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 카보스에서 잘 지내는 법
잘 쉬는 것도 여행의 본질 중 하나다. 휴식의 품격을 한껏 갖춘 멕시코 로스 카보스
더 케이프 호텔의 프라이빗 비치와 수영장.
“애덤 리바인과 베하티 프린슬루의 웨딩 파티는 정말 끝내줬어요.” 엘 간조(El Ganzo) 호텔의 루프톱 바에서 마르가리타를 만들던 바텐더가 어젯밤 일처럼 말했다. 정수리에 내리꽂는 태양열을 식히려 수영장에 발을 담갔다. 나른한 음악과 마르가리타, 인피니티 수영장과 그 너머로 보이는 항구, 코발트색 바다. 이곳의 시간은 고요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기는 경치를 공유한다는 기쁨보다 이런 경치를 자주 볼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스타들의 휴양지로 알려진 로스 카보스(Los Cabos)는 멕시코 서쪽에 태평양을 끼고 길게 튀어나온 바하 칼리포르니아 반도의 끝점에 있다. 멕시코시티에서 비행기로 2시간, 로스 앤젤레스에서 출발해도 마찬가지다. 영어로 충분히 의사소통이 되고 대부분의 요금도 페소가 아닌 달러로 받는다. 멕시코인마저 이방인 취급하는 이 땅에서 태양은 차고 넘치지만 바람에는 바다 내음이 실려 있다. 동쪽으로는 깊고 차가운 태평양, 서쪽은 따뜻한 코르테스해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이곳 바다로 12~3월까지는 회색고래와 혹등고래가 찾아오고, 해변가 바위에는 바다사자들이 낮잠을 잔다. 신기하게도 내륙은 또 건조해서 해안사구에는 참 멀리까지 이사 온 낙타도 살고, 곳곳에 선인장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마르 아덴트로 호텔 로비에서 본 풍경.
60년 전만 해도 존 스타인벡의 항해 일지에 ‘미지의 어촌마을’로 묘사됐던 로스 카보스는 현재 최고의 풍경마다 최고급 리조트가 자리한 잘나가는 휴양지다. 특히 호텔 신은 2014년 허리케인으로 입은 피해를 재건하며 더욱 치열해졌다. 수십 년 전에 지은 건축물은 최신 트렌드에 맞춰 얼굴을 고쳤고, 창의적인 디자인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새로운 호텔이 등장했다. 특히 서쪽 바닷가와 해안 절벽은 프라이버시에 집착하는 셀럽들의 별장과 고급 리조트들의 차지가 된 지 오래다. 기네스 팰트로와 크리스 마틴의 허니문 휴양지였던 에스페란사, 제니퍼 애니스턴이 단골이라는 원 앤 온리 팔미야, 셀 수 없는 셀러브리티들이 거쳐간 라 벤타나 알 파라이소 등이 항상 파파라치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셀러브리티의 이름 없이도 최근 인스타그램을 달구고 있는 곳은 마르 아덴트로(Mar Adentro) 리조트다. 첫인상은 미리 본 사진 속 풍경처럼 궁극의 미니멀리즘이다. 멕시코 건축가 미겔 앙헬 아라고네스가 설계했는데, 하얀 건물과 선으로 푸른 하늘과 바다를 구획했고, 리조트 정원은 얕은 물로 채워 물 위에 건물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닥에서 벽과 소파, 그 위의 쿠션까지 모두 화이트 일색이다. “레드 와인을 마시는 것이 금지돼 있어요”라는 직원의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극도로 절제된 건축물이 짙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풍경만큼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
어스름이 내려앉은 산 호세 델 카보의 거리.
그래픽 아티스트 ‘히모’가 디자인한 엘 간조 호텔의 벽면.
로스 카보스는 산 호세 델 카보와 카보 산 루카스를 함께 부르는 말이다. 자동차로 40분 거리밖에 되지 않지만 각 지역의 개성은 뚜렷하다. 동쪽의 산 호세 델 카보가 문화와 예술에 초점을 둔 반면 서쪽의 카보 산 루카스는 해양 스포츠와 파티 문화가 지배적이다. 산 호세 델 카보 시내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최근 갤러리와 공방, 소규모 카페와 예술가 커뮤니티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카트리나 해골 인형이나 아즈텍 패턴이 있는 러그처럼 전통 수공예품에 관심이 있어서 몇 시간이고 한 곳에 발이 묶였다. 다행히 ‘아트 워크’ 날이라 늦도록 구경할 수 있었다. 아트 워크는 거리 공연과 늦은 시각까지 갤러리 전시, 수공예품 상점들이 문을 여는 이벤트다. 매주 목요일 산 호세 델 카보 시내에서 진행된다.
