힘들다고 문을 닫는 형편인데 중앙서점 아저씨는 "남들은 어렵다고 (헌책방) 문을 닫지만 우리는 오히려 책방을 더 넓게 늘리고 싶다"며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힘을 내면 잘 되지 않겠냐고 말씀합니다. 책도 책이지만 중앙서점 아저씨 생각이 참 반갑고 즐겁습니다.

ㄴ.고미카와 준페이 일본에서 이름난 작가 가운데 하나인 고미카와 준페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지은 <인간조건(또는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은 일본뿐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 가슴을 촉촉히 적셨어요.하지만 지금은 <인간조건>이라는 책을 찾아보기 아주 어렵습니다. 고미카와 준페이 바람이 불었을 때는 이 사람 선집까지도 나왔으나(1960년대 첫머리) 이제는 헌책방에서나 겨우 만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도 고미카와 준페이 책을 읽고자 헌책방에서 부지런히 이 사람 책을 살핍니다.

▲ 중앙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만나는 골마루 모습. 책장이 촘촘하게 놓여 있는데, 책장마다 알뜰한 책이 가득합니다. ⓒ2004 최종규 마침 중앙서점에 <인간의 조건,주우(1981)> 세 권이 보이는군요. 집에도 한 질 있기는 있어요. 그 책은 1960년(정향사,이정윤 옮김)에 고미카와 준페이 선집이 나올 때 함께 나왔던 판입니다. 어느 판이 더 번역을 잘했는가 살피고 싶어서 고릅니다. 그런데 "양우당"이란 곳에서 펴낸 다른 판을 또 하나 만났어요. 주우 출판사에서 펴낸 <인간의 조건>은 세 권이지만 1982년에 우리 말로 옮긴 양우당판 <인간조건>은 무려 10권입니다. 주우 출판사 책도 "완역"이라는 말을 붙였는데 부피가 너무 다르군요. 둘을 함께 놓고 견줍니다. 세 권짜리가 간추린 판인지는 잘 알기 어렵군요. 통째로 다 읽어야 그걸 알 수 있지 싶어요. 그런데 두 가지가 다른 대목 하나를 봅니다. 주우 출판사판은 옮긴이 이름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나 열 권짜리... 출판사판은 옮긴이 소개가 들어 있어요. 옮김말도 양우당판이 좀더 알뜰하고요.옮긴이- 孟思彬(맹사빈).본명은 厚彬(후빈). 1927년 서울에서 태어나다.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하다. 오랫동안 연극운동에 투신, 신동엽의 시극 <그 입술에 패인 그늘>, 사뮤엘 베케트의 <고도우를 기다리며> 등을 연출했고, 현대연기학원을 설립하여 영화연극 후진양성에 힘쓰다. 옮긴 책에 토마스 하아디 <테스>가 있고, 시집에 <인간이 아픔을 알 때>가 있다.

다른나라 작품을 우리 말로 옮긴 퍽 오래된 책들에서 옮긴이 소개가 있느냐 없느냐는 그만큼 그 책이 알뜰하냐 그렇지 못하냐를 판가름하는 좋은 잣대가 된답니다. 그래서 옮긴이가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고 소개도 없는 주우판은 제자리에 꽂아두었고 양우당판을 골랐습니다.

ㄷ.벤쿠버에서도 책을 사오다 벤쿠버에는 중앙서점 아저씨 사위가 산다고 해요. 그래서 가끔씩 벤쿠버로도 가신다는군요. 벤쿠버에 가실 때는 책을 경매하는 곳에도 가신답니다. 경매를 하는 사회자가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얼마얼마를 불러서 그 값에 사겠다는 사람이 나오면 낙찰을 하는 모습이 참 재밌답니다.

