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에 걸린 ‘3.2㎞ 태극기 띠’… 무슨 사연이

한국서 15년간 일하면서 2002 거리응원 목격
한국 축구 열성팬 돼… 5000달러 들여 띠 제작
금액 마련하기 위해 망고 농장까지 팔아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개막을 앞둔 16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 동부 브라흐만바리아에서 한국 축구를 응원하는 방글라데시 팬이 자신의 마을과 이웃 마을을 잇는 3.2㎞ 길이의 다리에 태극기를 걸고 있다. AFP 연합뉴스

방글라데시 반샤람푸르 마을과 옆 마을을 잇는 다리에 태극기를 이어 붙인 띠가 걸렸다. 한국 축구팬인 부부가 2022 카타르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축구 대표팀의 선전을 응원하며 제작한 것이다.

AFP통신은 21일 한국에서 15년 동안 일한 아부 코시르(45)와 아내 사비나(34)의 사연을 소개했다. 부부는 5000달러(약 677만원)를 들여 태극기를 수백장 사들인 뒤 이를 3.2㎞ 길이로 이어붙여 띠로 제작을 의뢰했다. 재단사가 태극기 띠를 완성하는 데 2주가 걸렸다고 한다.

부부는 여기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망고 농장을 팔았다. 사비나는 “우리 부부는 한국을 사랑한다. 한국 축구를 응원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 다리 위에 태극기를 이어붙이는 방법을 택했다”면서 “우리는 한국을 응원하고, 그들의 승리를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비나는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15년 동안 한국에서 일한 남편에게 한국의 문화, 사회규범 등에 대해 들으면서 특별한 애착이 생겼다고 했다. 사비나는 “남편이 얘기해주는 한국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한국은 내가 가장 방문하고 싶은 나라”라고 밝혔다.

사비나의 남편 코시르는 한국에서 중고 전화기 등 소비재의 부품을 긁어낸 뒤 녹여 금을 추출하는 작업을 했다.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한국에서 보면서 거리응원전을 목격했고 자연스럽게 한국 축구팬이 됐다고 한다.

AFP는 코시르가 한국에서 일하면서 방글라데시에서 사업을 할 만한 자금을 모은 뒤 고국으로 돌아와 보석 사업을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코시르 부부는 방글라데시에서 중산층으로 분류된다.

코시르는 가장 좋아하는 한국 축구 선수로 윤정환을 꼽았다. 주전으로 뛰지 않아 대중에게 익숙한 이름은 아니지만 거스 히딩크호에서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뤄낸 미드필더다. 현재는 일본 프로축구 2부리그 소속팀인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코시르는 “윤정환은 정말 뛰어난 선수였다”고 떠올렸다.

그는 한국을 떠나 고국 방글라데시로 돌아왔지만 자신에게 사업자금을 마련할 기회를 주고 특별한 추억을 안겨준 한국을 사랑한다고 했다.

코시르의 이웃 모하마드 아카시는 “부부가 한국을 향한 사랑을 보여주고자 너무 많은 돈을 썼다. 정말 미친 짓”이라며 “그래도 다리 위에 이어진 태극기 띠를 보고자 많은 사람이 우리 마을에 온다”고 했다.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개막을 앞둔 지난 16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 동부 브라흐만바리아에서 한 남성이 자신의 집에서 이웃 마을까지 3.5㎞ 길이에 태극기를 건 뒤 그 옆을 지나고 있다. AFP 연합뉴스

AFP는 방글라데시 국민 대부분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축구팬이라고 소개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당시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와 네이마르(브라질)의 열성 팬들이 충돌해 중상자가 발생하는 사고가 있었을 정도다. 자국 축구 대표팀 경기력이 월드컵 본선 진출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낮기 때문인데, 이번 카타르월드컵을 앞두고 많은 주민이 집 외벽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국기 색으로 칠했다고 한다.

AFP는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을 응원하는 현지인은 거의 없지만 코시르가 ‘일당백’ 역할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코시르는 거금을 쏟아부어 태극기 띠까지 제작했지만 한국 대표팀의 승패에는 집착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는 “모든 경기에는 승패가 있다. 나는 그저 한국을 응원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며 “한국이 패하더라도, 나는 한국을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