산 호세 델 카보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를 달려 등장한 엘 간조 호텔은 거대한 아티스트 레지던스 같다. 실제 아티스트들이 상주하며 호텔 공간을 시시각각 변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묵는다는 것은 예술가들의 일과를 충분히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들의 하루는 이렇다. 느지막이 일어나 헤밍웨이가 즐겨 마시던 칵테일 파파도블레를 천천히 마시고, 호텔 앞마당에 있는 작은 섬으로 비치 타월을 들고 가서 책을 읽는다. 해 질 녘에는 자전거를 빌려 인근의 작은 어촌 마을을 산책하고 밤에는 루프톱 바에서 열리는 로컬 밴드의 공연을 즐긴다. 한편 산 호세 델 카보의 반대쪽 태평양과 면해 있는 카보 산 루카스는 미국 스프링 브레이커들의 인기 지역이다. 낮에는 고래 투어나 서핑, 요트 파티 등의 액티비티를 즐기고 밤에는 테킬라와 함께 클러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스 카보스의 랜드마크인 코끼리 모양의 바위(엘 아르코) 투어가 시작되는 항구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코로나로 해장한 미국 청년들이 배에 오르고 있었다.
더 케이프 호텔의 외관.
더 케이프 호텔의 침실.
클러버의 흥은 놓치고 싶지 않고 흥청망청한 철부지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심정을 감안해 탄생한 것이 더 케이프(The Cape) 호텔이다. 코르테스해를 깊이 끌어안은 바닷가 호텔은 콘크리트와 나무로 지은 건축물로 천편일률적인 리조트 사이에서 존재감을 뽐낸다. 어두운 색의 가죽과 벽면에 걸린 현대미술 작품들이 고급스럽지만 1960년대 캘리포니아의 서핑 클럽 같은 젊은 분위기도 더해졌다. 이곳 레스토랑 만타는 호텔에 묵지 않아도 로스 카보스에 있다면 한 번쯤 들러야 한다. 멕시코 스타 셰프 엔리케 올베이라가 페루의 세비체와 일본의 사시미를 재해석한 지역 해산물 요리를 선보인다. 초콜릿 클램으로 만든 세비체, 아보카도와 와사비가 함께 나오는 사시미 등을 맛보는 경험이 새로웠다. 더 케이프 호텔의 로비 바에서 메스칼(선인장으로 만든 술) 칵테일을 한 잔 마시면 눈앞의 풍경이 영화의 한 장면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코 앞에 보이는 코르테스해와 엘 아르코 바위는 세트장이 되고, 카바나에서 휴식을 취하는 커플과 파도를 타고 내려와 곧장 빌라 스위트로 향하는 서퍼는 영화 속 등장인물처럼 보인다. 마치 위험한 순간이 닥치기 전의 평화를 강조하기 위해 비현실적으로 그려낸 극강의 호사와 휴식의 장면처럼 말이다.
바하칼리포르니아 스타일의 메뉴.
BOOK ITEL GANZO 아티스트들에게 한 달간 객실을 빌려주고 호텔의 벽면과 바닥, 가구 등을 캔버스로 내준다. 호텔 앞의 작은 섬을 전용 해변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루프톱 수영장과 바에서 열리는 공연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지하 스튜디오에서는 매달 여러 나라의 인디 뮤지션들이 진행하는 뮤직 세션을 진행한다. 공연 장면은 객실 TV와 호텔 홈페이지에서 감상할 수 있다. MAR ADENTRO 정원을 물로 가득 채운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로스 카보스의 건축적 아이콘이 된 호텔. 객실은 물론 모든 부대시설이 극도의 미니멀리즘을 지향한다. 모든 것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객실 내에는 다양한 버튼 대신 방의 컨디션을 자동으로 조절한다. 제임스 터렐의 작품처럼 완벽한 암흑 속의 미미한 빛을 따라 동선을 파악하게 한 스파는 수압을 이용한 하이드로 마사지가 특징이다.THE CAPE 로스 카보스의 랜드마크인 엘 아르코의 전망을 유일하게 지닌 호텔이다. 시카고와 시애틀의 트렌드 지형을 바꿔놓은 톰슨 그룹이 운영하고 있으며, 멕시코 건축가 하비에르 산체스가 빈티지와 럭셔리 분위기를 살려 디자인했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만타를 비롯해 통창으로 꾸민 라운지, 루프톱 바가 최근 할리우드 스타들의 파티 장소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 정수임
글 원영인
에디터 김영재
디자이너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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