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대와 신 시대 사이, 짱구와 디지몬이 음악을 만났다
[오마이뉴스 김선호 기자]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음악은 과거를 회상한다.
모든 영화에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전반적인 주제를 압축해 놓는 장면이 있는데, 특정 주제, 특정한 장면이 서로 겹쳐질 때 음악이 주는 울림은 배가된다. 그러한 장면은 대부분 영화의 절정에서 나오는 게 대부분이지만, 예외도 있다. 비교적 최근 개봉작인 <라라랜드>의 오프닝에서 펼쳐지는 뮤지컬 같은 장면이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오프닝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대표적이다. 두 영화는 첫 장면에서 앞으로 영화가 어떤 분위기를 유지할지 설명해준다. 이렇듯, 굳이 특정한 위치나 장면을 염두에 두고 음악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단지 어느 순간에 음악을 흘려보내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음악은 서사만으로 전달되지 않는 세세한 주제의식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말하자면 관객들이 영화 속 세계로 편히 입장할 수 있도록 레드 카펫을 깔아준다. 20세기와 21세기의 사이, 구시대와 신시대의 사이에 서 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애니메이션영화 2편을 꼽았다. 극 영화는 인물의 연기와 현실 세계의 배경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지만, 애니메이션 영화는 오로지 의미의 전달만을 위해 음악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
|
| ▲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영화 <어른 제국의 역습> 포스터. |
| ⓒ 신에이 동화 |
|
|
| ▲ 디지몬 어드벤처 극장판 영화 <우리들의 워 게임> 포스터. |
| ⓒ 토에이 애니메이션 |
<우리들의 워 게임>이 전 디지몬 시리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건, 이러한 디지몬 세계관을 정면으로 뒤집었고, 그것이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서사였기 때문이다. 작품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바이러스와 같은 디지몬이 등장해 세계를 혼란에 빠트린다. 악성 디지몬 탓에 디지털을 바탕으로 설계된 시스템이 먹통이 되고, 핵미사일이 발사되어 위기에 빠진다. 그런 부분을 보면, 당시에 유행하던 밀레니엄 버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설정임을 알 수 있다. 지금껏 디지털로 인해 인류의 삶이 윤택해질 것으로 생각해왔던 사고에 문제의식을 일으킨 것이 밀레니엄 버그였고, 그것이 <우리들의 워 게임>에도 잘 투영되어 있다. 일단, 작품에서 미사일이 낙하하기까지 10분의 시간이 주어지는데, 이 시간을 표현하는 방식이 마치 '새해를 카운트 다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핵과 함께하는 새해가 밝아오기까지 10분, 그 시간을 움직이는 시계를 찾아 헤매지만, 악성 디지몬이 분열해 찾기가 힘들다. (핵 문제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로 읽을 수도 있다)
절망적인 순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자신들을 응원해오던 세계인들의 염원이 방해된다. 디지털 시대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의사소통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러한 특성이 가장 중요한 순간에 세계의 멸망을 앞당기게 된다. 수많은 악성 디지몬을 두 명이 감당하기에도 벅찬데, 거기에 세계인들이 보내는 이메일로 네트워크에 부하가 걸리고 만다. 그리고 방해 덩어리였던 이메일들이 두 디지몬을 구원하는 순간이, 작품에서 가장 뇌리에 남는 두 곡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와 '찬송가'가 영원히 기억되는 순간이다. 그동안 디지몬을 통해 디지털 세계의 유토피아를 그려냈던 '디지몬 시리즈'가 인터넷 시대의 동시성을 악이 승리하는 요인으로 제시하고, 관객들은 그동안 자신이 보아왔던 디지몬 시리즈의 근간을 부정하는 장면에서 충격받게 된다. 두 주인공의 아바타와 같은 디지몬의 죽음에 '개인의 죽음'을 투영한다.
작품은 관객의 충격이 가시기 전에 바로 서사를 뒤집어 두 디지몬을 부활시킨다. 죽음의 원인을 부활의 원인으로 병치하며 인터넷 시대의 양면성을 한 번에 보여준다. 그 순간에 흐르는 찬송가가 앞에서 망쳐진 일상을 보여주며 흘러나오던 '볼레로'와 대비되며 부활의 숭고함을 가중한다. 이후 약속된 새해를 얼마 남기지 않고 묵직한 한 방으로 악성 디지몬을 모두 날려버리는 모습은, 새해를 막 넘기기 전에 지난 잘못을 씻어 내리는 일종의 통쾌함을 준다. 이제 막 새천년이 다가오는 시점에 끊임없이 불어나는 구시대의 고민을 한 번에 씻어 내리는 그 모습이 우리의 목표가 된다. 홀로 남은 악성 디지몬의 시계를 박살 낼 때는, 마치 초읽기를 끝내고 세계가 멈춘 것만 같은 순간이 된다. 그 이후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유지되는 일상은 덤이다.
|
|
| ▲ <우리들의 워 게임>중 한 장면. |
| ⓒ 토에이 애니메이션 |
|
|
| ▲ <어른 제국의 역습>중 한 장면. |
| ⓒ 신에이 동화 |
이렇게 영화는 스테레오 사운드처럼 두 갈래로 나뉘게 되는데, 이 갈림길이 합쳐지는 지점이 '히로시의 회상'이다. '추억의 냄새'에 취해 과거로 돌아간 짱구 아빠(히로시)를 보며 자녀와 부모는 서로 이해하게 된다. 어린 자녀는 '히로시의 회상'을 보며 어른도 어른이 아니던 때가 있었음을 알게 되고, 부모들은 박람회 장면에서부터 줄곧 생각해오던 '찬란한 시절'이 단 한 장면이 아니라 내 인생의 전부였음을 깨닫는다. 작품에서 악당이 줄곧 말하던 20세기의 향수(香水)가 그리움의 향수(鄕愁)가 되는 순간이다.
그 순간이 우리가 새천년에 대해 돌아보는 순간이 된다. 노을은 20세기를 떠올리게 한다며 항상 저녁에 머물러 있는 20세기 마을, 그리고 외부로 나오면 맑은 하늘이 펼쳐진 악당들의 타워가 있고, 악당을 물리치고 밖으로 나오면 다시 노을 진 저녁이다. 다만, 20세기가 아닌 21세기의 노을일 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선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그알> PD도 사찰한 방송장악 '몸통', 실체는 누구인가
- 박배일 감독 "서병수는 사과하라" 직격탄 수상소감, 관객 들썩
- <신혼일기2>는 '결코' 결혼 장려 프로그램이 아니다
- 그깟 고추 하나 때문에 일어난 일.. 소름 돋는 현실 반영
- <지오스톰>의 예견, 미국과 트럼프를 겨냥하다
- 죽은 남편이 AI로 되살아났다? 팽팽한 긴장감을 견뎌라
- "영화제 흔들 수 없다"는 강수연.. 아직 정상화는 멀었다
- 윤종신 칭찬, 수지도 동참.. 여자버전 '좋니'의 매력
- 전대미문의 할리우드 성추문, 침묵하던 자들은 누구인가
- 네팔 동자승의 눈으로 본 세상.. 감독은 세월호 참사 애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