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왜 성인만화를 읽는가

ⓒ2003 yes24 "일본만화"하면 어떤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가. 저질, 음란, 퇴폐라는 느낌이 들고, "성인만화"의 천국이라는 생각이 드는가. 김봉석과 김의찬이 쓴 "18禁(금)의 세계(씨엔씨미디어 刊)"는 이런 생각이 한 단면만 본 편견이라고 말한다.
자칭 삐딱한 전방위 문화비평가라고 자처하는 김봉석은 가극 <금강>의 대본을 쓰기도 했으며, <씨네21> <한겨레> 기자로 활동했다. 김의찬은 <씨네21> 기자로 있으며 현재 웹진 <스폰지>의 편집장이다.
이들 두 사람이 이 책을 기획한 의도는 일본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제목에서 보듯 이 책은 성인만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그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게 오히려 더 적합할 것이다.
"18禁"이란 일본에서 "18세 미만 구입불가" 또는 "등급외"의 뜻으로 사용하는 말로, 성인용을 지칭하는 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등 일부 건전한(?) 작가들의 작품만 주로 다뤄지고, "크라잉 프리맨" "북두신권" "공작왕" 등의 걸작(?)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데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 즉, 일본만화를 도매로 "음란"으로 몰아가는데는, 일본에 대한 편견이 깔려있으며, 이것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일본에 대한 시각이다. 흔히 일본만화 하면 폭력과 섹스만 떠올리듯 우리의 일본문화에 대한 시각은 편향되어 있다. 그것은 정치나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코가르(고등학생 걸・여고생을 일컫는 신조어) 열풍"이 일본을 휩쓸고 있다면 우리가 접하는 것은 기껏해야 원조교제를 하는 여학생들이란 말이고, 우리 청소년들도 이 잘못된 풍조를 따라하고 있다는 고발성 기사들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고, 편견에 가득한 의도적인 왜곡이다."두 저자는 성인만화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를 위해, 우선 "성인만화"의 정의를 공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흔히 성인만화에 덧씌워져있는 섹스, 폭력 등에 대해, 과연 그것이 "성인만화"의 본질인지 먼저 되묻는다. "공작왕" 등 청소년용 만화에도 섹스는 나오며, 섹스와 무관한 "우주전함 야마토"와 같은 작품은 오히려 성인팬층이 더 높았던 "성인만화"였다. 섹스와 폭력이 주를 이루는 "크라잉 프리맨"과 같은 작품도 성인만화로 분류하지 않는다.
성기의 노출 부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잣대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성기를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상황을 야릇하게 처리해서 "세계에서 가장 야한 포르노"란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성기노출에 집착해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셧" 같은 영화도 상영불가로 몰고간 현실을 대비시킨다.
저자는 "시마과장"을 통해 성인만화란 사회생활을 겪은 성인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러한 세계를 다룬 작품이 바로 "성인만화"라고 정의한다. "시마 과장"은 청소년의 사회경험, 즉 가정과 학교를 오가며 사회의 일부분을 맛보는 정도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히 소재만으로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평가하면 제대로 작품을 맛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시이 다카시의 만화는 강간과 살인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을 아주 세밀하게 그려내지만, 그것은 단지 표면일 뿐으로 거기에는 남성의 폭력을 강하게 고발하는 예리한 시선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계와 마계, 반인반수의 수인계를 다룬 "우르츠키 동자"에서도 강간과 혼음 정도는 예사롭게 표현되지만, 저자는 이 책이 한 편의 "심리학 텍스트"라 불러도 좋을 만큼 극적이고 심오한 내용을 지니고 있다고 옹호한다.
본문을 읽어내려 가다보면 저자의 다양한 만화 수용을 느낄 수 있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과 허영만의 "카멜레온의 시" "고독한 기타맨" 등에 흠뻑 빠졌던 저자는 신일숙의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 김혜림의 "북해의 별", 일본 만화중에서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 뿐만 아니라 "크라잉 프리맨" "공작왕" "시마과장", 미국만화 "포켓몬스터" "심슨가족", 고전만화인 "달려라 번개호" 등 다양한 취향을 보여준다. 종이판 만화뿐만 아니라, 극장용 만화, TV용 만화, 심지어 성인용 게임까지 소재로 다뤄진다.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좋은 성인만화는 어떠한 만화를 지칭하는 것일까. 액션장면에서의 한계를 뛰어넘은 "수병위인풍첩", 깊은 심리적 고찰을 보여주는 "우르츠키 동자" 등에 대한 극찬 등에서 볼 때, 높은 스토리 완성도와 함께, 평범함을 뛰어넘는 기발함을 가진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순수와 감동과 사랑을 강변하는 "광수생각"을 지겹다고 표현한 반면, 삐딱한 시선이 돋보이는 이우일의 "도날드 닭"을 높게 평가한 점에서도 그러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 박흥용의 만화에 대해서도 일상의 이면을 파고드는 통찰력이라고 극찬하며, 언더그라운드 만화가 이상한에 대해서도 높은 점수를 준다.
글 전체를 관통하는 내용은 일방적인 시각이야말로 위험하며, 이것이 인식을 지나치게 편협하게 만들고, 정신적 에너지를 낮춘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만화에 대해서도 상업적인 안전함만을 고려해, 복고적인 경향이 강해, 새로운 시도가 나오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게타 로봇"을 연상시키는 "우주전함 나데시코"처럼 최근 일본만화와 애니메이션계 전체가 "과거"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고, "아키라"만큼의 충격을 주는 작품도 없다. 또한 대표적 최근작인 "신세기 에반게리온"도 소수의 마니아들로부터만 환영을 받은 작품으로 "대작"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금기를 깨는 행동에는, 언제나 과도한 에너지가 흘러 넘친다. 얌전하게 사회가 시키는 대로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아무런 에너지도 없고 발전도 없다." "헨타이? 나쁘고 변태적인 것? 그러나 모든 사물에는 양면성이 있다. 가장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에도, 때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 숨어 있는 것이다."이 책의 강점은 쉽다는 점이다. 서문에서 많은 만화나 애니메이션 비평서들이 지나치게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게 신적인 위치에서 평하는 것을 비판한다. 어쨌든 이 책은 여러 작품들이 가진 의미를 수용자의 입장에서 쓰려고 노력했으며, 풍부한 그림 해설이 매 페이지마다 자세하게 곁들여져 이해하기가 편하다.
단, "성인만화"를 다룰 계획이었다면, 일본외에도 보다 다양한 나라의 성인만화를 다뤄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김대홍 기자 (bugulbugul@hanmail.net)<hr noshade color=#FF9900>덧붙이는 글2000년 3월 6일 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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