책장 한 켠에 캐나다 길 그림이 여러 권 붙어 있었는데 가끔씩 다녀오기 때문에 그런 것들도 걸어 두신 듯하군요. 그밖에 일본도 여러 곳을 다녀 보셨고 전국 여러 곳을 돌면서 책을 사오지만 책방 구경도 참 많이 하신 듯해요. 여러 나라 여러 헌책방을 다니며 당신이 꾸리는 헌책방 살림도 더듬어 보고, 좀더 알뜰히 꾸리고자 애쓰는 모습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 노만 브리드웰이란 이가 그린 "빨갛고 큰 개" 연작 그림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2004 scholastic 중앙서점 아저씨가 벤쿠버에서 사왔다는 노만 브리드웰 그림책 < 클리포드스 키텐, 스콜라스틱(1984)>(Clifford"s Kitten,scholastic)을 고릅니다. 노만 브리드웰 그림책은 아직 우리 나라에는 소개가 안 되었지 싶어요. 아니면 옛날에 잠깐 소개되었다가 사라졌는지도 모르고요. 저는 헌책방에서 노만 브리드웰 그림책을 서너 권 사 보았는데 한결같이 살갑고 재밌습니다. 다른 그림책도 재미있지만 "커다란 빨간 개(Red Big Dog)" 연작은 더욱 좋아요. "커다란 빨간 개"는 주인공 계집아이가 이웃집에서 조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오면서 이야기가 벌어집니다. 계집아이가 얻어온 강아지는 아주 작은 강아지인데 털빛이 온통 빨갛습니다. 너무 작아서 아버지가 출근하려고 옷을 갈아입으며 신는 양말 속에도 들어가 있기도 하고 어디에 있는지 미처 알아보지 못해 밟을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라지요.그러던 어느 날 작은 강아지가 시름시름 앓아서 죽을 동 살 동 합니다. 다른 식구들은 곧 죽을 개이니 내버리자는 투로 말합니다. 하지만 계집아이만은 그럴 수 없다고, 밤에 잠들며 빌고 또 빕니다. 부디부디 튼튼하고 커다란 개로 자라달라고요. 그 바람을 들어서일까요? 이튿날 강아지는 씻은 듯이 병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밥을 우걱우걱 아주 잘 먹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자랍니다. 아이 손바닥 만한 크기였던 강아지는 어느새 어른 키보다 커졌고, 계집아이가 사는 집채보다도 크게 자랍니다. 너무도 크게 자라서 계집아이 식구와 이웃집 사람들, 온 마을 경찰들이 다 나서서 개를 치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아이는 반대하고, 강아지에게 속삭입니다. "이제 그만 자라도 돼" 그 말을 들었는지 개는 그만 자랐으며, 그 크기는 줄어들지 않아요. 어느 날 친척 한 사람이 시골에 집 자리가 생겼다고 해서 집을 시골로 옮겼고, 빨갛고 큰 개는 시골에서 계집아이와 즐겁게 노닙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한 편으로 끝나지 않고 기나긴 연작 그림책으로 나와요. ▲ 높직한 천장 가까이까지 책이 쌓여 있습니다. 책장 한켠에는 캐나다나 일본이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모은 수집품들을 붙여놓기도 했습니다. ⓒ2004 최종규 ㄹ.아스테릭스 만화 요새 새롭게 저작권 계약을 맺어서 내는 프랑스 만화가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로 "고시니 글, 우데르조 그림"으로 엮은 "아스테릭스의 모험"이 있는데 지난 2001년부터 문학과지성사에서 이 책을 옮겨 내고 있어요. 그런데 이 책들은 이미 1993년에 진주에 있는 "코스모스"라는 출판사에서 펴냈습니다. 더불어 "에르제"가 그린 "땡땡의 모험" 연작도 우리 말로 옮겨냈고요. ▲ 진주에 있던 "코스모스" 출판사에서 펴냈던 "아스테릭스" 만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2004 최종규 "땡땡의 모험" 가운데 하나인 <땡땡 티벳에 가다> <달 탐험>을 고르고 "아스테릭스의 모험" 가운데 <검투사 아스테릭스>를 고른 다음 <고시니 글/모리스 그림-루키 루커 랑탕쁠랑의 유산>도 고릅니다. 지금도 진주에 "코스모스"라는 출판사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벌써 1993년에 정식 출판 계약을 맺어서 프랑스 만화 여러 가지를 옮겨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안타깝다면 1993년 무렵에는 이런 프랑스 만화가 나라안 독자들에게 사랑받거나 널리 퍼지기는 힘들었고, 영업에도 여러 모로 힘든 대목이 많지 않았을까요? ㅁ.고물에서 보물이 나오지중앙서점 아저씨는 "고물상이 있기 때문에 헌책방도 있을 수 있"고, "고물을 뒤지면서 보물을 찾아낸다"고, "헌책방에서는 고물을 사서 책손님들에게 보물을 파는 곳이라"고 말씀합니다. 처음에는 새책으로 나와서 사랑을 받다가 차츰차츰 버려지거나 묻히면서 사라지는 헌책이잖아요. 이 책들은 고물상에서 마지막 때를 기다립니다. 폐휴지로 버려져서 다른 책으로 태어나느냐, 아니면 헌책방 임자 손길을 만나서 새롭게 목숨을 이어가느냐로요. 중앙서점 아저씨는 고물을 뒤진다고 자신을 낮추어 말씀하지만, 고물 속에 묻혀 있는 좋은 보물인 책을 찾아내고 캐내는 만큼 소중하고 보람있는 일을 하신다고 생각해요. 더불어 남들은 돌아보지도 않는 고물상을 뒤지며 고생을 한 끝에 우리들에게는 즐겁고 반가운 책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열어 주는 셈이니 고맙기도 하고요. 진주라는 곳을 그동안 두어 번 찾아갔으나 진주에 있는 헌책방을 찾아가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진주에도 헌책방이 참 많았다는데 지금은 다섯 군데밖에 안 남았다고 해요. 다음에 언제 다시 진주를 찾아갈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아직 찾아가 보지 못한 진주에 있는 다른 헌책방도 찾아가 보고, 중앙서점도 다시 찾아가서 좋은 책 구경을 실컷 해 보고 싶습니다.

▲ 책방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둥글고 큰 거울입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촘촘한 책방 깊숙한 안쪽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2004 최종규 /최종규 기자 (hbooks@hanmail.net)<hr noshade color=#FF9900>덧붙이는 글-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남동 <중앙서점> / 055-753-1376- <중앙서점> 인터넷 누리집 http://rorobook.co.kr- 이 글은 제 개인 누리집(http://hbooks.cyworld.com)에도 함께 올려놓겠습니다. 진주에 있는 다른 헌책방들도 짬 나는 대로 소개하는 글을 올리겠습니다.

기자소개 : 최종규 기자는 우리말, 헌책방, 책 문화운동을 하며 여러가지 소식지를 내고 있으며 지금은 국어사전 엮는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998년에 가장 어린 나이로 한글학회가 주는 한글공로상을 받았습니다.(http://hbooks.cyworld.com)- ⓒ 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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